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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라이프, 느리고 단순한 삶은 우리의 마지막 선택이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12. 09:08

슬로 라이프slow life라니 이상한 말이다. 영어에는 이런 표현이 없다. 이 말을 쓰기 시작한 사람으로 이 '브로큰 잉글리시'가 유행하게 된데 대해 다소 복잡한 심경이 아닐 수 없다.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내력은 이렇다. 나는 <슬로우 이즈 뷰티풀>이란 책에서 이렇게 썼다.

 

속아서는 안 된다. 매스컴이나 대기업이 말하는 '슬로 라이프'를 떠받치는 것은 다름 아닌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패스트 이코노미fast economy'다. 그리고 미국형 '여유로운 전원생활과 주말의 아웃도어 라이프'를 지탱해 가는 것은 최근 떠들썩한 부시 주니어의 '향후 20년간 쉬지 않고 발전소를 짓겠다'라는 계획이다.

 

내가 염려한 대로, 아니 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슬로 라이프라는 말은 이제 미디어에서도 널리 쓰이게 되었고, 기업과 지방자치 단체들도 그 언저리로 모여들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현상이 반갑기보다는 불안하다. 이탈리아의 슬로 푸드 운동에서 나온 '슬로'도 그렇고, 우리들의 '나무늘보 친구들' 모임에서 말하는 '슬로'도 그렇고, '슬로'에는 본래 '친환경'이라든가 '지속가능한'이라든가 '글로볼에 맞서는 로컬'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그것이 슬로 라이프를 표방하는 잡지 등에 실리게 되면 대부분 간과되고 만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지금 기업은 슬로 라이프 실현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여러 물건과 서비스를 팔기 위해서만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는 느림이라는 말 속에 담겨 있어야할 '뺄셈'의 발상은 빠져 있고, 덧셈만 잔뜩 들어가 있는 셈이다.

 

슬로 라이프가 영어에서는 낯선 표현이지만, '심플 라이프'는 영어권에서도 익숙한 표현이다. 실제로 북미 쪽에서는 최근 들어 이 '심플'이라는 컨셉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 곳에서도 물질적 풍요만을 우선하는 자본주의 경제와 근대 문명의 양태에 질린 '문화창조자'라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덧셈이 아닌 뺄셈의 발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 '슬로'와 '심플'은 지금 시대의 심리와 지향을 나타내는 비슷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느림'이나 '단순함'으로는 물건이 안 팔리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기도 하다. 이제까지의 돈벌이는 전쟁이라든가 환경파괴 같은 것을 정당화하는 더러운게임이었으니까. 전쟁이 사라지면 물건이 안 팔리게 되어서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실업자가 많이 나올지도 모른다. 또 물건을 이전처럼 자유롭게 만들지 못하고 쉽게 버릴 수 없어서 생산이 위축되고 GDP가 내려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의 존재 기반인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 이런 과정은 꼭 필요한 것이고, 결국은 경제에 있어서도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은퇴 후의 느긋한 삶을 위해 지금은 맹렬하게 일한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빠르고 더러운 경제가 슬로 라이프를 가져다 준다는 것은 세계화 경제가 전 지구를 풍요롭게 한다는 식의 논리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환상에 불과하다.

 

소박하고 느긋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역시 풍요로운 자연에 기반을 둔 '지속 가능한 친환경 경제'의 구상과 창조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각자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씩 뺄셈을 시작하여 서서히 줄여가는 길밖에는 없다.

 

멈춰 서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 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밖에는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 오사다 히로시, <멈춰 서다> 중에서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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