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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라이프의 첫걸음은 '산책'을 되찾는 일이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12. 08:55

'슬로 라이프를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슬로 라이프의 시작으로 추천할 만한 것은 '걷기'다.

 

걷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A지점에서 B지점으로의 이동.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걷는 산책.

 

첫번째의 이동에는 어딘가에 도달해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으니, B지점이 바로 목적지다. 여기서는 '목적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도달하느냐'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에너지로 가장 짧은 시간에 B지점에 도달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걷는 대신 차를 이용할 수도 있도, 차 대신 비행기를 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소비되는 시간은 아무리 단축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낭비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되도록이면 쓰고 싶지 않은데 써버릴 수밖에 없는, 필요악으로서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산책의 경우는 어떨까? 산책의 '산'은 마치 목적이 흩어져 있음을 말해 주는 듯하다. 걷는다는 일 그 자체에 만족하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무엇이든 있을 수 있다. 샛길, 돌아서 가는 길, 한 눈 팔면서 가는 길, 사잇길, 에움길, 곁길, 어슬렁거리며 걷는 길. 길을 가다가 잠깐 멈춰 서도 좋고, 가던 길을 그냥 되돌아와도 좋다. 혹은 길을 잃어도 무방하다. 길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잠시 멈춰 서서 얘기를 나눌 수도 있다. 하나하나의 길이 모두 다르고, 비록 같은 길일지라도 어제의 길과 오늘의 길이 서로 다르다. 맑은 날과 흐린 날의 길이 다르고, 같이 걷는 사람에 따라 길이 다르고, 겨울과 여름의 길이 다르며, 진달래가 피어 있는 길과 수국이 피어 있는 길이 다르다.

 

한쪽에 더 빨리 효율적으로 도달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다면, 다른 한 쪽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여기서 한쪽을 선택하고 다른 한쪽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양자택일의 시험에 빠져들 필요는 없다. 인생에는 그 두가지 길이 모두 필요하니까.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인생을 A지점에서 B지점으로의 이동만으로 여기고, 산책 쪽은 점점 잊어버리게 되었다.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즐길 때처럼, 목적과 수단의 세계에서 해방되어, 무엇이든 존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과연 우리는 얼마나 지니고 있는 것일까? 효율성, 생산성 같은 경제 척도로 이 귀중한 자유를 낭비라는 한마디로 정리해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슬로 라이프의 첫걸음은 산책을 되찾는 일이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곧게 뻗은 길을 버리고, 샛길로 들어가 한눈을 파거나 멀리 돌아가면서 이것저것 살펴보는 것을 자신에게 허용하는 일이다. 자동차를 타는 대신 천천히 걸어보는 사치를 자신에게 허락하자. 어디 한 번 느릿느릿 어슬렁어슬렁 걸어보자.

 

노는 즐거움, 자신이 어딘가 목적지로 가는 길 위에 있다는 생각에서 해방되어 지금을 사는 자유, 그저 거기에 존재함으로써 얻는 기쁨을 인정하자. 그 역시 다른 무엇보다도 소중한 일이라 여기면서. 단순한 취미나 여가에  속하는 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 방식으로서, 본질적인 시간의 사용 방식으로서 말이다.

 

걷기의 신인 발바닥은 노래한다

"멈춰 섬 또한 좋은 일"이라고.

- 나나오 사카키, <걷기의 신, 발바닥> 중에서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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