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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공포라는 산의 정상에 안심은 없다! 1

독립출판 무간 2016. 8. 12. 08:08

<볼링 포 콜롬바인>이라는 기록영화가 아카데미 상을 수상하여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총기 살상 사건이 끊이지 않는 미국 사회 내의 총기 소지 문제에 관한 영화다. 그러나 마이클 무어 감독은 영화를 통해 미국이 총기의 위협에 얼마나 많인 노출된 위험한 나라인가를 드러내려 한 것이 아니다. 영화는 총기보다 더 위험한 존재인 공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영화는 공포가 얼마나 미국인들이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고 있으며, 사고와 행동을 좌우하고 있는지, 국가 권력은 어떻게 그 공포를 능숙하게 다루어서 국민을 컨트롤하고 있는지, 어떻게 대기업이 대중의 소비를 선동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그저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얼마나 많은 공포들이 가득 차 있는가. 미디어는 그러한 공포를 선동하고, 한층 더 부풀려진 그 공포 위에 날로 번성한다. 최근의 예를 보자면 테러, 북한, 전력 부족에 의한 정전, 사스(SARS), 금융위기 등이 그것이다.

 

미국의 경우,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폭력에 대한 스스로의 방어가 불가능한 데 따르는 위험을 주장하면서 공포를 부추긴다. 그 공포 너머 저편에는 분명 평화와 안심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총이라는 공포에 대항하기 위한 총기 소지, 폭력이라는 공포에 대항하기 위한 폭력, 핵무기라는 공포에 대항하기 위한 새로운 핵무기. 더 커다란 공포를 통해 공포를 넘어서려는 것이다. 공포를 만들어 내는 힘을 더 큰 힘으로 제압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논리는 무기 소지나 전쟁에서뿐만 아니라, '경쟁'을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우리 사회에서도 일상다반사로 전개되고 있다. 더글러스 러미스에 따르면 애당초 경쟁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기본적인 정서가 바로 공포다.

 

암흑 속에 존재하는 공포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가난해질지 모른다', '거지가 될지 모른다'고 하는 공포다. 혹은 '병에 걸리면 의사에게 가야하는데, 어쩌면 병원에 갈 돈조차 없을지 모른다'고 하는 공포다.

 

이러한 공포에 사로잡힌 어른들은 아이들을 경쟁의 장으로 내몰지 않을 수 없다. 흘러넘치는 공포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학원에 보내고 수험공부를 독려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배우게 하고 운동에 힘을 쏟게 하여 자신의 아이들이 뒤처지지 않도록, 남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애를 쓴다. '더욱 더 열심히' 그들의 구호다. 안심이나 자기 만족 따위는 금기사항이다. 안신은 방심의 근원이며, 자기 만족은 자기 타락의 시작이니까. 지금의 자신에게 만족하면 끝장이며, '지금 여기'는 뛰어넘어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소비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갖고 있으니 나도 명품 가방을 사야 한다'는 심리는 혼자서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근거하고 있다. 새로운 옷을 살 때의 기쁨에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후줄근해 보일지 모를 자신에 대한 공포가 숨어 있다. 소비 행위는 타자와의 경쟁이며, '지금 여기'에 있는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다.

 

물론 경쟁에도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공포로부터 도망치듯 수험 경쟁에, 소비 경쟁에 뛰어드는 우리들은 그 경쟁에서 승리했을 때의 기쁨이나 경쟁을 마쳤을 때의 안심 등으로 자신을 격려할 것이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며, 안심은 한순간일 뿐이다. 경쟁을 떠받치고 있는 근원적인 공포가 제거되지 않는 이상, 경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좋은 고등학교에 합격한 당신은 그 합격을 위해 자신을 몰아갔던 똑같은 이유로, 더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 위한 경쟁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막 사온 양복은 당신의 손에 들어온 순간 이미 빛을 잃고 어딘지 불충분한 것으로 보여, 그 다음 유행에 따라 당신은 더 좋은 양복으로, 더 아름다운 자신을 향해 나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곳곳에서 공포에 휘둘리고 있다. 암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교통사고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지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 자신이 죽게 됐을 때 남은 가족들의 생계에 대한 공포, 이러한 공포들을 뛰어넘기 위해 보험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보험만으로 안심을 얻기는 어렵다. 여러 가지 상해, 사고, 재해가 실제로 일어나는 그 날까지, 항상 그것이언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릴 것이다. 가령, 어느 날 그러한 재난이 정말로 자신에게 일어나서 다행히 보험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고 해도 거기서 진심으로 안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보험을 통해 궁극의 안심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공포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지금 여기'를 부정하고 축소시키면서 '장래'를 계속해서 사들인다. 공포를 이용한 '사업'은 여기 저기서 발견된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의 대안,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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