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사랑이란 본디 시간을 포함하는 일이다! 본문
캐나다의 생물학자, 환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데이비드 스즈키는 <성스러운 균형>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과학기술 문명을 지탱해 온 기계적이고 합리주의적인 세계관이 벽에 부딪친 지금, 그것을 대신할 '신화' 창조가 기대되고 있다. 누구나가 이것만은 공유할 수 있겠다고 하는 기본적인 인식이란 과연 무엇일까? 다시 한번 그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
이 책은 우리 인간이 생물이자 동물이며, 포유류이고, 공기/물/흙/태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를 현대과학은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소개하고 있다. 공기, 물, 흙, 태양은 우리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것들, 우리 존재와 불가분의 것들이다. 어디까지가 공기(물, 흙, 태양)이며, 어디까지가 자신인가 하는 경계조차 희미하다. 이른바 공기(물, 흙, 태양)는 나라는 존재와 융합되어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물은 나다' 혹은 '나는 곧 대지다'라고 하는 표현들은 비유가 아니며, 시적 감상은 더욱 아니다.
이렇게 스즈키는 공기, 물, 흙, 태양에 관해서 논한 뒤, 인간 존재가 이 네가지 요소만으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의미에서 대해 이야기한다. 인류학자인 애슐리 몬테규가 자신의 연구를 통해 밝힌 바와 같이 '사람이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은 결코 문학적 감상주의가 아닌 생물학적 사실이며, 사람이 사람인 까닭이기도 하다.
1989년까지 이어진 전제주의 시대의 루마니아에서는 국가의 무분별한 인구 증가 정책의 결과로 한 때 공공시설에 수용된 아이들의 수가 30만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마지막 몇 해 동안 알 수 없는 이유로 많은 아이들이 죽어 갔다고 한다. 일정한 의식주가 주어지고, 집단 질병을 일으킨 것도 아니었는데, 이러한 대사망이 일어난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랑의 결핍 때문이었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공기, 흙, 물, 태양 그리고 사랑. 자신들의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이며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그것을 더럽히지 않고 상처 입히지 않고 모독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성스러운 것'으로 존중한다. 저자는 바로 여기에 문화의 본질과 인간의 깊은 지혜가 자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생명과 그것이 근거해 있는 모든 것들을 성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신화'의 재생과 창조를 이야기하고 있다.
각각의 지역에서 자라난 균형, 조정, 정화의 메커니즘으로서의 문화는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훼손되고, 지금 세계화의 물결 앞에서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르러 있다. '치유healing'라는 말 등이 유행하는 것은 그러한 문화적 위기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치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랑뿐이다. 좀 뻔하기는 해도 역시 그렇게 밖에는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사랑은 정말 더딘 것'이라고도 말해야겠다. 사랑에는 시간과 수고가 필요하고, 시간과 수고를 필요로 하기에 사랑인 것이다.
불과 십수 년 전까지 루마니아에서 행해지고 있던 것은 오로지 효율적으로 아이들을 기르고 교육하는 실험이었다고 보여진다. 우리는 이를 단순히 냉혹한 권력자의 광기쯤으로 치부해 버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한번쯤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비효율적이고 더딘 자녀 교육에 혹시 싫증을 내고 있지는 않았는지, 우리는 사랑에 있어서도 효율적인 방법 따위를 찾고 있던 것은 아닌지...'
육아, 사회화, 교육 등은 모두 시간이 걸리는 느린 과정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에서의 느림만은 아니다. 사랑이란 본래 시간을 포함하는 일이다. 그것이 본질이기에 시간을 절약하거나 속도를 높이거나 효율화하는 일은 그것의 본질을 훼손시킬 수밖에는 없는, 그야말로 '가장 비효율적인 프로세스'일지도 모른다.
가장 하찮은 인간일지라도
꽤나 위대한 것이지...
그 자를 사랑하기에는, 인간의 일생으로는 너무도 짧구나.
-오사다 히로시, <옛 스승의 죽음> 중에서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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