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슬로머니 : 왜곡된 경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돈'이 필요하다! 본문
국제금융 학자인 버나드 리테어는 유럽 통합 통화인 유로화 창설에 관여한 인물이며, 금세기에 주목받고 있는 지역통화, 보완통화 전문가다. 그는 돈의 역사에 관한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돈이란 한 커뮤니티에서 '무엇인가'를 교환하는 매개로서 사용하자고 하는 '하나의 약속'이다.
그런데 이제 중요한 것은 '돈은 물건이다'라는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리테어는 우리들 머리 속에 있는 돈과 물건의 연결을 끊어 내기 위해서는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상태를 상상해 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 곳에서는 칼과 같은 물건은 쓸모가 많겠지만, 돈뭉치 따위는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 봐야 휴지나 다름없으니까. 우리가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가는 시점에서는 '돈이 더이상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의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보아도 이제 더 이상 돈은 물건이 아니다. 1971년 미국은 금본위제(화폐의 가치를 일정량의 금의 가치와 같게 만든 제도)에 종지부를 찍고, 달러의 가치 기준을 금 보유량으로 삼기를 포기했다. 달러와 금의 교환을 정부가 보증하고 있지 않은 지금, 우리는 달러에 가치가 있다고 절대 확신하지 못한다.
하나의 '약속'으로서의 돈은 언제나 어느 특정 커뮤니티 안에서만 유효하다. 어떤 통화가 어느 커뮤니티 내에서 어떤 가치를 갖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데는 신용이 필요하다. 또한 그 신용을 뒷받침할 만한 권위와 권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유럽 역사에서는 사회 권력을 누가 쥐고 있었느냐에 따라 돈을 발행하는 주체가 교회이기도 했고, 때로는 군주이기도 했다. 그리고 국민국가가 권력을 쥐게 된 시대에 국가 통화는 곧 지배력이 되었다. 리테어에 따르면,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있는 세계화 시대에 국가 통화 이외의 통화가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지역통화, 대체통화, 보완통화라 불리는 '또 하나의 돈'이 앞으로의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게 리테어의 생각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 인류는 그 존속이 위험할 정도로 위기에 직면해 있는데, 이는 경제 양상이 왜곡된 탓이다. 본래 사회가 평화롭고 안정적이 되기 위해서는 도교에서 말하는 '음양'의 균형이 필요한 법인데, 이제까지의 경제는 오로지 '양'의 에너지를 가진 통화에 지배되어 왔다. 그리고 세계화와 달러의 단독 지배가 강력해지는 가운데 경제 양식은 점점 더 극양화되어가는 추세다. 리테어는 여성적인 '음'의 에너지를 활성화하여 사회의 균형을 회복하려면 '또 하나의 돈'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지역통화는 대체통화라기보다는 보완통화에 가까운 것이다. 즉, 달러화나 엔화와 같은 '양'의 통화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보완하고 균형회복을 도울 수 있는 통화를 의미한다. 내 식으로 말한다면 '슬로머니'인 셈이다.
본래 지역 공동체에서는 화폐 경제와는 전혀 다른 이론이 기반이 된 경제활동이 활발했는데, 그 대부분은 이미 화폐 경제 안에서 와해되거나 공동화되고 말았다. 지금 세계의 여러 다양한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지역 통화는 바로 이러한 영역의 재활성화를 꾀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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