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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라이프 : 적당하고 적합한 것이 아름답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12. 07:14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E.F.슈마허는 자신의 학문 분야인 경제학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경제학이라는 것이 국민소득이라든가 성장률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언제까지고 넘어서지 못한 채, 빈곤, 좌절, 소외, 절망 등과 범죄, 현실도피, 스트레스, 혼잡 그리고 정신의 죽음과 같은 현실의 모습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러한 경제학을 폐기하고 새로운 경제학을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또는 그는 '더 빠르게, 더 많이'만을 외치며 대량생산에 봉사하는 거대 기술이 아니라 마하트마 간디가 말하는 대중에 의한 생산에 봉사할 수 있는 민주적인 기술을 제창한 바 있다.

 

"나는 기술 발전에 새로운 방향을 부여하여 그 기술이 이제 인간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자그마한 존재의 키 높이에 맞춘 방향이기도 하다. 작은 것이야말로 멋진 것이다."

 

작은 키에 어울리는 적당한 사이즈와 규모가 있는 것처럼 자그마한 존재인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커뮤니티에도 그에 어울리는 작음이 필요하다.

 

'느림의 문화'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각자의 키에 맞는 보폭과 속도가 있는 것처럼 각각의 문화에도 그에 걸맞은 속도가 있다. 또 사람과 자연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적당한 리듬과 속도의 완급이 필요한 것처럼, 세상 만사에도 그에 적합한 시간의 흐름이 존재한다.

 

슈마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술은 인간이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법칙과 원리로 발전해 간가. 반면 자연계는  성장과 발전을 '언제, 어디서 멈출 것인가'를 알고 있다. 자연계의 모든 것에는 크기, 빠르기, 힘의 한도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 일부인 인간도 자연계 안에서 균형, 조화, 정화의 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기술이라는 것은 크기, 빠르기, 힘을 스스로 제어하는 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거기에는 균형, 조정, 정화의 힘이 작동하지 않는다.

 

슈마허의 '기술'이라는 말을 '현대사회'라든가, '경제'라는 말로 바꾸어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크기, 빠르기, 힘의 한도를 늘 숙지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자연계와 마찬가지로 균형, 조절, 정화의 힘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본래 문화란 사회 속에 그러한 절도를 불어넣는 메커니즘이 아닐까?'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불문율, 도덕, 예의, 신화, 두레, 장로의 위엄있는 말,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사람들의 행동거지나 몸가짐 같은 문화적 양식은 스스로 균형을 이루고 조절하고 정화하는 문화적인 메커니즘이 아닐까. 그러나 이러한 메커니즘은 파탄난 지 이미 오래다. 그리고 무한히 '더 크게, 더 빠르게, 더 강하게'를 요구하는 기형적인 사회가 마치 자연계를 잠식하는 암세포처럼 번성하고 있다.

 

환경의 재생. 그것은 아마도 '작고 느림'이라는 가치의 복권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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