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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러움을 허용하지 않는 삶은 공허하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12. 08:24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 말은 우리 세대가 즐겨 쓰던 말이다. 우리는 늘 자신의 일상과 관련된 헛된 시간을 저주하며, 또한 자신 안의 비효율을 책망한다. 우리는 '시간이 걸리는' 일들 가운데서도 생산이나 돈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을 듯한 일들을 '잡일'이라든가 '잡무'라는 이름으로 분류해 낸다. 가사 전반이 그러하다. 그것은 '할 수만 있다면 하지 않고 지나가고 싶은' 성가신 일로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일종의 낭비로 여긴다. 또 그런 일에 손을 대면 댈수록 손해라고 여기면서 늘 자신에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라고 읊조린다. 청소나 빨래뿐 아니라 이제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조차 '잡무'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지.

 

대부분의 문화가 그렇듯, 일본에서도 가사의 대부분은 여성이 맡고 있다. 가사를 '할 수만 있다면 하지 않고 지나가고 싶은 잡무'로밖에 평가하지 않는 사회가 그 일을 맡고 있는 여성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이유를 여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잡일 바구니'라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자. 경제 효과라든가 효율이라든가 합리성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곳에서는 그 가치에 반하는 것이나 그에 걸맞지 않은 것은 잡일이나 잡무로 간주되어 쓰레기통으로 몽땅 던져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본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잡일 바구니 속에 우리들이 던져 넣은 것들 -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나눈 이야기가 잡담으로 분류되고, 수험 공부나 취직 등의 실리로 이어지지 않는 공부는 잡학으로 분류된다. 마찬가지로 놀이, 취미, 간호, 기도, 친구들과의 어울림, 산책, 명상, 휴식, 이러한 것들은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생산적인 시간 속에 포함되지 못하는 '잡일'에 불과하다. 어디 그뿐인가. 연애, 아이돌보기, 간호 혹은 과거 인생의 중대사라 여겼던 일들조차도 생산성이나 금전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는 잡일로 취급된다. 생물학적인 성장과 노화는 경제를 최우선하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비경제적이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생이란 애당초 이러한 잡일의 집적이 아니던가. '할 수만 있다면 하지 않고 지나가고 싶다'고 여기는 일들이 실은 우리들이 '삶의 보람'이라 느낄 만한, 우리에게 깊은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의 흐름들은 아닐런지.

 

잡일 처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성가시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말처럼, 작은 꽃을 들여다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 친구를 사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시간도 걸리지 않고, 조금도 성가시지 않은 일들 속에서 우리가 대체 어떤 즐거움을 발견해 낼 수 있을까?

 

지금 세계의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의 대전환 속에서 우리는 바구니 속에 던져 넣었던 것을 다시 하나하나 끄집어 내서 살펴보고 있다. '잡스러움'이야말로 그것들의 키워드인 셈이다. 생태계의 잡초, 숲속의 잡목, 농업과 먹거리의 잡곡처럼 잡담, 잡역, 잡음, 잡화, 잡학, 잡지, 잡종, 잡념 등과 같은 일이나 사물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스산한 것이 될까. 조잡하고 잡다하고 번잡하고 복잡한 것을 허용하지 않는 삶은 공허하다.

 

'잡스러움'의 재생을 위해 여성이 얼마나 중요할지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여성들은 지금껏 남자들이 성가셔하는 '잡일'을 담당해오면서 경제나 산업의 직접적인 시간과는 동떨어진 여유롭고 느긋한 시간을 살아내는 기술을 몸에 익혀왔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관용적이고 참을성도 많다. 내게는 그리 보인다. 21세기를 여성의 세기라 부르는 이유를 여기서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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