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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라이프 : 없는 것 애달파하는 대신 있는 것을 찾자!

독립출판 무간 2016. 8. 11. 22:23

도호쿠의 민속 연구가이자 음식문화에 조예가 깊은 유키 도미오는 '없는 것 애달파하는 대신 있는 것 찾기로'라는 모토 아래, 도호쿠 각지의 지역조성사업에 직접 관여해 왔다.

 

그는 도호쿠의 시골을 발로 찾아다녔다. 특히 그가 다닌 곳은 관광객의 발길이 전혀 미치지 않는, 이렇다 할 특색도 없는 곳이었다. 그 곳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 집안 마당에는 매실나무가 두 그루, 감나무가  세 그루, 뒤뜰에는 무화과나 잠나무, 그리고 처마 밑도 살펴보자. 양파, 마늘, 무, 곶감... 이러한 농가의 풍경들은 평범한 할머니들과 아주머니들이 만들어 온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매실을 말리고, 곶감을 말리는 일, 그것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심어왔다. 꽤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삶의 풍경을 다듬어 나간다. 그리고 그러한 풍경 속에 자신이 녹아 들어간다.

 

근년 들어서 유키는 미야기 현의 기타가미와 미야자키 지역을 자신의 근거지로 삼고 주민들과 함께 그 지역의 음식 문화를 조사했는데, 그는 이를 지본학이라 부른다. 기타가미 지역에서 이제까지 조사된 식재료는모두 410가지. 조리기술로는 물로 익히는 방법이 29가지, 재료를 써는 법만도 39가지나 됐다고 한다. 어째서 이렇게 다양한 썰기 방법이 있냐 하면, 다양한 식재료에는 각각의 특성과 개성이 있어서, 어떤 것은 땅딸막하고 어떤 것은 가느다랗고 또 어떤 것은 움푹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모양과 질감과 상태가 다르니, 써는 방법도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이처럼 풍요로운 음식 문화는 마당이나 처마 밑의 향토 식재료들과 그 각자의 개성을 살리는 조리 기술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오랜 세월에 걸친 그의 연구 결과이다.

 

풍요로움을 추구하며 경제성장 노선을 달려온 최근 수십 년 동안의 일본에서, 도호쿠 지방은 오랜 시간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여겨져 왔다. 또 이 곳 사람들은 도쿄 중심의 척도에 스스로를 맞추면서 미래를 개척해 가려고 애써 왔다. 이 곳에서는 풍요로움이 아주 멀리에 있다고 여겼으며,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이 곳에 없는 것'에만 향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러한 도호쿠에서 가치관의 일대 전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유키가 말하는 '없는 것 애달파하는 대신 있는 것 찾기로'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곳의 마스다 히로야 지사는 <분발하지 않기 선언>을 발표했으며, 가치관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이와테 현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변두리 지역인 쿠즈마키 지역의 에기리가와 지구, 이 '아무 것도 없는 산촌'은 지역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있는 것 찾기'를 시작했다. 그들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이 다이쇼 시대(대정 1912~26)부터 쓰여 왔던 물레방아 세 대. 이 곳이 일본에서도 가장 늦게 전기가 들어온 지역이었기 때문에 그 물건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에 눈에 들어온 것이 잡곡과 메일. 쌀농사가 그다지 잘 되지 않는 이 곳의 서늘한 기후 덕분에 이 지역의 특산물이 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활력 넘치는 할머니들과 아주머니들. 이 세 가지 요소를 결합시킨 것이 바로 '숲속의 메밀국수집'이다. 물레방아를 동력으로 방아를 찧고, 여자들이 손으로 직접 빚어 만든 메밀국수와 함께 잡곡밥, 화롯불로 구워 낸 곤들매기를 곁들여 내놓는다. 이것이 큰 인기를 얻게 되면서 지금은 점심시간이면 사람들이 이것을 먹으려고 길게 줄을 늘어설 정도가 되었다.

 

야마기타 현의 쓰루오카 시의 경우는 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댐 건설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좋은 물로 널리 알려진 데와의 삼산에서 흘러나오는 지하수를 지켜 내는 것을 지역 조성 사업의 기본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모여서 '맛있는 물 팬클럽'을 결성하기도 했다. 그 중 한 사람인 이탈리아 요리사 오쿠다 마사유키는 우물을 사들이고, 그 곳에 레스토랑을 지었다. 식재료의 대부분은 마을에서 나는 것들을 사들였다. 그의 하루는 먼저 자신의 밭에 나가서 야채들의 상태를 살펴보고, 그 날의 재료를 결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이름은 '알 케차노'. 이탈리아풍의 이름은 사실 그 곳 사투리인 '아루케차노(아아, 여기 있었구나!)'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즉, 멀리 있는 것만을 바라보던 사람이 문득 자신의 발밑에서 가치 있는 것을 재발견했을 때와 놀라움과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말이다. 그것은 또한 지금 도호쿠 지방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치관의 전환을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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