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슬로라이프 : 보이는 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돈, 지역통화! 본문

세상 이야기

슬로라이프 : 보이는 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돈, 지역통화!

독립출판 무간 2016. 8. 11. 13:01

내가 환경운동을 벌이고 있는 남미 에콰도르에는 신토랄이라는 통화가 있다. 경제 위기에 신음해 온 에콰도르에서는 2년 전 정부가 반대 여론을 누르고 법정 통화를 미국 달러화로 전환하며 기존 통화인 수크레를 폐지했다. 서민층에서 시작된 신토랄은 극히 불안정한 수크레 경제로부터 자립을 위한 통화 시스템으로서, 달러화 이후의 혼란 속에서 점점 빈곤해지는 서민 생활의 안정화 수단으로 착실하게 뿌리내려 갔다.

 

지역 통화가 지금 전 세계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징은 법정 통화와 달리 이자가 붙지 않는다는 것. 에콰도르의 신토랄에도 이자가 없다. 눈에 보이는 사물로서의 지폐나 동전 대신 그저 소박한 수표의 주고 받기와 통장 상의 대차 관계만이 존재한다. 이들은 얼굴이 보이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각 그룹은 인원 50명까지로 제한한다. 이러한 그룹은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네트워크의 범위를 넓히며 자유롭게 교역한다. 몇 개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에서 사람들은 각 지역의 산물을 가져와서 신토랄을 매개로 물건들을 사고 판다. 코타카치 시에서 시장을 주재하고 있는 키추아족 사람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감자를 팔고 싶은 사람이 있고, 또 그것을 사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달러가 없다는 이유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멀리 떨어진 미국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돈을 지금 여기에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신토랄은 자신이 사야할 필요와 상대의 팔아야할 필요가 일치하면 언제든 직접 발행할 수 있는 통화다. 예전처럼 상품을 헐값에 사들이며 농민들 위에 군림했던 중개인들도 이제는 필요가 없다. 키추아족의 대부분은 농민인데, 이전에는 자신의 작물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늘 눈치만 살피던 이들이 이제는 자신감을 되찾아 시장에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과 대등한 입장에서 거래한다. 신토랄을 사용하면서부터 커뮤니티에 활기가 넘치고 시장의 분위기 또한 흥겨워서 흡사 축제 같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는 생활하는 데 일주일에 30달러는 있어야 했는데, 지금은 10달러면 족하게 되어 모두 만족스러워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이른바 선진국에서 신봉되고 있는 '덧셈의 경제'를 뒤집는 '뺄셈의 경제'라는 발상이 멋지게 반영돼 있다. 이제까지 우리들은 일주일 생활비가 10달러에서 30달러로 바뀌는 것을 '진보'라 여겨 왔다. 한편 인구의 80퍼센트 이상이 이른바 '빈곤층'이하라 일컬어지는 남미의 작은 나라에서 진행중인 대체 통화의 실험에서는 30달러에서 10달러로 줄어드는 것이 진보라고 여겨지고 있다.

 

신토랄이라는 통화 시스템을 고안한 교육 사상가 마오리시오 비르도는 이제까지 '에코노미아(economia)' 대신에 '에코시미아(ecosimia)'를 제창하고 있다. 에코시미아라는 말의 철자 속에 들어 있는 부정의 'no'를 긍정의 'si'로 바꾼 일종의 말 놀이를 통해 비르도는 이렇게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성장률로밖에는 말할 수 없는, 이제까지의 덧셈 경제는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과 자연 환경을 희생물로 삼아야만 성립되는 '부정형의 경제'였다. 그러나 이제 문화와 자연의 풍요로움을 함께 누리며, 동시에 그것을 지지하는 순환 공생형의 '긍정형 경제'가 요구되고 있다.

 

신토랄은 하나의 통화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패스트 머니'가 아니라, '슬로 머니'다. 에코시미아, 그것은 약육강식과 경쟁의 경제가 아니라, 여유로운 관계 속에서 서로를 살려 나가자는 '살림의 경제'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야말로 경제라는 말 본래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겠는가.

 

존 레논이 <이매진>에서 노래했던 것처럼, 그러한 경제를 상상하는 힘을 우리는 먼저 몸으로 익혀야 한다. 지역 통화나 보완 통화, 대체 통화라 일컬어지는 '또 하나의 돈'은 그러한 상상력을 우리 안에 키우기 위해 필요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