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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발하지 않기 : 장애인, 뒤처진 것이란 없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11. 20:04

21세기에 들어서도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들이 곳곳에서 끊임없이 들리고 있다. 특히 일본의 정치 세계를 들여다보면 21세기 비전이라 할 만한 것을 전혀 갖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2001년 초 이와테 현의 마스다 히로야 지사는 <분발하지 않기 선언>을 발표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경제적인 이익에 편중하고, 그것을 화폐로 환산하여 가치를 따지고, 효율성만을 추구해 온 덕분에 일본은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반면 자연을 파괴하고 귀중한 지구 자원을 낭비하고 지역의 자립을 해쳐왔다. 20세기적인 '개발, 대규모, 집중'과 같은 가치관을 되돌아보아야만 한다. 그래서 이와테 현은 '시간, 여유, 안정, 자연환경' 등 이제까지는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들을 제대로 평가하는 일부터 시작하겠다."

 

이는 척도를 바꾸는 일이다. 이제까지 '뒤처져 있다'고 일컬어져 온 도호쿠 지방은 새로운 척도로 말한다면, '일본이 지닌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땅'으로 변신하게 될 것이다.

 

마스다 지사에 따르면 '분발하지 않기'란 이제까지와 같이 도쿄나 뉴욕 등의 척도에 비추어서 '없는 것'을 애석해 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다른 지역과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재발견함으로써 각각의 지역에 맞는 개성과 특성, 각자의 페이스에 맞춘 발전의 길을 열어가겠다는 것이다.

 

개개인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 차원에서 '분발하지 않기'란 각자의 개성과 특성, 페이스에 맞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이를 신체 장애인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좀더 이해하기 쉽다.

 

우리의 친구인 후쿠다 미노루는 늘 이렇게 말한다. "장애인라고 해서 어째서 분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지?" 뇌성마비인 그는 자신을 '우주진'이라 부른다. 자신은 우주의 먼지, 즉 어엿한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뜻인데, 이는 시인이기도 한 그 나름의 시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우주진은 늘 사람들로부터 '분발하라'는 말을 듣는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분발하라'고 할 때, 거기에는 동정심과 함께 혹시 얼마쯤의 죄의식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이러한 레이스는 장애자들에게 있어 페어 플레이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읻.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비장애인들은 이렇게 말할 수 없다고 느낀다.

 

'이 레이스는 페어 플레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당신은 레이스를 계속해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왜냐하면 삶의 보람을 찾을 만한 인생이 따로 없을 테니까.'

 

그러한 생각으로 비장애인은 탈락하지 않고 계속 레이스에 남아 있는 장애인 혹은 그러한 불리함에 굴하지 않는 장애인을 상찬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마음 속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던 죄의식이 '분발해서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 앞에서도 한순간이나마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의 존재에 스스로 격려되고 혹은 질타를 받으면서 자신도 그들에게 지지 않도록 분발하여 인생이라는 레이스를 계속 달려 나가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 말고는 삶의 보람을 찾을 만한 인생이 따로 없을 테니까.

 

우주진의 말을 빌리면 '분발하라'는 말은 전쟁을 연상시킨다. 한 사회가 전쟁을 치를 때 사람들은 서로 '공동의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우주진은 '국가 총동원령'과 같은 것이 내려질 때 장애인은 손발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먼저 제쳐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것은 근대사를 돌아볼 때, 나치가 저지른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우생사상이라면 지금의 평화로운 일본에서도 시시각각 강조되고 있지 않은가.

 

우주진은 말한다. 자신은 게으름뱅이로 머물고 싶다고.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살고 싶고, 입고 있는 것은 누더기여도 좋으니, 그냥 자신을 내버려두어 달라고. 단, 게으름을 피운다고 해도 그것은 스스로에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자신에게는 자신만의 페이스가 있고, 기준이 있다. 거기에 맞추어 자기 나름대로 살고 싶다. 그러니 정상적인 사회가 자신들에게 요구하는 페이스는 따라가지 않을 것이며, 자신을 놔두지 않을 경우 거기에 저항할 것이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게으름뱅이로 머무는 일이다.

 

사회는 점점 가속화되어 간다. 같은 화살표 방향을 향해 사람들은 서로 앞서 나가겠다고 다투어 달린다. 속도로 서로 경쟁하는 사회가 장애인들이 살기 편한 사회일 리 없다.

 

우주진은 말한다.

"나도 살기 어려워, 지금의 세상은. 하지만 비장애인들도 역시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는 게 아닐까. 아니, 어쩌면 비장애인들이 더 살기 힘들지도 몰라. 나와 같은 게으름뱅이를 보면서 장애인들이 자기 자신이 느끼는, 사는 일의 어려움을 한번쯤 돌아봐주었으면 좋겠어."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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