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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없이 자란 닭들 1 본문

먹는 이야기

버릇없이 자란 닭들 1

독립출판 무간 2016. 8. 10. 11:28

프랑크 리히터와 안톤 폴만은 독일의 양계업자다. 리히터는 4,700마리의 암탉을 기르고 있고, 폴만은 수백만 마리의 암탉을 기르고 있다. 리히터는 친환경적 양계의 모범이 되었고, 폴만은 수많은 스캔들을 일으킨 후 감옥에 가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행복한 암탉과 고문받는 암탉의 이야기이며,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하는 양계와 산업화된 양계에 대한 이야기이며, 결국은 완전한 음식 즉 달걀에 대한 이야기다.

 

4,700쌍의 눈이 쳐다본다고 상상해 보자. 겁먹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과장이 아니다. 갈색 목과 볏, 부리가 바다를 이루고 거대한 암탉의 대양이 펼쳐진다. 수많은 대가리들, 땅바닥에 앉은 놈, 횃대에 오른 놈, 깃털을 곤두세운 놈, 양지바른 곳을 찾아다니는 놈... 이 곳은 다름 아닌 폴란드 국경에서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독일에서도 추운 지방에 속하는 우커마르크다. 봄이 멀지 않았지만 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4월의 바람은 아직 매섭다. 안에선 닭들이 요란한 즉흥연줄르 해대고 있다. 오전 11시, 알은 다 낳았을 시간이다. 꼬꼬댁거리며 오늘도 장한 일을 했다며 으스대고 있다. 알은 벌써 컨베이어 벨트로 옮겨져 자동저울에서 무게를 달고 고무로 된 집게팔로 무게에 따라 분류되고 민첩한 손에 의해 차곡차곡 상자에 담겨진다.

 

알을 낳고 나면 닭장 문이 열린다. 지붕 덮인 통로는 5헥타르의 방목장으로 통하며, 방호벽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거나 다른 동물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우리를 발견한 녀석들은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달려와 다리 사이에서 펄쩍거리며 구두를 쪼아댄다. 닭은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며, 먹을 수 있는지 먼저 부리로 검사해 본다. 사실, 프랑크 리히터의 닭들은 제대로 된 부리를 가지고 있다. 다른 양계장에선 서로 쪼아 피 흘리는 것을 막기 위해 부리를 불에 그슬려 무디게 하지만 이 곳은 닭의 부리를 건드리지 않는다. 리히터 씨는 익숙한 동작으로 암탉 한 마리를 잡더니 부리를 벌려 부리 않을 보여준다. 점이 박히고 핑크색이 도는 게 훌륭해 보인다. 부리는 닭에게는 중요한 도구로 먹을 것을 대어보고 판별하는 민감한 기관이다.

 

이 근처의 닭을 칭찬하자면 부리만으론 안 된다. 베를린에서 두시간 거리인 브란덴부르크의 그림메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한 복합단지는 양계장의 모범으로 삼을 만한 곳이다. 현대식이지만 특별한 필요에 따라 설계된 합리적이면서도 환경친화적인 양계장이다. 삼가 '가금의 교황님'으로 추앙받는 카셀 대학의 동물학자들은 브란덴부르크의 그림메 단지를 견학하도록 권하고 있다. 광우병, 유전공학, 가격폭락,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복잡한 보조금 등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이 같은 최고의 양계방식은 한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물론 전원적 분위기를 기대했던 사람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화려한 색깔의 수탉 한 미라가 여러 암탉을 거느리고 거름터미 주변에서 한가롭게 모이를 쪼는 모습은 책 속의 삽화가 아니면 소규모의 자급자족형 양계장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여기도 아직은 장밋빛 뺨의 통통한 시골 아낙네가 있긴 하지만, 그 같은 달걀 생산은 분명 한물간 것이다. 닭을 길러 생계를 꾸려나가고 싶다면 고도의 기능을 갖춘 대규모의 자동화된 양계장에서 적어도 3, 4천 마리는 길러야 한다.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모이와 달걀을 운반하며 효과적인 환기장치를 갖추어야 한다. 이제는 양이 문제가 되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프랑크 리히터가 자신의 갈색 팀에게 붙여준 이름대로 '터보' 암탉이 필요하다. 그가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그의 닭이 오직 한 가지, 즉 알을 낳는 목적에 맞도록 단련된 몸을 가진 진짜 운동선수이기 때문이다. 다른 종자들이 아무리 강하고 활력있고 자연에서 자란 놈일지라도 웬만한 양계업자에겐 여러 종류를 키울 만한 여력이 없다.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김종덕/이경남 옮김,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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