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오늘날 영국인들은 채식주의를 하나의 종교처럼 인정해준다 1 본문

먹는 이야기

오늘날 영국인들은 채식주의를 하나의 종교처럼 인정해준다 1

독립출판 무간 2016. 8. 10. 11:22

오늘날 영국인들은 채식주의를 하나의 종교처럼 인정해준다. 왜 그런 걸 고집하느냐고 따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채식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어디를 가나 당당하게 행동하며 또 평등하게 대우받고 있다. 채식주의라는 종교에서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도대체 이들이 사이비 신지인지 아닌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며 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따끔한 말을 해 줄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채식주의자도 극소수일 뿐이다. 이들 진짜 채식주의자들은 채소를 길러주는 땅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어떤 애착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고기 냄새 풍기는 식당이나 그 비슷한 저녁 파티에 더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최근 영국의 가장 큰 호텔인 리버풀의 아델피 호텔의 주방이 텔레비전에 공개되었을 때 고루한 사고방식을 가진 주방장이 채식주의자의 '문제'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것을 보면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늘 하던 대로 640명분의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채식주의자들의 예약 수가 시간단위로 늘어나고 있었다. BBC 방송은 이 요리사가 내뱉는 불평 중에서 방송에 적합하지 않은 부분은 '삑-' 소리로 처리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47명은 보통 채식주의자이고, 여덟 명은 철저한 완전 채식주의자이며, 두 명은 남이 손댄 음식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자급자족형 채식주의자였다. 그리고 그 날 하루만이라도, 아니면 저녁 한 끼만이라도 고기를 먹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이 아마 '몇 백 명쯤'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 주방장은 자기가 그 식당의 주인이고, 하루쯤 장사를 망쳐도 될 여유가 있다면 그들을 모두 내쫓아버릴 거라고 목청을 높였다. 어떤 경우든지 그는 그들을 가짜라고 의심했다.

 

그래도 가짜가 아닌 완전 채식주의들이 존재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들은 고기를 먹지 않고 생선도 낙농제품도 심지어 달걀도 먹지 않는다. 실제로 그런 예가 공개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일반 채식주의자들 가운데에는 생선을 먹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가끔이나마 베이컨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혼동을 주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을 아예 '대체로 채식을 하는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상당수다. 이 주방장이 그 날 밤 자신의 메뉴를 거부하는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채식주의자들도 무턱대고 채식을 고집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다. 어떤 특별한 메뉴를 미리 주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와서 있는 것들 중에서 골라 즐긴다. 그리고 그들은 초대를 받아 가는 저녁 파티엔 메뉴가 많지 않으므로 마음대로 고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식당에서만큼은 원하는 것을 선택해 가며 먹길 바란다.

 

채식에 대한 순결성을 따지던 시기는 전쟁이 나기 전까지였다. 그 때만 해도 영국의 보통사람들은 채식주의자를 아주 까다롭고 별난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다. 작가 조지 버나드 쇼 같은 사람이 전형적인 채식주의자였다. 그는 매우 예리한 지성을 지녔으나 독설가였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불통이었다. 채식주의자라고 하면 턱수염을 기르고 샌들을 신고 괴팍한 생각을 하며 별난 관계를 가진 사람인 줄 알았다. 채식주이자는 거의 틀림없이 사회주의자였고 무정부주의자 아니면 동성애자였다. 빅토리아 시대 말기의 은둔자 에드워드 카펜터가 생각난다. 그는 케임브리지의 수학자라는 그럴듯한 직업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가 금욕생활을 하며 노동자인 남자 애인과 살았다. 그는 채식만 했으며 저술활동에 몰두했고 1년 내내 밖에 나와 앉아 지냈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일요일 오후가 되면 차를 타고 나와 그가 무얼 하는지 보곤 했다. 그러나 100년도 더 지난 지금은 채식주의도 동성애도 모두 용인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행하는 세상이 되었다. 똑같이 채식주의라고 말해도 우리는 그 때와 전혀 다른 현상을 말하고 있다.

 

요즘에는 누가 고지식하게 채식주의를 지킨다고 해도 그를 따돌리지는 않는다.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이 1970년대에 영적 지도자 크리슈나를 만난 후 고기를 입에 대지 않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흥미롭게도 많은 사람들은 무조건 조지 해리슨을 따라 했다. 그가 따른 베다의 교리는 동물을 죽이지 말라고 했고, 동물을 먹는 것은 불행한 윤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고, 인간의 마음에 폭력성을 불러 일으킨다고 가르쳤다. 아돌프 히틀러도 채식을 고집했지만 채식주의는 여전히 평화를 상징했으며, 베트남 전쟁 후 히피와 젊은이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녔다. 마찬가지로 만약 어느 부자나 미인이 고기를 포기했다면 우리 가운데서도 굳이 불교로 개종하지 않고도 단지 부자가 되거나 아름다워지고 싶어 그들을 따라 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김종덕/이경남 옮김,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이야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