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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영국인들은 채식주의를 하나의 종교처럼 인정해준다 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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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영국인들은 채식주의를 하나의 종교처럼 인정해준다 2

독립출판 무간 2016. 8. 10. 11:24

크리슈나에 따르면, 그래도 진정으로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내 친구 하나는 채식주의를 너무 철저히 신봉하기 때문에 그들 부부를 저녁식사에 초대한다면 그 앞에선 고기를 자를 엄두도 내지 말아야 한다. 반면에 아주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방법으로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꾼 채식주의자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콜린 스펜서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몇 년 전에 출판된 300쪽에 달하는 그의 저서 <이교도의 축제 : 채식주의의 역사>는 그가 변절자만 아니었어도 그럴듯한 책이 될 뻔했다. 그런 사람들은 오로지 하나의 명분만 옳다고 여기고 그 명분을 위해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종류의 현대 채식주의자들이 개인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손쉽게 원하는 음식을 얻을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일 수밖에 없다. 공격적으로는 채식주의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업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느냐의 문제이고, 개인적으로는 식탁에서 이들을 배려해야 할 예절이 확실히 정립되어 있는가 하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음식을 대접하는 점을 놓고 보면 내 생각은 '아니올시다'이다. 있는 것에서 골라라. 고르려고 하면 얼마든지 고를 수 있다.

 

어쨌든 크리슈나의 주장을 듣고 있다보면 그가 우리에게 채식주의를 논리적으로 강요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고기를 먹으면 알게 모르게 내 손으로 동물을 죽이는 셈이 된다고 주장한다. 나도 동의한다. 나도 인간이 살고 죽는 문제만 아니라면, 실험으로라도 동물을 죽일 생각이 없다. 그러나 문명사회에서 음식과 종교는 별개의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원칙이 어떤 것이든 원칙을 고수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연회의 즐거움이다. 그래서 채식을 한다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고기를 먹고, 그러면서도 굳이 사교적이 되려고 애쓸 생각도 없기 때문에 계속 채식을 고집하는 어정쩡한 채식주의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채식주의를 택한다고 해서 입맛을 크게 손해 보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하나님에게 감사할 일도 아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채식주의자가 영국에서 특별히 위세를 떨친 것은 우리 모두가 즐기는 다양하고 신선한 야채가 충분히 공급되기 때문일 것이고 우연히도 전반적으로 고기의 품질이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많건 적건 붉은 고기가 건강에 나쁘다는 주장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 주장은 옳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고기를 먹지 않으면 오래 살 수 있고 기분도 한결 가뿐해질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채식주의자들을 다른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낫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개인적인 입맛을 굳이 차별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포장되거나 가공된 음식을 산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채식주의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단순히 어떤 신념의 선택이라고 단정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몇 년 전 러시아가 처음 개방되었을 떄 나는 러시아의 중년 여성들이 같은 또래 서구 여성들의 날씬한 몸매를 부러워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우리도 야채만 풍부하다면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어요" 러시아 공산당의 실책 가운데 하나는 고기 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국민들에게 고기를 마구 퍼주었다는 것이고, 그렇게 다량으로 공급된 고기 덕에 사람들은 몇 시간이고 포만감이 지속되어 가뜩이나 황량한 마을에서 카페나 스낵바를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기를 밝히는 식성은 19세기적 빈곤과 전쟁의 박탈감에 대한 반작용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나는 서양의 채식주의라는 것이 사실은 자유세계가 그렇게 바라는 풍요의 횃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횃불은 20세기의 4분의 3에 걸친 기간 동안에 타오른 것이었다. 우리는 크리슈나를 그다지 숭배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거움을 추구하는 자유를 더 신봉한다. 실제로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숭배하며 우리의 현재 조건을 신봉한다. 그리고 그것은 딱히 영웅적인 것도 아니고 단지 우리가 대단히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확인일 뿐이다.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김종덕/이경남 옮김,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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