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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이야기

자연스럽지 못한 음식, 자연스러운 음식

독립출판 무간 2016. 8. 10. 11:20

"싱싱하고 한창 제철"이라는 말을 들으면 오랜 옛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때는 맛이 뚜렷했고 진짜였다. 요즘처럼 재료에 관계없이 모든 음식 맛을 똑같이 만들어 내는 산업기술이 등장하기 전의 일이다.

 

하지만 이것도 따지고 보면 오해일지 모른다. '오랜 옛날'의 음식문화에도 사실 '싱싱함'이나 '제철'이라는 개념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알려면 '빈곤층'의 식사습관과 엘리트 식단의 역사를, 다시 말해 하층계급과 지배계급의 음식문화를 따로 나누어 살펴보아야 한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빈곤층은 굶주리는 일을 밥 먹듯 했다. 어쩌면 굶주림 자체보다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을 것이다. 배불리 먹고 나도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필요할 때 양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좀처럼 떨치기 힘든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양식을 모으고, 저장하고, 좀 더 오래 보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는 계적의 변덕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로 나타났다. 주리지 않으려고 그렇게 많은 궁리를 한 이유가 이것 말고 달리 있겠는가? 곡물이나 콩이나 밤처럼 오래가도 잘 상하지 않는 것을 양식으로 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또 우유를 치즈로, 고기를 말리거나 조림으로, 과일을 잼이나 마멀레이드로 가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생선과 채소를 소금에 절이는 것도 그렇고, 음식을 연기에 그슬리거나 햇볕에 말리는 것, 기름에 절이는 것 등이 모두 이러한 노력에서 나온 방법이다. 설탕, 가름, 식초, 연기 같은 자연물들이 음식을 변형시키고 건조시키고 특성을 변화시켜 장기간 변하지 않게 해주는 식이 아니고는 오랜 기간 동안 한결같은 식사를 보장할 수 없었다. 어떤 농민도 '제철'에 나는 신선한 음식만 가지고는 식사를 온전히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권력자나 경제력이 있는 사회 여러 분야의 엘리트층은 사정이 달랐다. 가난한 사람들과는 달리 이들은 계절상품을 특권의 상징처럼 식탁에 올렸다. 예컨대 중세 때 선선한 과일은 '귀족 식사'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또 냉장고기와 건조식품 대신 신선한 고기와 생선을 즐겼다. 하지만 매우 최근까지도 부유층들은 '자연적인' 음식과 맛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로마, 중세, 르네상스의 요리 스타일은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요리를 변형하고 왜곡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단 것과 신 것, 짠 것과 신 것 등을 섞는 것이 유행이었다. 여러 가지 향료들을 첨가했고, 재료의 원래 맛이 죽어버리는 파이나 페이스트리 따위를 편애했다. 어떨 때는 생선의 모양과 결에 따라 곁들이는 고기가 정해지고, 또 어떤 경우엔 반대로 고기의 형태와 결에 따라 생선이 정해지는 등 요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쇼였으며, 놀랄 만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작업장이었다. 색깔을 내기 위해 자연적이거나 인공적인 갖가지 재료를 이용했고, 요리는 예술작품이 되었다. 서민들의 요리처럼 신선한 재료를 체계적으로 이용하는 방식과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의식적인 과시였다. 이미 '지역'과 '계절'을 한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러 지역에서 온 음식, 그리고 계절을 건너뛴 과일은 수백 년 동안 사치와 특권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탈리아 만토바에 있는 곤차가 궁정에서 일한 볼로냐 출신의 대요리사 바르톨로메이 스테파니는 17세기 요리예술의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엄격히 말해 '제철' 산물은 없다고 지적했다. 어떤 농산물이든 그것이 자라는 곳은 항상 있게 마련이며, '두둑한 지갑'과 '빠른 말'만 있으면 언제라도 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로마의 황제나 중세의 군주들은 계절에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산물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자랑으로 여겼다. 18세기 대수도원장 피에트르치아리는 귀족들이 '제철에 나오는 과일, 허브' 등 값싼 농산물을 싫어하고, '외국산 그리고 매우 희귀한 농산물' 즉 1월의 딸기, 4월의 포도, 9월의 아티초크(국화과의 식물) 등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보통사람들도 진기한 외국산 음식과 제철이 아닌 농산물을 즐겨 찾게 되었지만, 그직접적인 원인을 수송과 보존방식이 혁명적으로 개선된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수송이 편이해지고 보존방식이 개선된 덕에 오랫동안 소수의 특권이었던 음식을 보통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게 된 건 사실이지만 제철이 아닌 음식을 유독 좋아하는 전반적인 태도는 대체로 변한 게 없다.

 

사람들이 자연적인 요리와 '제철' 농산물을 찾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현상이다. 서로 이유는 달랐지만 빈곤층과 부유층 어느 쪽도 '제철' 음식에 호감을 갖지 않았다. 반곤층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굶주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원래 맛보다 강하게 하여 짠맛, 신맛, 또는 단맛으로 바꾸어 보존식품을 만들었다. 부자들은 제철을 거스러는 때 이른 음식을 식탁에 내놓아 그들의 풍요를 과시했다.

 

양배추에서 양배추 맛이 나고 순무에서 순무 맛이 나야한다는 생각은 단순해 보이지만 혁명적인 아이디였다. 하지만 이같은 문화가 유럽에서 자리를 잡은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은 17, 8세기의 프랑스 요리사들이었는데, 계몽주의의 특징인 문화적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탓이었다. 이 유파의 주장은 '자연의 단순함'을 재발견하자는 것이었다. 하나의 개념으로 내세우기엔 모호한 면이 없지 않지만, 당시 사회에서 문화적 자극제가 된 것만은 틀림없다. 오늘날 선진 산업사회에서는 굶주림에 대한 위협이 사라지면서 음식을 저장하는 문제보다는 '자연'식품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는 분위기다.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통조림, 냉장고, 냉동건조법 외에도 첨단기술을 이용하여 제품을 유지하는 방법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자연식품이나 제철식품을 보존하는 데는 그동안 이용된 전통방법보다 이같은 과학적 보존방법들이 더 적합하다.

 

따라서 우리는 신선한 음식을 산업적 음식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생각하여 무조건 전통만이 살길이라는 억지를 부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신선함'은 과거의 문화가 아니라 미래의 문화다.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 김종덕.이경남 옮김,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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