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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유기체가 서로 관련을 맺고 더불어 번성할 때 잉여생산이 가능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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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유기체가 서로 관련을 맺고 더불어 번성할 때 잉여생산이 가능하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10. 09:20

인도의 가축영농은 다양성이 파괴되었을 때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인도에는 옛날부터 우림의 나무들만큼이나 인간의 여러가지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다양한 품종의 소들이 있었다. 수소는 대개 짐수레를 끄는 데 쓰였고, 암소로는 젖을 짰다. 소들은 생활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의 80퍼센트와 마을에 필요한 비료의 절반 이상을 제공해 주었다. 서구의 농업기술자들이 이러한 유기재배 체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축의 힘을 더 이상 이용하지 않았고, 대신 전기와 기계를 도입했다. 그들은 소에게서 오직 우유나 고기만 가져갔고, 수레용으로 적합한 흑소를 비롯한 여러 품종의 소들을 없애고, 샤롤레이나 홀스타인 종으로 대체했다. 결국 오래 걷지도 못하고, 짐수레용으로도 적합하지 않은 유럽 교배종이 인도를 차지했다. 이러한 변화가 가져온 경제적, 생태적 결과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 트랙터가 없는 가난한 농민은 이웃 부자에게 빌리거나 세를 내어야만 했다. 그것도 주인이 기계를 쓰는 우기에는 손을 놓고 기다리다가 농사를 지어야할 우기가 끝나고 난 뒤에야 빌릴 수 있었다. 농민들에게는 이중의 고통이었다. 한편 요즈음 인도의 농민들은 화학비료를 사용하는데, 화학비료는 지하수와 토양을 오염시켰다. 뿐만 아니라 소를 이용하여 기름을 짜고 물을 푸는 등 예전에 부락생활의 한 부분을 이루던 아름다운 풍습이 많이 사라졌다. 이제 그러한 일들은 산업화되었고, 필요에 따라 중앙집중화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종속관계가 생겨났다. 농민들은 처음으로 기름과 심지어는 물까지 돈을 주고 사는 지경이 되었다. 농촌부락에서 전통적으로 해 오던 일이 없어지면서 농촌공동체의 창조적 생활도 함께 줄어들었다. 통계를 보면 우유 같은 특정 품목은 생산량이 증가했다. 그러나 이들 수치들이 단일 품종을 재배하는 방식 때문에 부락이 입은 보이지 않는 손실을 나타내지는 못한다. 시카고 곡물시장과 같은 도시 한복판에서는 이런 손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없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농촌부락에 가면 금방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식민지시대에 있었던 먼 과거의 일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유럽연합은 인도 가축을 표준화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해왔고, 그 프로그램에 따라 유럽 품종의 소가 계속 인도에 도입될 얘정이다. 인도의 여물이 맞지 않으면 사료도 함께 유럽에서 수입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가난한 농민들의 사정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고 부채만 늘어날 것이다. 부채를 갚으려면 생산량을 높여야 하고 따라서 그들도 필요한 만큼의 '잉여 생산량'을 얻기 위해서 더 많은 화학비료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단일품종 재배의 논리와는 대조적으로, 생물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입장에서는 살아 있는 유기체가 서로 관련을 맺고 더불어 번성할 때만 잉여생산이 가능하다고 여긴다. 현재 인도의 여러 지역에서는 전통 농업으로 되돌아가려는 시도를 힘겹게 벌이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의 남부 경사지 주민 가운데에는 경작지 한군데에서 열 두 가지 전통 곡물을 재배하는 농민도 있다. 이들 열 두 가지 곡물은 수세기 동안 서로에게 적응해 왔고, 다른 작물의 영양분을 빼앗지도 않고, 생산량이 줄어드는 일도 없이 사이좋게 공존하며 성장한다. 이렇게 혼합재배 방식을 택하면 옥수수 한 가지나 밀 한가지만 재배할 때보다 확실히 산출향이 더 많다. 하지만 전 세계는 수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생산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혼합작물은 농촌 사람들에게 균형있고 다양한 영양을 제공해 준다.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김종덕/이경남 옮김,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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