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도덕경 감산주 21장 본문

감산산책

도덕경 감산주 21장

독립출판 무간 2019. 1. 3. 20:30



21

 

 

孔德之容, 惟道是從.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兮恍, 其中有象; 恍兮惚, 其中有物. 窈兮冥,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

성해진 덕스러움의 모습이란 무릇 (의 본질) 그것이 펼쳐진 모습이자, (그것이) 드러난 모습이다. (그런데) 라는 물건은 무릇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하다. (그러나) 어슴푸레하고 어렴풋하지만, 그러한 가운데 실상을 가지며,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하지만, 그러한 가운데 실정을 가진다. 어둑하고 어둑하지만, 그러한 가운데 정밀함을 가지는데, 그 정밀함은 아주 참되다. (그러므로) 그러한 가운데 미더움을 가진다. 옛날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비유하면) 모든 아름다움(이미 모두 갖추어진 채) 이어지고 이어짐을 가진다. 내가 어찌 모든 아름다움(이 이미 모두 갖추어진 채, 이어지고 이어진 바임)을 앎으로써, 그것이 저절로 밖으로 펼쳐지는 바임을 알겠는가? 이로써.

 

 

此章言道乃無形名之形名也.

이 장은 일컫는다. “(본질로서의) 는 곧 (드러나는) 형상이 없고(無形; ·, ·), (따라서 지어 붙일) 이름이 없지만無名, (작용으로서의) 는 곧 (드러나는) 형상(; ·)이 있고, (따라서 지어 붙일) 이름(; )이 있다.”



, 猶盛也. 謂道本無形, 而有道之士, 和氣集於中, 英華發現於外, 而爲盛德之容. 且此德容, 皆從道體所發, 卽是道之形容也. 故曰: “孔德之容, 惟道是從.”

(“孔德之容, 惟道是從에서) “성하다는 말과 같다. (비유하면) 이른 바, (본질로서의) 는 본래 형상이 없지만, (그러한) 알아차려서 실천하는 선비는 (성리학의 표현을 빌리면, 이미 갖추어져 있는 바이자, 이미 자리하는 바인) (; 의 본질)’몸 안에서 (서로) 어우러지게 하고, (서로) 아우러지게 해서, 꽃봉오리가 터지고, 꽃잎이 벌어지듯, (그것을) 몸 밖으로 펼치고, 드러내는데, (그것이 본질로서의 도) 성해진 바로서의 덕스러움의 모습이 된다. 다시 말하면, 덕스러움의 모습무릇 본질펼쳐지는 바를 말미암는데, 다시 말하면, (그 덕스러움의 모습) 그것은 (무릇) (본질이 펼쳐진) 형상이자, (드러난) 모습인 것이다. 따라서 (노자) 일컬은 것이다. “孔德之容, 惟道是從.”

 

 

然此道體本自無形, 又無一定之象可見. 故曰: “道之爲物, 惟恍惟惚.” 恍惚, 謂似有若無, 不可定指之意.

다시 말하면, 그 도본질은 본래 자체로 형상이 없는데, (따라서) 또한 하나로 정해진 실상(; things)이 없고, (따라서 또한 그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따라서 (노자) 일컬은 것이다. “道之爲物, 惟恍惟惚.” “恍惚은 이른 바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해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는 뜻이자, (따라서 그 실상에 대해서) 정해 부르거나 가리킬 수 없다는 뜻이다.



然且無象之中, 似有物象存焉. 故曰: “惚兮恍, 其中有象. 恍兮惚, 其中有物.”

다시 말하면, 또한 (그 본질로서의 도) 실상이 없지만, (그 작용으로서의 도, 다시 말하면, 그 덕스러움으로서의 도는 그) 실정(; event)을 가지는 듯하고, (따라서 하나의) 실상으로서 존재하는 듯한 것이다. 따라서 (노자) 일컬은 것이다. “惚兮恍, 其中有象. 恍兮惚, 其中有物.”

 

 

其體至深至幽, 不可窺測. 且此幽深窈冥之中, 而有至精無忘之體存焉. 故曰: “窈兮冥, 其中有精.”

() 본질 (그 밑이) 지극히 깊고, (그 끝이) 지극히 먼데, (따라서 그 깊이나 넓이를) 가늠하거나 헤아릴 수 없다. 또한, 그것은 깊고 멀어서 (그 밑이) “어둑하고” (그 끝이) “어둑한데”, (따라서 그 밑이 어렴풋하고, 그 끝이 어슴푸레한데) 그러나 (그것은 그러한 가운데) 지극한 정밀함을 가지는데, (다시 말하면 그것은)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고,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를 잊어버린 본질(; )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자) 일컬은 것이다. “窈兮冥, 其中有精.”

 

 

其精甚眞, 此正楞嚴所謂: “唯一精眞.” 精色不沈, 發現幽秘, 此則名爲識陰區宇也. 學者應知. 然此識體雖是無形, 而於六根門頭, 應用不失其時. 故曰: “其中有信.”

정밀한 바(; )는 아주 참된데”, 이것이 바로 능엄경이 일컫는 바, “오로지 하나로 () 정밀한 바 (그것이) 참되다.” “() 정밀한 바(본래) 얽히거나 설키지않은 바인데, (그러나 이 얽히거나 설킨 채) 펼쳐지게 되고 드러나게 되면서, (그 본래의 정밀함에서) 멀어지게 되고, (그것이) 가려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이름하여 (····의 오음五陰 ) 에 갇히는 일인 것이다.” (따라서 후세의) 배우는 사람들은 (이것에) 응해서 (다음을) 알아야 한다. 본질은 모름지기 형상이 없는데, 그러나 (·····) 육근六根의 문이 열리게 되고, () 모습이 드러나게 되면서부터, 그 때를 놓치지 않은 채, (그것에) 응해서 (의 본질이 그 형상을) 일삼게 된다. 따라서 (노자) 일컬은 것이다. “(그 정밀한 바가 본래의 면모를 지키는) 그러한 가운데 미더움을 가진다.”

 

 

此上皆無形之形. 下言無名之名. 謂世間衆美之名自外來者, 皆是假名無實, 故其名易去. 惟此道體有實有名, 故自故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也. , 有經曆. , 美也.

이상의 문구들은 모두 형상 없음(無形; 본질로서의 도)’형상(; 작용으로서의 도, 덕스러움)’에 대해서 일컬은 문구들이다. 이하의 문구들은 (모두) ‘이름 없음이름에 대해서 일컬은 문구들이다. 이른 바, (비유하면) 세상 사람들世間이 말하는 모든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은 바깥(; things·event)으로부터 (일부러 일삼아) 말미암아진(; ) 바이자, 모두 (일부러 일삼아 지어 붙인) 거짓 이름으로서, 실상에 일치되거나 실정에 합치되는 바가 없는데, 따라서 그 이름이 (오래도록 이어지고 이어지지 못한 채) 사라지기 쉽다. (그러나) 오직, 이 도본질만이 실상에 일치되고 실정에 합치됨을 가지는데, 따라서 그 (오래도록 이어지고 이어져서 사라지지 않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데, 다시 말하면, “옛날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따라서 그렇게 사라지지 않은 채) 이어지고 이어짐을 가짐으로써, (그 실상에 일치되고 실정에 합치되는) 아름다움(옛날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느리게 되는(; ) 것이다.” “(사라지지 않은 채) 이어지고 이어짐을 가진다는 뜻이다. “(비유하면) 아름다움이다.

 

 

謂衆美皆具. 是以聖人功流萬世而名不朽者, 以其皆從至道體中流出故耳.

(다시 말하면) 이른 바, 모든 아름다움(이미) 모두 갖추어져 있다. 이것이 성인의 공오래도록萬世 이어지고 이어지게 되고, () 이름이 사라지지 않게 되(는 까닭일 따름이), 그것이 (‘지금) 모두(‘옛날) 본질말미암거나 (그것에) 다다르게 되고(; ·), (따라서 그것의) 가운데에 머물거나(; ) (그것과 더불어) 움직이거나(; )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게 되는(; ) 까닭일 따름이다.

 

 

其知世間王侯將相之名, 皆從人欲中來, 故其功亦朽, 而名亦安在哉? 唯有道者, 不期於功而功自大, 不期於名而名不朽. 是知聖人內有大道之寶, 外有盛德之容, 衆美皆具, 惟自道中而發也. 故曰: “吾何以知衆甫之然哉, 以此.”

이것으로써 알게 되는 바, 세상 사람들間王이 말하는 임금’, ‘제후’, ‘장수’, ‘재상과 같은 이름들은 모두 세상 사람들(그것들을)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는 가운데 말미암아진 것들인데, 따라서 그 공이 또한 (오래도록 이어지고 이어지지 못한 채) 사라지게 되는데, 따라서 () 이름이 또한 어찌 (오래도록 이어지고 이어져서) 남아있게 되겠는가? 오직, 알아차리고 실천하는 사람만이 그 공에 있어서 그 때를 가지지 않게 되고, 따라서 () 공이 저절로 (오래도록 이어지고 이어져서) 남아있게 되며, () 이름에 있어서 그 때를 가지지 않게 되고, 따라서 () 이름이 (오래도록 이어지고 이어진 채) 사라지지 않게 된다. 그것으로써 알게 되는 바, 성인은 안으로 큰 도를 보배로 여김을 가지게 되고, 밖으로 성해진 덕스러움얼굴로 여김을 가지게 되는데, “모든 아름다움(이미) 모두 갖추어져 있고, (따라서) 무릇 저절로 () 가운데에 머물게 되며, (따라서 그것과 더불어 움직이게 되거나,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게 됨으로써, 꽃봉오리가 터지고 꽃잎이 벌어지듯, 그것이 저절로 안에서 밖으로) 펼쳐지게 (되고,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노자) 일컬은 것이다. “吾何以知衆甫之然哉, 以此.”

 

 

해 설

노자가 말한 은 지나치게 밝아서 오히려 그 실상이나 실정을 또렷하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모습을 뜻하고, “은 반대로 지나치게 어두워서 그 실상이나 실정을 또렷하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모습을 뜻하며, “은 어둑하고 어둑해서 이것인지 저것인지 또는 이러한지 저러한지 알아차리기 어려운 모습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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