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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이야기

"경영자의 마인드로 열심히 일할 테니 경영자의 월급을 주세요. 품위 유지비와 운전기사도 꼭이요!"

독립출판 무간 2016. 7. 7. 11:14

"경영자의 마인드로 열심히 일할 테니 경영자의 월급을 주세요. 품위 유지비와 운전기사도 꼭이요!"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가 다리를 꼬고 눈을 찡긋하며 이렇게 말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이한섭(34)씨는 이 그림을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깔아놨다. 그는 "그림을 볼 때마다 이 남자가 나 같아서 웃음이 난다. 회사에서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할 때마다 '회사 지분 하나도 없는 내가 왜?'라는 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씨의 바탕화면이 된 이 그림은 지난 5월 나온 책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에 들어간 삽화다. '사축'이란 표현이 유행한 일본에서 30대 초반의 직장인 히노 에이타로가 쓴 책이다. 한국에서 출간된 지 한 달이 좀 넘었는데 5쇄까지 발행했다. 특히 수당을 제대로 챙겨받지 못하는 야근과 눈치 보며 써야 하는 휴가를 풍자한 삽화들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널리 퍼졌다. 책을 펴낸 출판사 오우아의 이연실 편집팀장은 "야근은 회사원들에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돈 받는 만큼만 일하고 인생의 낙은 다른 즐거운 것들에서 찾아도 된다고 말하는 책 내용이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보람과 열정만 내세워서 직장인들을 회사에 잡아두던 시대는 지났다. 한국은 OECD가 매년 발표하는 근로자 1인당 연간 실제 노동 시간 조사에서 언제나 최상위권이다. 작년엔 2124시간으로 2013년에 비해 45시간 더 늘어났다. 지난 3월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에서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은 주 5일 중 평균 2.3일을 야근한다. 주 3일 이상 야근한다는 응답자의 비율도 43.1%나 된다. 익스피디아가 전 세계 24개국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직장인이 사용하는 연차휴가는 8.6일로 조사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프랑스 30.7일, 독일 27.7일, 스페인 27.4일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휴가를 못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눈치가 보여서"다. 퇴근 후 업무와 관련된 이메일이나 스마트폰을 주고받거나 주말에 참가해야 하는 회사의 행사까지 포함하면 실제 업무 강도는 이보다 거세다.

 

공기업에 다니는 강현상(38)씨는 "퇴근 30분 전에 일을 시키는 건 그나마 양반이다. 토요일 새벽에 같이 등산을 가자거나 주말에 부서 야유회를 하자는 상사도 있다. 그에겐 주말 취미 생활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업무의 연장이다"라고 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김기선 박사는 "한국의 기업 문화는 근로자의 효율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근로자가 회사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리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사(公私)에 구분이 없고, 사생활에 대한 개념도 모호해졌다"고 했다.

 

지난달 22일 일명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이 발의됐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법안이란 걸 알면서도 직장인들은 이 법안에 지지를 보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오른 관련기사에 가장 큰 반응을 보인 것은 30대. 이런 '탈(脫) 사축' 움직임이 앞으로 기업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LG유플러스는 지난 3월부터 오후 10시 이후 업무관련 카톡 금지, 휴일 업무지시 금지 조항을 마련하고, 이를 위반한 상급자에 대해서는 보직 해임한다는 지침을 전 부서를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다. 지난달 현대자동차 계열 광고회사 이노션은 좋은 회사 만들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회사에서 투표로 정한 '마요 해요 10계명'을 발표했다. 압도적인 우위로 1위에 오른 것은 "칼퇴라고 하지 마요. 정시퇴근이라고 해요"였다.

 

사축(社畜) : 일본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로 직장인을 힘없는 가축에 빗댄 표현이다. 박봉, 불안한 지위, 긴 노동 시간 등 회사에서 팍팍한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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