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초원산책" 제14장 : 도道, 그것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다 본문

초원산책

"초원산책" 제14장 : 도道, 그것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다

독립출판 무간 2018. 6. 26. 10:10


14

 

 

시지불견視之不見, 명왈이名曰夷. 청지불문聽之不聞, 명왈희名曰希. 박지부득搏之不得, 명왈미名曰微. 차삼자此三者, 불가치힐不可致詰, 고혼이위일故混而爲一. 기상불교其上不曒, 기하불매其下不昧. 승승혜繩繩兮! 불가명不可名. 복귀어무물復歸於無物. 시위무상지상是謂無狀之狀, 무물지상無物之象. 시위황홀是謂恍惚. 영지불견기수迎之不見其首, 수지불견기후隨之不見其後. 집고지도執古之道, 이어금지유以御今之有, 능지고시能知古始. 시위도기是謂道紀.

 

그것을 보려고 해도 () 볼 수 없어서, 이름 하여 라 일컫는다. 그것을 들으려고 해도 () 들을 수 없어서, 이름 하여 라 일컫는다. 그것을 만지려고 해도 () 만질 수 없어서, 이름 하여 라 일컫는다. (‘’, ‘’, ‘’) 이 세 가지는 (보거나 듣거나 만짐으로써 밝히거나) 따질 수 없다는 뜻인데, (그것은) 섞여서 하나로 된 바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 밝지도 않으며, 아래가 어둡지도 않다. 이어지고 이어진다! 이름 지어 붙일 수 없다. 있는 듯 없는 듯하다. 그러므로 모양 없는 모양이라 일컬으며, 물건 아닌 물건이라 일컫는 것이다. 그러므로 황홀恍惚이라 일컫는 것이다. 그것을 맞이하려고 해도, 그 머리를 () 볼 수 없다. 그것을 따라가려고 해도, 그 꼬리를 () 볼 수 없다. (그러나 도, 그것은 이어지고 이어진다.’ 그러므로) ‘옛날(‘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는) ‘를 기준 삼음으로써, ‘지금(‘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일부러 일삼는 바) ‘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고, () ‘옛 시작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기道紀라 일컫는 것이다.

 

 

비록 (‘뚜렷하게’ “그것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만지지 못했더라도, 이미 그것을 보고, 그것을 듣고, 그것을 만진 것인데, 따라서 그것이 이름 붙여져 ”, “”, “라 일컬어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 “”, “”) 세 가지는 (‘뚜렷하게’ “그것을보거나 듣거나 만질 수 없음과 뚜렷하게는 아니더라도 그것을보거나 듣거나 만질 수 있음이) 뒤섞여진 표현이지만,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로서 (‘뚜렷하게이든 뚜렷하지 않게이든 그것을보거나 듣거나 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릇 또한 없음과도 떨어져 있고 (따라서 그것은” ‘뚜렷하게보거나 듣거나 만질 수 없는 바도 아니고), ‘있음과도 거리가 있다는 (따라서 그것은” ‘뚜렷하게보거나 듣거나 만질 수 있는 바도 아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 위(하늘처럼) 빛나 보이지만, (아주 뚜렷하게볼 수 있는 사물과 같이) “밝지 않기때문에, (아주 뚜렷하게볼 수) ‘있는 바라고 일컬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아래가 땅처럼 (어두워) 보이지만, (아주 뚜렷하게볼 수 없는 사물과 같이) “어둡지 않기때문에, (아주 뚜렷하게볼 수) ‘없는 바라고 일컬을 수 없는 것이다. (비유하면) ‘있음이 아니라면, 따라서 없음이라 일컬을 수 있지만, 그러나 () ‘없음없음(아주) 없는 없음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을”) “無狀之狀”, “無物之象이라 일컬은 것이고, “그것을이름 하여 惚恍이라 일컬은 것이다. 요컨대, (“그것은아주) ‘없음도 아니고 (아주) ‘있음도 아니며, ‘있음이자 없음이고, (1장의) “常有이면서 常無로서 () 그림자(꼬리)나 얼굴(머리)이 드러나는 것이다(雖不見不聞不得, 旣視之聽之搏之, 又爲之名曰, 希夷微焉. 又是三者, 混而爲一, 則蓋亦離無而涉有矣. 然其上見光者, 不曒, 則不可謂有矣. 其下爲土者, 不昧, 則不可謂無矣. 不有, 故可謂無, 然無, 不竟無. 故謂無狀之狀, 無物之象, 而名之曰, 惚恍. 於是乎, 非無非有, 卽有卽無, 常有常無之影貌, 顯矣).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함께 있고 함께 하며) “이어지고 이어지는것으로서, 끊어지지 않는 바이다. 그러나 앞에서 그것을 맞이하려고 해도, 그 머리를 볼 수가 없고”, 뒤에서 그것을 따라가려고 해도, 그 꼬리를 볼 수가 없다.” (그런데 그것은”) 따라갈 수 있는 단서도 없고 되돌아갈 수 있는 모양도 없지만, (만물이 따라가고 되돌아감으로써) 더불어 한 몸이 되는 바이다. 따라서 장자莊子(“그것을”) “도추道樞라고 일컬은 것이다. (따라서) “執古之道, 以御今之有인 것이다. 따라서 (장자莊子는 언제 어디서나 함께 있고 함께 하며 이어지고 이어지는것으로서, “끊어지지 않는바인) “그 고리(상관相關)의 중앙(이치)을 얻음으로써, () 응함이 무궁하다라고 일컬은 것이다. (예를 들어, 11장에서 보듯이, ‘없음은 독립적인 것으로서 있음이 아니지만) ‘없음있음’(과 상관됨)으로써 (그 자신의) ‘쓰임새에 다다를 수 있고, (‘있음은 독립적인 것으로서 없음이 아니지만) ‘있음없음’(과 상관됨)으로써 (그 자신의) ‘이로움을 일삼을 수 있으며, “執古之道, 以御今之有인 것인데, (이것은) 진실로 성인이 세상을 구제하고 사람을 제도하는 오묘함인 것이다. 그런데 무릇 세상 사람들은 (육체적 또는 정서적 편안함便 내지 정신적 혹은 물질적 이로움을 추구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라서,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는) 시류時流를 따라가고 (그러한) 말단을 쫓아감으로써, (그 언제 어디서나 함께 있고 함께 하며 이어지고 이어지는”) 근본을 잃어버리고 (끊어지지 않는’) 참됨을 망가뜨리게 된다. 따라서 (성인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는) “지금의 세상을 구제하고 사람을 제도하는 데 있어서, 오로지 (언제 어디서나 함께 있고 함께 하며 이어지고 이어지는것으로서 끊어지지 않는 바인) “옛 시작()”을 기준으로 삼고자 하는데, 따라서 (1장의) “衆妙之門이 열리게 되고, 의 근본과 참됨을 실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然是繩繩, 不絶者. 逆而迎之, 不見其首, 從而隨之, 不見其後. 循復無端相, 與爲一體者. 則莊生所謂道樞. 而執古以御今者, 卽所謂得其環中, 以應無窮者. 用無以利有, 執古以御今, 固聖人宥世應物之妙. 而但以世人隨流遂末, 浸失本眞. 故欲於御今之際, 念念契於古始, 則衆妙之門啓, 而能爲道之綱紀).

 

해 설

초원이 인용한 道樞得其環中, 以應無窮의 출전은 다음과 같다.莊子,齊物論, “是亦彼也, 彼亦是也. 彼亦一是非, 此亦一是非. 果且有彼是乎哉? 果且無彼是乎哉? 彼是莫得其偶, 謂之道樞, 樞始得其環中, 以應無窮.”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