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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필산책 : 도덕경 제73장 왕필주 "용기 있되, 무모하면, 죽는다" 본문

왕필산책

왕필산책 : 도덕경 제73장 왕필주 "용기 있되, 무모하면, 죽는다"

독립출판 무간 2017. 12. 27. 15:43


73

 

 

용어감勇於敢, 즉살則殺.

용어불감勇於不敢, 즉활則活.

차양자此兩者, 혹이或利, 혹해或害.

천지소오天之所惡. 숙지기고孰知其故? 시이성인是以聖人, 유난지猶難之.

천지도天之道, 부쟁不爭. 이선승而善勝.

불언不言. 이선응而善應.

불소不召. 이자래而自來.

천연繟然. 이선모而善謀.

천망天網, 회회恢恢. . 이불실而不失.

 

용기 있되, 무모하면, 죽는다.

용기 있되, 무모하지 않으면, 산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용기 있음에 있어서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 결과에 있어서) 혹은 이롭고, 혹은 해롭다.

(‘무모함) 하늘이 미워하는 바이(기 때문이). 누가 그 이유를 알겠는가? (오직, 성인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그것을 (구별하거나 시행하는 것에 대해서) 어렵게 여기는 것이다.

하늘의 도는 다투지 않는다. 그러나 잘 이긴다.

(“따르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물이) 잘 따른다.

(만물을)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만물이) 스스로 찾아든다.

느릿느릿하다. 그러나 잘 도모한다.

하늘의 그물은 드문드문하다. 듬성듬성하다. 그러나 (만물을) 망가뜨리지 않는다.

 

 

勇於敢, 則殺.

(“) 반드시 제 명에 죽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다(必不得其死也).

 

 

勇於不敢, 則活.

(“) 반드시 제 명대로 살게 된다는 말이다(必齊命也).

 

 

此兩者, 或利, 或害.

(“兩者모두) ‘용기 있음을 갖추었다. (따라서 그 용기 있음에 있어서 兩者는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勇於敢은 일부러 일삼아) 시행하는바가 있다. (따라서 勇於敢勇於不敢) 차이가 난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이롭게 되거나 해롭게 되는 것이며, (그 결과에 있어서) 동일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或利, 或害라고 일컬은 것이다(俱勇. 而所施者. . 利害, 不同. 故曰或利, 或害).

 

해 설

왕필주 所施者에서 는 일부러 일삼은 실행또는 실천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왕필은 일부러 일삼아 실행 또는 실천한 것이냐 혹은 아니냐를 기준으로 勇於敢勇於不敢을 구별하고 있는 것이다.

왕필이 말한 이로움을 지시하며, “해로움을 지시한다.

 

 

天之所惡. 孰知其故? 是以聖人, 猶難之.

누가라는 말이다. (따라서 孰知其故?”) 말하자면, “‘누가능히 알겠는가? 천하가 미워하거나 (그렇게 하는 것이) 의미하는 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누가능히 그것을 아는가)? 오직 그 성인이다. (그런데) 무릇, 성인의 밝음으로도 오히려 용기 있(되 무모하지 않)‘(용기 있되) 무모함(구별해 내는 일과 그것을 실행해 내는 일에 대해서) 어렵게 여긴다. (그런데) 하물며, 성인의 밝음이 없으면서, 그것을 (일부러 일삼아 구별하거나 실행)하고자 하거나(일부러 일삼아 구별하거나) 실행함에랴! 따라서 猶難之라고 일컬은 것이다(, 誰也. , 誰能知? 天下之所惡意. 故邪? 其唯聖人. 夫聖人之明, 猶難於勇敢, 況無聖人之明, 而欲行之也! 故曰猶難之也).

 

해 설

노자가 말한 하늘을 왕필은 천하天下로 이해하고 있다. “하늘이 따르는 도(天法道 : 25)”, 그리고 가 따르는 저절로 그러한 바(道法自然 : 25)”는 다름 아닌 천하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이기 때문이다.

노자가 말한 難之에서 는 첫째 하늘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둘째 하늘이 미워함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셋째 용기 있음무모함내지 무모한” ‘용기 있음무모하지 않는不敢” ‘용기 있음을 구별해 내는 일(감각, 지각)과 그 중용中庸을 실천해 내는 일(의지, 행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天之道, 不爭. 而善勝.

하늘오직 다투지 않는다(8).” “따라서 천하의 누구도 그것과 더불어 다투지 못한다(66)”(, 唯不爭. 故天下, 莫能與之爭).

 

해 설

왕필이 말한 것처럼, “하늘다투지 않는다不爭는 것은 자신의 저절로 그러한 바에 따른다(: 25)”는 의미이면서 만물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를 따른다는 의미이다.

 

 

不言. 而善應.

(“天之道) 따르면, 길해진다. 거스르면, 흉해진다. (따라서 天之道가 일부러 일삼아 따르라) 말하지 않아도 (만물이 스스로) 잘 따르는 것이다(, 則吉. , 則凶. 不言, 而善應也).

 


不召. 而自來.

(“天之道는 그) 아래에 머문다. 따라서 만물이 스스로 되돌아온다(處下. 則物自歸).

 

 

繟然. 而善謀.

(“天之道는 길하고 흉한) 모양을 비추어 길함과 흉함을 보인다. 일하기에 앞서서 정성을 들인다. 평안할 때, 위급해질 때를 잊지 않는다. 기미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 어려워졌을 때의 극복방안을 도모한다. 따라서 繟然. 而善謀라고 일컬은 것이다(垂象而見吉凶. 先事而設誠. 安而不忘危. 未兆而謀之. 故曰繟然. 而善謀也).

 

 

天網, 恢恢. . 而不失.

 

해 설

노자가 말한 天網, 恢恢. . 而不失은 다음과 의미가 통한다. “하늘과 땅은 어질어서 만물을 버려진 추구芻狗처럼 대한다.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나 피리 같다! 비울수록 세게 나오고, 움직일수록 많이 나온다(天地不仁, 萬物爲芻狗. 天地之間, 其猶橐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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