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왕필산책 : 도덕경 제72장 왕필주 "백성이 통치자의 위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통치자는 큰 위세에 이르게 된다" 본문
제 72 장
민불외위民不畏威, 즉대위지則大威至. 무압無狎, 기소거其所居. 무염無厭, 기소생其所生.
부유불염夫唯不厭.
시이불염是以不厭.
시이성인是以聖人, 자지自知, 부자견不自見.
자애自愛, 부자귀不自貴.
고거피故去彼, 취차取此.
백성이 (통치자의) 위세威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통치자는) 큰 위세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그 (백성의) 삶의 터전所居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 (백성의) 삶의 방식所生을 꺼리지 말라.
무릇, (통치자는) 오직 (그것을) 꺼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백성 또한 통치자를) 꺼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스스로’ 알지만, (그것으로써 백성을) 나누거나 가리지 않는 것이다.
(백성을) 아끼지만, (그것으로써) ‘스스로’ 귀해지지 않는 것이다.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기 때문이다.
民不畏威, 則大威至. 無狎, 其所居. 無厭, 其所生.
(백성 각자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는) 맑고 깨끗하다. (따라서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다. 그것을 일컬어 “그 삶의 터전所居”이라 한다. (백성은 본성이 맑고 깨끗하며,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어謙 (그 “아래가 되며(下之 : 제66장))”, (자신의 몸을 그) “뒤에 둔다(後 ; 後之 : 제66장).” (따라서 일부러 일삼아) “넘치지 않는다(不盈 : 제4장).” 그것을 일컬어 “그 삶의 방식所生”이라 한다. (백성의 삶의 터전과 삶의 방식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통치자가 일부러 일삼아) 그 맑고 깨끗한 바를 “어그러뜨리거나 망가뜨리고(離 ; 敗之, 失之 : 제64장)”, (그 맑고 깨끗한 바로 하여금 일부러 일삼음에 대한) 그 “조금함이나 (일부러 일삼아) 추구하고자 함(躁欲 : 제70장 왕필주)”이 생겨나게 하며, 그 자신을 낮추어 아래가 됨謙이나 자신의 몸을 뒤에 둠後을 “버리게 하고(棄 : 제27장)”, 그 (일부러 일삼은) 위세威와 권력權을 “따르게(任 ; 法 : 제25장)” 하면, 백성物은 (그 일부러 일삼은 위세와 권력에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그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를 어그러뜨리거나 망가뜨려서) 어지럽게 되고擾, 백성民은 (각자가 추구하는 정서적 또는 육체적 편안함이나 정신적 혹은 물질적 이로움을 얻기 위해서 일부러 일삼아 그것에 따르는가 하면 그것을) “피하게 되며(제49장 왕필주)”, (따라서 그 일부러 일삼은 권력과) 위세는 능히 백성을 돌이키거나復 바로 잡지制 못하게 되고, (따라서) 백성은 능히 그 (일부러 일삼은 권력과) 위세를 견디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그) 위上와 아래下가 (모두) 크게 어지럽게 되며潰, (따라서) 장차 하늘의 징벌天誅이 내려지게 된다. 따라서 “民不畏威, 則大威至. 無狎, 其所居. 無厭, 其所生”이라 일컬은 것이다. 말하자면, (일부러 일삼은 “권력”과) “위세”는 (통치자가) 따를 바任가 못 된다는 것이다(淸淨. 無爲. 謂之居. 謙後. 不盈, 謂之生. 離其淸淨, 生其躁欲, 棄其謙後, 任其威權, 則物擾而民僻, 威不能復制民, 民不能堪其威. 則上下大潰矣. 天誅將至. 故曰民不畏威, 則大威至. 無狎, 其所居, 無厭, 其所生. 言, 威力, 不可任也).
【해 설】
“백성이 (통치자의) 위세威를 두려워하지 않는民不畏威” 것은 그것이 “신령스럽지 않기 때문에 아니라, 그 신령함이 백성을 해치지 않기(非其鬼不神, 其神不傷人 : 제60장)” 때문이다.
노자가 말한 “無狎”이나 “無厭”은 “(통치자가 그) 밝힘明으로써 (백성의) 실정之을 살피거나, 감히 그 응하는 바를 감히 달리하지 못하게 하지(夫以明察之, 其所應不敢異 : 제49장 왕필주)” 않는다는 의미이다. 다음을 참조해 볼 만하다. “물水이 제일 잘 한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 나누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일지라도 가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에 가까운 것이다. 땅처럼 누구나 머물게 하고, 연못처럼 사심 없이 마음을 쓰며, 하늘처럼 고르게 베풀고, 말을 하는 데 근거가 있으며, 다스리는 데 원칙이 있고, 일을 하는 데 사리에 맞으며, 움직이는 데 한결같다. 오직 나누거나 가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치우침이 없는 것이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予善天,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 제8장).”
夫唯不厭.
(“不厭”은 통치자가) ‘스스로’ (백성 각자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에 따른 그 삶터와 삶의 방식을) 꺼리지 않는다는 말이다(不自厭也).
是以不厭.
(통치자는 백성 각자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에 따른 그 삶터와 삶의 방식을) ‘스스로’ 꺼리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천하(백성 모두)가 (통치자를) 꺼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不自厭. 是以天下, 莫之厭).
是以聖人, 自知, 不自見.
(성인은) 그 (자신이) 아는 바를 (바탕으로 백성을 일부러 일삼아) “나누거나 가르지 않는다(제22장).” (그러나) 그럼으로써 빛나게 되고, “위세威”를 이루게 된다(不自見其所知. 以耀光, 行威也).
【해 설】
노자가 말한 “不自見”에서 自는 ‘일부러 일삼음’, 일부러 일삼음에 대한 “조금함躁”, 일부러 일삼아 “추구하고자 함欲”을 내포한다.
自愛, 不自貴.
(성인이 일부러 일삼아 ‘스스로’ 귀해지거나 귀해지고자 하지 않는 이유는 성인이 일부러 일삼아) ‘스스로’ 귀해지(거나 귀해지고자 하)게 되면, 백성이 (자신의) 삶의 터전을 (‘스스로’) 업신여기게 되며, (자신의) 삶의 방식을 (‘스스로’) 꺼리게 되기 때문이다(自貴, 則物狎厭居生).
【해 설】
“백성이 (자신의) 삶의 터전을 (‘스스로’) 업신여기게 되며, (자신의) 삶의 방식을 (‘스스로’) 꺼리게 되는” 이유는 일부러 일삼아 ‘스스로’ 귀해지거나 귀해지고자 하는 성인의 모습에 대해서 백성이 “곧바로(旣 : 제56장 왕필주)” 또는 “재빨리(速 : 제59장 왕필주)” “대응하기(應 : 제49장 왕필주)”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백성 또한 성인이 하듯이, 일부러 일삼아 ‘스스로’ 귀해지거나 귀해지고자 하고, 일부러 일삼아 스스로 ‘보다 더’ 귀해지거나 귀해지고자 하며, 일부러 일삼아 ‘스스로’ 천賤해지지 않거나 천해지지 않고자 하고, 일부러 일삼아 스스로 ‘보다 덜’ 천해지거나 천해지고자 하기 때문이다. 다음을 참조해 볼 만하다. “뛰어남을 높이지 않으면, 백성이 다투지 않는다.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이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 일부러 일삼고자 할 만한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백성의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는다(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 제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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