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왕필산책 : 도덕경 제47장 왕필주 "문 밖에 나가보지 않더라도 천하를 알 수 있다" 본문
제 47 장
불출호不出戶, 지천하知天下. 불규유不闚牖, 견천도見天道.
기출미원其出彌遠, 기지미소其知彌少.
시이성인是以聖人, 불행이지不行而知, 불견이명不見而明.
불위이성不爲而成.
문 밖에 나가보지 않더라도 천하를 알 수 있으며, 창밖을 내다보지 않더라도 하늘의 이치天道를 알 수 있다.
그 나아감이 멀어질수록 그 앎이 줄어든다.
그러므로 성인은 나가보지 않고도 아는 것이며, 내다보지 않고도 밝은 것이다.
일부러 일삼지 않지만 이루는 것이다.
不出戶知天下, 不闚牖見天道.
(각양각색의) 사건(事; event)에는 근원宗이 있으며, 사물(物; things)에는 근본主이 있다. (따라서) 비록 나아가는 길途은 달리하더라도, (그) 되돌아오는 곳을 같이한다. (따라서) 비록 생각하는 바慮는 백가지이더라도, 그 다다르는 데는 한 곳이다. 도道는 언제나大 한결같다常. (그) 이치는 어디에나大 다다른다. (따라서) “옛 도道를 기준으로 ‘지금’을 다스릴 수 있다(제14장).” ‘지금’에 살고 있지만, “옛 시작을 알 수 있다(제14장).” 따라서 문 밖에 나가보거나 창밖을 내다보지 않더라도 (천하를 알 수 있는 것이며, 하늘의 이치를) 알 수 있는 것이다(事有宗, 而物有主. 途雖殊, 而同歸也. 慮雖百, 而其致一也. 道有大常. 理有大致. 執故之道, 可以御今. 雖處於今, 可以知古始. 故不出戶闚牖, 而可知也).
【해 설】
왕필주 “事有宗, 而物有主”에서 宗과 主는 도道를 비유한다.
왕필주 “途雖殊, 而同歸”는 “夫物芸芸, 各復歸其根(제16장)”과 의미가 통한다.
왕필주 “慮雖百”은 “사람들마다 마음이 다르다(百姓有心 : 제42장 왕필주)”는 의미이다.
왕필주 “道有大常. 理有大致”는 도道는 언제 어디서나 만물 또는 세계와 “함께 하며, 어울린다(同通 : 제40장 왕필주)”는 의미이다. 大常은 옛 시작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이어진다(綿綿 : 제6장)”는 의미이며, “理有大致”에서 大致는 만물에 “두루 미친다(周行 : 제25장)”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왕필주 “理有大致”에서 理는 “도道의 움직임 내지 일삼음(道之動, 道之用 : 제40장)”을 뜻하는 것으로서, “일부러 일삼음이 없음 내지 일부러 일삼고자 함이 없음(無爲, 而無以爲 : 제37장)”을 의미한다.
其出彌遠, 其知彌少.
“하나一”에 일부러 일삼지 않음無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바깥衆에서 그것을 (일부러 일삼아) 구한다. (그러나) 도道는 (일부러 일삼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보려고 해도 잘 볼 수가 없다. 그것을 들으려고 해도 잘 들을 수가 없다. 그것을 만지려고 해도 잘 만질 수가 없다(제14장).” (따라서) 그것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면, 문 밖으로 나아가지 않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문 밖으로) 나아가게 되고, (따라서 그것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되며, (따라서 그 바깥으로) 더욱 미혹되게 된다(無在於一, 求之於衆也. 道, 視之不可見. 聽之不可聞. 搏之不可得. 如其知之, 不須出戶. 若其不知, 出, 愈遠, 愈迷也).
【해 설】
왕필주 “求之於衆”에서 衆은 제46장 왕필주 “無求於外”에서 外와 의미가 통한다.
是以聖人不行而知, 不見而明.
(성인은) 만물이 다다르는 곳을 안다得. 따라서 (문 밖으로) “나아가지 않더라도”, (자신을) 미루어서慮, (천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은) 만물의 근원을 안다識. 따라서 (창밖으로) “내다보지 않더라도”, 옳음과 그름의 이치를 알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옳음’과 ‘그름’의) “이름을 붙이는名” 것이다(得物之致. 故雖不行, 而慮, 可知也. 識物之宗. 故雖不見, 而是非之理可得, 而名也).
【해 설】
왕필주 “雖不行, 而慮, 可知”는 도道가 만물 각자에 내재하거나 만물 각자가 도道를 내포함을 전제하는 풀이로 이해할 수 있다.
왕필은 노자의 “天道”를 “是非之理”로 풀이하고 있는데, “사건”이나 “사물”에 대한 옳거나 그렇지 않음 내지 좋거나 그렇지 않음을 판단하거나 구별하는 기준으로 이해할 수 있다.
不爲而成.
(성인은) 만물 (각자)의 (저절로 그러한) 본성에 밝아서 그것에 따를 뿐이다. 따라서 일부러 일삼지 않지만, 그것을 이루는 것이다(明物之性, 因之而已. 故雖不爲, 而使之成矣).
【해 설】
왕필주 “是非之理可得, 而名”을 참조할 때, 왕필주 “明物之性”은 만물 각자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를 따르는 것이 옳은 것임(또는 좋은 것임)을 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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