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상품 경제 사회는 속임수가 삶의 기본 원리로 자리잡은 사회다! 본문
누구나 아는 뻔한 거짓말을 들라면, 흔히 '노인 일찍 죽겠다'는 말, '처녀 시집 안 가겠다'는 말, '장사꾼 밑지고 판다'는 말, 이 셋을 꼽는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 판치는 세상이 바로 상품 경제 사회, 이른바 자본주의 사회다. 참과 거짓말을 나누는 기준은 간단하다. '있는 것을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것'이 참이요, '없는 것을 있다고 하거나 있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것'이 거짓이다.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그 마을에서 평생을 코 맞대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사용가치가 유일한 가치로 자리잡은 세상에서 겉을 아무리 번드르하게 꾸며 보았자 써보아 부실하면 당장 들통나기 마련이다. 이렇게 그릇 하나, 낫이나 호미 하나까지 써보아서 튼튼하면 옹기장이, 대장장이를 믿고 안 그러면 상대 안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있는 것을 없다, 없는 것을 있다, 인 것을 아니다 아닌 것을 이다고 눈가림하려는 사람이 사람 대접 못 받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거꾸로 교환가치가 사용가치에 앞서는 상품 경제 사회에서는 고지식한 사람이 살아남을 길이 없다. 단골 손님이 붙박이 이웃일 경우에는 작은 속임수밖에 쓸 수 없지만 낯선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바가지를 씌워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약삭빠른 장사꾼들의 의식에 깊게 깔려 있다. 그래서 상품거래의 공간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폭리는 그만큼 늘어나고 일확 천금의 기회는 그만큼 커진다. 호머 서사시의 주인공인 오딧세이우스가 거짓말과 해적 노릇을 밥 먹듯이 하는 꾀보이자 범죄자로 나오는 것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일찍부터 장삿길로 들어섰던 그리스 사회의 속내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다. 가장 잘 속이는 놈이 장땡인 것이다. 이른바 선진국이 식민지나 다국적 기업을 만들어 초과 이윤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도 대재벌의 문어발식 확장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물건의 내용보다 포장이 더 그럴 듯해야 팔리고, 포장보다 광고가 더 그럴 듯해야 더 많이 팔리는 이런 세상에서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을 길러내려는 교육자는 발 붙일 곳이 없다. 아이들을 그렇게 길러보아야 상품경제 사회의 낙오자가 될 게 뻔한데 누구를, 무엇을 믿고 그 헛된 노력을 해야 하겠는가? 그러니 유능한 교사는 윤리 도덕에는 둔감한 대신에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경쟁에서 이기고 남을 속여서라도 저 잘 살 길을 찾는 인물을 양산하는 교사다. 다시 말해서 일류 대학에 가장 많은 학생들을 집어넣는 교사가 가장 훌륭한 교육자인 셈이다.
한마디로 상품경제 사회는 속임수가 삶의 기본 원리로 자리잡은 사회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범죄 사회라 부를 만하다. 끝까지 성공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상품경제 사회로 바뀌고 있는 동구나 옛 소련이나 중국에서 범죄가 비 온 뒤 죽순 솟듯이 하는 것을 보면 시장과 범죄는 한 배에서 태어나는 쌍둥이 자식이라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오죽하면 노자나 도덕경의 끝부분에서 이상으로 삼는 공동체를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 수에, 남보다 열 배, 백 배로 그릇이 큰 사람이라도 쓰지 않고 배나 수레가 있어도 타지 않고, 군대가 있어도 진칠 곳이 없고, 버리 끈을 이어서 쓰고 거친 음식 달게 먹고, 허름한 옷 기꺼이 입고, 작은 집 편히 여기고, 새 것에 눈 돌리지 않고 살되, 이웃 나라가 빤히 건너다 보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를 서로 들을 수 있어도 늙어 죽도록 오고 감이 없는 세상'으로 못을 박았을까.
노자의 이러한 이상 공동체는 질병이나 자연 재해를 집단으로 해결할 길이 없는 원시 공산사회와 많이 닮아 있어서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보지 않지만, '생산력의 무한한 증대를 통한 무한하게 다양화하는 무한한 욕망의 무한한 충족'이라는 거짓된 신화가 거짓임을 밝히는 좋은 반증이 된다고 본다.
장사꾼으로 키우려고 하면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자식을 두려고 하는 아비의 소망만큼 헛된 것은 없다. 옛날부터 장돌뱅이로 성공하려면 곡식을 살 때는 곡식알을 모두 모로 누이고, 팔 때는 모두 곧추서도록 하는 되 속임, 말 속임질을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익히는 법이다. 하물며 상품경제 사회에서 살아남도록 하는 자식 교육에 속임수와 범죄 과정이 어찌 빠질 수 있겠는가. 집이나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살려는 본능에 따라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에서 속임수와 범죄를 배우게 된다. 아이들은 본디 보고 듣는 대로 따라하는데 사회에서 보고 듣는 것이 죄다 그런 것인데 배우지 않고 어쩔 것인가.
전 지구로 열병처럼 번져나가는 상품경제의 물길을 가로막고, 조그마한 생산 공동체를 기초단위로 해서 온 세상이 우애와 협동으로 결합하는 사랑의 공동체로 바뀌고, 이 공동체 안에서 머리 좋고 셈빠른 이른바 학과 성적이 좋은 아이가 사랑받는 게 아니라,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한' 품성을 지닌 아이가 사랑받기 전에는 우리의 미래가 범죄 사회로 바뀌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윤구병,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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