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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섬김 : 물건은 마음과 정성이 오가는 통로 구실을 해야한다! 본문

사는 이야기

나눔과 섬김 : 물건은 마음과 정성이 오가는 통로 구실을 해야한다!

독립출판 무간 2016. 11. 6. 13:59

요즘은 자주 나눔과 섬김을 생각한다. 정상의 경우라면, 자연 속의 어떤 생명체도 단순 재생산을 하지는 않는다. 땅에 떨어진 보리 한 알은 수백 개의 보리알로 거듭난다. 산비탈에 서 있는 떡갈나무도 해마다 수백 수천 개의 도토리를 땅에 떨어뜨린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떤 분은 이런 현상을 사람의 경제활동, 더구나 상품경제 사회의 끊임없는 확대 재생산과 견줄지 모른다. 그러나 겉보기에 비슷할지 모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사람은 축적해 놓으려고 확대 재생산을 하지만, 자연은 나누려고 그런다. 종을 유지하려고 어떤 생명체는 수억에 이르는 알을 낳거나 수천 개의 씨앗을 열매로 맺지만, 그것들이 다 온전하게 잘 자라서 온 세상을 자기의 종만으로 가득 채우고자 하는 뜻에서 그러지는 않는 듯싶다. 결과는 대체로 종의 단순재생산이자 유지이고, 그 밖의 것은 생명 공동체의 여러 구성원에게 나누어준다.

올해 우리 마을 어른들은 고추를 참 많이 심었다. 비닐을 이중으로 치면 고추 수확량이 높다고 해서 철사로 된 활대를 사서 버팀대로 꽂고 그 위에 비닐을 치는데 얼마나 많은 농가에서 건국에 걸쳐 고추를 심었던지 철사 활대가 동이 나서 대쪽을 활대로 쓴 분들도 있다. 걱정이 많이 된다. 고추는 쌀이나 보리 같은 주곡의 경우와는 달리 풍년이 들면 아예 팔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올 봄에 우리 마을 한길 가에는 내다버린 쪽파와 대파가 썩으면서 풍기는 냄새가 진동했다. 마을 어른들 가운데 한 분에게 또 그 짝 나는 게 아니냐고 염려스럽게 여쭈어 보았더니, 어느 한 지역 고추농사가 장마로 어장나면(망해버리면) 제 값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대답한다. 가슴이 덜컥했다. 어느 틈에 농민들의 마음자리도 이렇게 되어 버렸나. 그러나 생각해보자. 내가 잘 살려면 남이 망해야 한다는 심보가 어찌 온전한 정신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겠는가.

지역에 따라 콩이 잘 되는 곳도 있고, 감자가 잘 되는 곳도 있다. 강원도에서는 옥수수가 잘 자라고, 전라도 황토 땅에서는 고구마, 밀이 잘 된다. 이렇게 지역마다 마을마다 그 땅에서 잘 자라는 농산물을 주곡 중심으로 짓는다면 농사짓는 분들 마음이 이렇게 여위어갈 까닭이 없다. 여기에도 풍년들고 저기에도 풍년이 들어야 자기 지역에서 나지 않는 것을 싼 값으로 넉넉하게 얻을 수 있으니까. 자기가 잘 살아야 남도 잘 살고, 남을 잘 살게 만들어야 자기도 잘 살 길이 열린다는 '자리이타'는 나눔의 바탕이다. 그런데 농민들 사이에서도 이 마음자리가 없어져 버렸다.

탓은 농민들에게 있지 않다. 도시 중심의 상품경제 사회가 농민들에게 환금 작물 재배를 강요하고, 투기 영농과 약탈 영농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남으면 내다버리고 모자라면 값이 다락같이 오르는 판이니, 자기는 콩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 보리나 조도 심어야할 자리에 고추만 심어놓고 이웃 고추농사가 파농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에서 이런 마음자리로 어찌 이웃과 다른 생명체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하길 기대할 수 있겠는가.

지난 이른봄에 마늘밭에 가득 돋아나는 풀들을 잡초로만 알아 뽑아 내던지고 난 뒤에야 그것이 잡초가 아닌 약초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후회를 거듭했던 터라 요즈음 우리는 밭에서 우리가 씨앗을 뿌리지 않았는데도 자라는 여러가지 풀들을 눈여겨보아 어떤 것은 그냥 자라게 내버려두고 어떤 것은 거두어 나물을 무치거나 김치를 담거나 말리거나 당절임을 해서 효소를 만든다. 이렇게 해서 조금씩 담은 효소가 가짓수로 쳐서 서른 가지 가깝다. 실제로 밭이나 산과 들에서 자라는 풀 가운데 '잡초'는 없다. 그런데 요즈음처럼 수천, 수만 평의 밭에 수박이나 고추만 심는 버릇이 오래 가다보면 어쩌다 그 밭에 보리나 수수가 자라더라도 잡초로 여겨 제초제를 뿌려 없애려 들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땅도 죽이겠지.

자연은 뭇 생명체들을 살리려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밤낮 없이 저렇듯이 애를 쓰건만 어찌 사람들은 '잡초'라고 하여, '해충'이라고 하여, 돈이 안 된다 하여 이렇게 날이면 날마다 없애고 치워버릴 궁리만 하는지. 그리고 그 부산물로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쌓아올리는지.

사는 데 꼭 필요한 사용가치를 지닌 것을 땀흘려 가꾸거나 만들어서 나누어주는데, 그 대가로 사용가치는 없고 교환가치만 있는 돈을 내밀면서 고마워하는 마음도 미안해하는 마음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은 온전한 세상이 아니다. 물건은 마음이 오가는 통로 구실을 해야한다. 그러려면 그 물건은 반드시 사용가치를 지녀야겠지. 어떤 물건의 사용가치는 거기에 기울인 정성과 땀에 비례하여 높아진다. 물론 터무니 없는 이야기다. 실제로 안 그런 경우가 훨씬 더 많으니까. 그렇지만 마음과 정성이 오가는 통로로 따지면 꼭 틀린 말만은 아닐 게다.

참된 나눔은 주고받는 가운데 반드시 마음이 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래일 뿐이다. 섬기는 마음이 실리지 않는 나눔은 자선이나 자기과시인데, 이것은 나누어 받는 사람에게 물질이나 마음으로 의지하게 하여 노예 상태를 만들거나 저항감을 불러일으켜 자유로움을 없애버리기 십상이다. 작은 살림이야 거래로만 꾸려갈 수도 있고,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를 뒤섞어서 해갈 수도 있겠지. 그러나 큰 살림은 그렇게 해서 이루어질 수 없다. 올 한 해 우리 식두들의 과제는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지극 정성 섬기는 마음으로 내가 땀흘려 빚어내거나 가꾼 것을 나누고, 또 내 자유를 침해받지 않으면서 이웃이 나누어 주는 것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는 것이다.

(윤구병,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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