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버리지 않는 삶은 버릴 것이 없는 생활태도의 반영이다! 본문
도시사람들은 음식뿐만 아니라, 아직 더 입을 수 있는 옷가지며, 아직 더 쓸 수 있는 가구며, 심지어 더 일할 수 있는 사람까지 마구 버리는 데 익숙해 있다. 이 버릇이 시골에까지 번져서 이제는 시골에도 점점 더 많은 쓰레기가 눈에 띈다.
어떻게 하면 아무 것도 버리지 않는 자연을 본받아 살 수 있을까? 지난 경우내 내변산 수몰지구를 돌아다니면서 허물어진 집터에서 구들짝을 파냈는데, 나무로 구들짝을 데워서 거기에 등 대고 자야,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요즈음에는 시골에도 어지간히 도시의 생활양식이 스며들어 연탄을 때는 집조차 드문 형편이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산간마을에도 어디를 가나 썩은 나무둥치가 뒹군다. 이것을 이용하여 간장도 달이고, 엿도 고고, 소금도 굽고, 밥도 짓고, 방도 데우고 하면 좋을 듯 싶어, 외양간으로 바뀐 옛날 부엌을 다시 손보아 가마솥을 앉히고, 구들돌을 다시 놓았다. 담장 밑에 따로 쓰지 않아 버려진 솥 세 개를 가져다 걸어놓은 것도 그런 생각에서였다.
지금 바닷가에 나가보면 파도에 밀여 온갖 것들이 다 버려져 있다. 얼핏 보기에는 모두 쓰레기들이다. 그러나, 쓸모 있는 것도 적지 않다. 해변을 말끔하게 치울 겸해서 찢어진 그물과 널려진 밧줄과 밀려온 나무토막을 부지런히 주워 온다. 자전거 바퀴는 진흙을 시멘트에 개어서 그 위에 발라 굴뚝지붕으로 만들어 놓으니 모두 멋있다고 한다. 찢어진 그물은 극성을 부리는 산새들이 씨앗을 파먹지 못하게 모판에 덮어놓으면 따로 비닐을 써서 모종을 길러내지 않아도 된다. 바닷물에 오래 잠겼던 나무토막들은 그늘에 말리면 훌륭한 가구재료로 쓰인다.
우리가 지난 겨울에 들일을 하면서 입었던 옷들도 거의 도시사람들이 입다 싫증이 나서 버린 것들이었다. 음식 찌꺼기는 남을 겨를이 없다. 풋고추 꼭지까지 알뜰하게 씹어서 먹는 습관 탓도 있지만 그 밖에 한 식구로 사는 개와 오리와 닭들이 남는 음식을 먹어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중학교 동창생들이 부인들을 모시고 내가 사는 모습을 보겠다고 먼길을 찾아왔는데, 그 가운데는 서른 해가 훨씬 넘어서야 처음 보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풀물이 잔뜩 밴 작업복 차림에 고무신 바람으로 일하다 마중을 하니 동창생 하나가 부인에게 "이 사람이 윤모 집에서 머슴 사는 분이 아니라, 바로 본인이여"하고 웃었다. 그 말이 귀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좁은 생활공간에 이것저것 하나도 버리지 않고 쓸 만하다 하여 모아둘 양이면 도시에서는 살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좁은 아파트 공간에 무엇이든지 버리지 않고 여기저기 쑤셔 넣는 시어머니와 이것저것 마구 내다 버리는 며느리 사이에 벌어지는 실랑이를 나도 본 적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유행에 뒤졌다 하여, 조금 더 불편하다 하여, 남 보이기 부끄럽다 하여, 쓸모 있는 것을 자꾸 버리고 새 것을 사들이는 버릇이 오래 가다보면 나중에는 부모 형제마저 버리게 되지나 않을까?
버리지 않는 삶은 버릴 것이 없는 삶, 검소하고 무엇이든지 아끼는 생활태도의 반영이다. 아껴야 쌓이는 것이 있고, 쌓이는 것이 있어냐 남에게 베풀 여유도 생긴다고 보면 안될까? 그리고 물건을 아끼다 보면 사람 아끼는 마음도 생긴다고 보면 안될까?
(윤구병,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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