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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쓰레기 문명과 살리는 문화 (2)

독립출판 무간 2016. 11. 3. 00:19

가끔 막막하여 여기저기 논둑 밭둑에 모아놓고 태우는 비닐연기로 뒤덮인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지만, 그 동안 내가 쓰레기 문명을 뒷받침하고 스스로 쓰레기 문명의 숨은 주체인 자본의 하수인이 되어 저질러 온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도 이 일은 그만둘 수 없다.

다행히 올해는 쓰레기 대접을 받아 '잡초' 신세로 전락한 풀들, 그래서 고엽제와 성분이 같은 '그라목손'이라는 제초제의 세례를 받는 가여운 풀들을 알뜰하게 챙겨 하나도 버리지 않는 딜을 찾았다. <동의보감> <향약집성방> <동의학 대사전> <향약 대사전> <약용 식물도감> 같은 책을 부지런히 찾아 기계로 경작할 수 없다 하여 오랫동안 묵정밭이 되었다가 내 몫이 된 밭에서 자라는 풀들의 이름과 약성들을 확인하는 작업을 시작하고, 그 작업이 조금씩 열매를 맺어 지금은 서른 가지가 넘는 '잡초' 효소, '잡초' 술이 항아리에서 익어가고 있다. 쑥, 명아주, 망초, 한삼덩굴, 씀바귀, 바랭이, 칡, 억새, 마디풀...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약초요, 가공 방법에 따라 우리 몸을 살리는 먹을거리임에 차츰 눈뜨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들은 말 가운데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오월 단오까지는 염소가 즐겨 뜯어먹는 풀은 사람이 먹어도 좋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인데, 그 말에 따라 살갈퀴나 씀바퀴 잎을 뜯어 쌈을 싸 먹고 칡순을 뜯어 데쳐서 먹기도 하고... 혀로 맛을 보아 독성이 느껴지지 않는 풀들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어보았다. 먹으면서 사람의 편식습관이 굳어져온 내력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구태여 무나 배추로만 김치를 담아 먹을 까닭이 어디 있단 말인가. 흰 쌀밥만 고집하는 게 무슨 식생활 개선이고 음식문화를 발전시키는 길이란 말인가.

지난 해 고구마순을 걷어 그냥 두엄으로 썩히기에는 너무 아까와 효소를 담고 물을 짜낸 건더기도 아까워 소주를 부었더니 온 여름 내내 아이들도 어른들도 그 효소물로 다른 음료수 대신 갈증을 식히면서 몸을 지키낼 수 있고, 또 손님을 맞아 뒤탈이 없는 술대접을 할 수 있었다.

이렇듯이 자연이 하는 대로 풀과 나무와 그 밖의 생명 공동체에 속하는 모든 것들의 쓸모를 찾아 서로 존중하면서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길을 찾다보면 교환가치가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어버린 이 메마른 세상을 사용가치가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는 넉넉한 살림터로 바꿀 길도 열리지 않을까.

아직 젊은 나이(시골에서는 이제 쉰네 살 난 내가 가장 젊은 축에 든다)에 할 말은 아니지만, 같이 사는 젊은이들에게 나 죽거든 화장할 생각도 말고, 묘를 팔 생각도 말고, 거적에 말아 밭에다 묻고 어디에 묻었는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모든 생명체의 가장 자연스러운 마지막 모습은 그러한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변산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새만금 물막이 공사도 지금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살아 있는 개펄을 죽이고 그 위에 세울 쓰레기 문명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윤구병,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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