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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쓰레기 문명과 살리는 문화 (1)

독립출판 무간 2016. 11. 3. 00:15

처음 변산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은 곳곳에 널려 있는 쓰레기를 보고 '참 지저분하게도 살고 있군' 할지도 모른다. (중략)

새삼스런 말이기는 하지만 자연에는 쓰레기가 없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였을 때는 쓰레기를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자연이 숨은 주체 노릇을 하던 자연경제와 '기르는 문화'를 짓밟고 자본이 숨은 주체로서 힘을 휘두르는 상품경제와 '만드는 문명'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면서 전 세계로 보면 지난 200년, 우리나라를 보면 지난 50년 사이에 온 세상은 쓰레기 더미로 뒤덮여버렸다.

현대 문명은 쓰레기 문명이라고 불러도 좋다. 상품경제 사회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확대재생산하는 거의 모든 상품들이 인류의 지속적인 삶에 보탬이 되기는 커녕 장애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삶의 울타리 밖으로 내던져버려야 한다는 뜻에서도 쓰레기 문명이고, 새 것이 아닌 것은 비록 어제 만든 것이라도 기능이 떨어지고, 효율성이 낮고, 유행에 뒤진 것이라는 관념을 심어주어 끊임없이 내다버리도록 부추긴다는 점에서도 쓰레기 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쓰레기 문명에서 벗어나 건전한 문화 세계를 이루고 살려면 자연을 본떠 무엇하나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챙겨 쓰다가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되돌려보내는 삶의 태도와 쓰레기가 될만한 것은 아예 만들어내지 않는 슬기가 필요한데 지금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서부터 구멍가게 주인까지 무한 경쟁을 앞세워 쓰레기더미 키우기 시합을 하고 있는 판이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이제는 자연이 길러내는 것마저 사람이 사이에 들어 쓰레기로 바꾸고 있다. 서른 해 전까지만 해도 논이나 밭에 자라는 풀은 쓰레기가 아니었다. 길섶에 자라는 풀도 논둑과 밭둑을 뒤덮고 있는 풀도 베어다 두엄을 만들면 논과 밭을 살리고 기름지게 하는 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상품경제 사회가 농촌의 젊은 노동력을 쓰레기 상품 생산에 돌리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공장 벽 속에 가두기 시작하면서 농촌에서는 풀을 베어 짐승에게 꼴로 먹이거나 두엄을 만들 일손이 없어져버렸다. 도시에서 대부분 쓰레기 생산에 동원되는 많은 입들을 먹여 살리려고 개량된 수확 품종(이것들은 대체로 대학 연구실이나 종묘상에서 만들어낸 인위적인 씨앗으로 다른 풀들과 어울려 자리기에는 알맞지 않은 일대 교배종으로서 이태째만 되어도 수확이 격감하는 흠이 있는 것들이다)을 심다보니, 이것들을 살려내려면 제초제를 뿌려 다른 풀들을 죽여야 하고, 농약을 쳐서 병충해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그러니 논밭에 자라는 풀들은 모두 사람 몸에 해가 되는 독을 품은 쓰레기로 바뀌고, 심지어 곡식이나 남새까지도 건강의 관점에서 보면 농약 범벅인 쓰레기 식품이 되어버렸다.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땅도 물도 바람도 심지어 햇살마저도 죽이는 이 쓰레기 문명을 '살리는 문화'로 바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모습, 아침 다섯 시에 해와 함께 일어나고, 저녁 여덟 시면 해와 함께 일을 마치고, 토종 씨앗을 찾아 헤매고, 제초제, 농약, 화학비료, 그리고 항생제가 둠뿍 들어 있는 사료를 먹여 키운 돼지나 닭의 똥으로 만든 이른바 유기질비료도 마다하여 동네 어른들로부터 하루에도 열두번씩 제초제 뿌리지 않는다. 농약을 치지 않아 다른 논과 밭까지 병충해 피해를 입게 된다... 온갖 핀잔을 들어가며 다른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들을 모아 쓸모를 찾는 이 '원시적 삶의 형태'가 쓰레기 홍수를 막는 데 얼마만큼 도움이 된단 말인가.

(윤구병,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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