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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이가 있으랴.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가슴 뛰지 않는다!

독립출판 무간 2016. 10. 29. 19:29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이가 있으랴.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가슴 뛰지 않는다.
최신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어린아이들의 뇌는 하루에도 몇십 번씩 열광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세상이 그만큼 흥미진진한 것이다. 콘크리트 바닥에 박혀 있는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혹하는 것이 어린아이들이다.
그러던 아이가 십 년쯤만 지나면 사는 것이 시시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스무 해도 안 살아본 어린 친구가 말했다. 인생은 밤식빵 같다고. 간간이 나오는 밤 알갱이의
달콤함을 맛보려고 밍밍한 빵을 다 먹게 되는 것이 인생인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밤 알갱이인 줄 알았는데, 그게 사실은 고구마 조각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기도 한다.


‘가슴 뛰는 삶’이란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일 수 있다. 아무리 창조적인 일이라 해도
그 속에는 단순반복적인 일이 더 많다. 창의성이란 것도 단순반복 훈련의 바탕 없이는
생겨나지 않는다. 즉흥연주가 가능하려면 눈 감고도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하듯이, 어떤 분야든 일가를 이루려면 지루함을 이겨내면서 숱한 고비를 넘어서야 한다.
그 고비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은 열정에서 나온다.
열정이 있으면 단순반복적인 훈련과정도 참고 이겨낼 수 있다.
열정은 일 자체에 대한 흥미에서 비롯될 수도 있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선생님이 좋아서 수학을 좋아하게 되기도 하듯이.


‘가슴 뛰는 삶’이라는 파랑새를 찾아 헤매기 전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로 하여금 땅에 두 발을 딛고 설 수 있게 하는 힘이자
나무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는 힘인 중력이란 무엇일까?
인력(引力), 곧 끌어당기는 힘이다. 이 힘은 우주의 만물 속에 잠재해 있어 만유인력이라고도
일컫는다. 인간의 경우 이는 ‘매력’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물질적인 힘인 중력과 달리
정신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지만 끌어당기는 힘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맞아 떨어지면 자석처럼 달라붙는다.
매력을 느끼는 사람에게 끌려 깊은 인연을 맺으면 우리는 그에게 뿌리를 내리게 된다.
연인이든 친구든 선생이든 깊은 관계에는 남다른 중력이 작용하는 셈이다.


삶에 열정이 없고 세상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길을 잃은 듯한 이 젊은이들을 지원하는 사회적기업 <유유자적 살롱>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무중력 세대’라 이름을 붙이고 있다. ‘무기력’이 아닌 '무중력'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세상에 발을 붙이고 뿌리를 내리게 하는 중력장이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둥둥 떠다니면서 세상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은 중력장, 다시 말해 이들을 끌어당기는
긴밀한 관계 경험이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끌리는 존재를 못 만난 것이다. 삶을 지탱해주고 성장을 부추기는 그런 존재를.
이들에게는 부모 형제도 그런 존재가 아니다.


지난 세대는 시대적으로 끈끈한 관계의 그물 속에서 자라났다. 단칸방에서 한 식구가 부대끼면서
서로 미운정 고운정이 들고 그래서 서로를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세대다.
고생하는 부모를 보면서 또는 어린 동생들을 보면서 어디든 뿌리를 내리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전태일이 청계천에 뿌리를 내린 것도 그렇게 시작된 일이었다.
사랑이 많았던 그에게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동생뻘 되는 어린 여공들도 형제자매들이었다.
버스비를 아껴 풀빵을 사갈 만큼 그의 연민은 깊었다.
그의 뿌리는 먼저 가족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 일터의 형제자매들에게까지 뻗어 있었다.

어찌 보면 ‘가슴 뛰는 일’은 뿌리내림을 가로막는 하나의 환상일 수 있다.
우리를 가슴 뛰게 하는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과 얽힌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애정이다.
그러므로 가슴이 뛰지 않는 사람은 가슴 뛰는 일을 만날 수 없다.
가슴 뛰는 일을 만나야 가슴이 뛰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뛰는 사람이 하는 일이 가슴 뛰는 일인 것이다.
재단사 시다 일이 가슴 뛰는 일은 아닐지라도 전태일의 삶이 열정으로 넘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슴속에 싹튼 크나큰 연민과 정의감 때문이었다.
그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애정은 그로 하여금 죽음조차 넘어설 수 있게 했다.


가슴 뛰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먼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가질 일이다.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한 그루 장미든 길고양이든 애정을 갖고 만나야 한다.
아이들이 진정으로 가슴 뛰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가슴속에 사랑을 키울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다른 존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제대로 관계 맺는 체험이 필요하다.
풀 한 포기든 강아지든, 어린아이든 동네 할머니든, 동성친구든 이성친구든, 엄마 아빠든 형제자매든
깊은 만남이 있어야 한다.
사실 가슴 뛰는 삶은 어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주변에 대한 관심이 살아날 때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그 관심을 어떤 식으로 풀어낼지는 그 다음 일이다.
자연스럽게 일이 전개될 것이다. 관계 속에 먼저 뿌리를 내려야 한다.
일은 그 다음이다.

 

(민들레 81호 단상 '뿌리내림에 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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