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흔한 것이 귀한 것... 잡초와 친하니 잡초처럼 강해졌다! 본문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대안리. 명봉산 아래 마을에 ‘살기 불편한 집’, ‘불편당’이 있다. 닳고 닳아 희미한 ‘개조심’이 쓰인 나무 대문으로 들어가니, 낡은 기둥들과 흙이 드러난 벽체 옆 장독대 너머로 호랑이가 새끼를 까놓아도 모를 만큼 잡초들이 우거져 있다.
이 집 안주인 권포근(56)씨도 그랬다. 한 때 목회를 한 목사이기도 한 남편 고진하(62) 시인이 이사 가자고 해 이 집을 와보고는 역시 시인답게 세상 물정 모르는 남편의 안목에 기함을 했다. 치악산 아래 행구동에 세들어 살던 2층 양옥집에 비하면 낡을 대로 낡아 곳곳이 헐리고 파인 이곳은 ‘귀곡산장’이었다. 살림을 해야 할 안주인으로서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단식을 불사하는 남편이었다. 그를 살리는 셈 치고 인심 크게 써서 와준 집이었다. 그런데 이 집에서 남편보다 자신이 더 잘 살게 될 줄이야. 더구나 잡초투성이 이 집 때문에 그는 잡초요리사로 데뷔하기까지 했다.
권씨는 최근 <잡초 레시피>란 책을 냈다. 3년간 원주 시내에서 밥집을 할 만큼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그가 집 마당과 텃밭과 마을 논두렁, 밭두렁에서 자란 잡초들을 뜯어 밥상에 올리던 것을 정리해 내놓은 것이다.
권씨는 식물에 대해서도 남다른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1980년대 남편이 처음 목회한 강원도 홍천 시골에서 밭일을 하면서도 배추, 무, 상추, 가지, 오이나 나무, 풀들과 마치 친구처럼 말을 건네곤 했다. 그는 일찍이 몸으로 시를 쓴 시인이었던 셈이다. 이 곳에 와서 장독대 주변과 집 뒤켠에 너무도 많이 자란 잡초를 베어내는 게 급선무였다. 그런데 잡초만 베면 이상하게도 기운이 빠지고, 어깨에 무리가 왔다. 마침내 아파서 드러눕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장을 보러 대형마트에 갔는데, 푸성귀들이 너무나 비싸 빈손으로 돌아왔다. 장독대에 앉아 물끄러미 잡초들을 바라보던 그에게 문득 깨달음이 왔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채소들은 사람이 키우지만, 이 잡초들이야말로 하나님이 키운 채소가 아닌가.’
그래서, 세세히 보니, 대부분이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 마을이 친환경 마을이어서 제초제 같은 농약을 치는 일이 거의 없는데다 집안에 자라는 것들은 농약 안전지대니 그야말로 유기농들이었다. 몇 걸음 밖 들로 나가보니 가뭄으로 농작물들은 노랗게 타들어 가는데, 논밭두렁의 잡초들은 푸른빛을 뽐내며 쑥쑥 자라고 있었다. 그날 바로 개망초, 민들레, 돌미나리 등을 뜯어 와 겉절이도 하고 김치도 담갔다. 잡초 비빔밥, 잡초 샐러드, 토끼풀 튀김을 해 내놓으니, 남편도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 고 시인은 탁하던 오줌 색이 맑아졌다며 좋아했다. 심혈관에 좋은 비름, 관절염에 좋은 우슬초, 고혈압에 좋은 환삼덩굴이 뒤뜰에 가면 차고 넘쳤다. 환삼덩굴을 먹은 고 시인의 혈압이 좋아졌다. 생인손을 앓던 딸은 마당의 토끼풀을 양념에 버무려 먹고는 감쪽같이 나았다. 재료비 0원으로 매일 보약을 먹는 셈이었다. 사람의 손을 타 약해진 농산물보다 스스로 힘을 키워 강한 생명력을 지닌 보약들이 마당과 들엔 지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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