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대한민국 ‘청년’은 몇 살까지입니까? 본문
서울 4년제 대학을 나온 한지훈(가명·30)씨는 몇 차례 졸업도 유예하면서 취업 준비에 매달려왔다. 취업 준비를 본격적으로 한 지 5년쯤 됐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지훈씨는 “요즘 기업채용 공고에 나이 제한을 두는 곳은 거의 없는데도, 갈수록 서류 탈락이 늘어나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만 나이로 서른인 늦깎이 취업준비생 지훈씨는 우리나라에서 청년일까, 아닐까? 정답은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청년에 대한 단일한 연령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통계청이 내는 청년실업 통계에는 지훈씨가 잡히지 않는다.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에게 3년간 소득세를 깎아주는 혜택도 누릴 수 없다. 청년실업 통계나 조세특례제한법상 청년의 기준은 15~29살인 탓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이 의무적으로 정원의 3%를 청년(15~34살) 미취업자로 고용하도록 하거나 청년(39살 이하)에게 창업자금을 지원해주는 제도에선 지훈씨도 청년이다.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정책 대상으로 삼는 청년이나, 현재 국회에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청년기본법안들에서도 청년은 39살까지로, 지훈씨는 청년 대우를 받는다. 유사한 성격을 지닌 서울시 청년수당(19~29살)과 고용노동부의 청년구직수당(18~34살), 성남시의 청년배당(24살) 지급 연령 기준으로 보면, 그는 청년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현행 청년고용촉진특별법상 청년 범위는 만 15~29살이다. 20대 국회 들어 청년의 나이 기준을 더 높인 법률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 청년 나이기준 논란, 왜?
원래 아동(0~18살·아동복지법)이나 청소년(9~24살·청소년기본법), 노인(65살 이상·각종 노인복지 제도) 등과 달리, 청년의 연령 기준은 명확하게 정해진 것이 없었다. 국내에서 청년이란 말은 1890년대 일본 유학생들의 잡지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청년이라는 개념은 식민지 시대에 민족 계몽을 이끌 주체로 정의되는 경향이 강했다.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도 청년은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이미지로 자리 매김되어 왔을 뿐, 굳이 나이로 정의내릴 필요가 없었다.
2000년대를 지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청년은 생애주기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입하는 ‘이행기’에 있다. 과거에는 늦어도 20대에 이행기가 마무리됐다. 그러나, 청년 고용 사정이 악화하면서, 첫 직장에 들어가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길어진데다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청년들이 늘어났다. 결국 청년 대책이 수립되기 시작하면서 정책 수혜자가 될 청년의 연령 기준이 중요해진 것이다.
급기야, 2004년 청년실업해소특별법(현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이 나왔고, 이 법에서 청년 나이가 15~29살로 정해졌다. 통계청이 내는 청년실업 통계상 기준을 따른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청년실업 통계를 비교할 때 15~24살을 청년으로 보지만, 한국은 15~29살 통계자료를 같이 낸다. 통계청 심원보 고용통계과장은 “높은 대학진학률과 군 복무 기간 등으로 20대 후반에 사회진출을 하기 때문에 15~29살 기준이 실태를 파악하는 데 더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2014년부터는 공공기관의 청년 의무고용 등 일부 정책에서 청년의 나이를 34살로 늘렸다. 30대에도 여전히 첫 직장을 찾는 구직자가 많아진 사정을 배려한 조처였다. 한국고용정보원 자료를 보면, 대졸 신입사원(2012년·남성 기준)의 평균연령은 33.2살이다.
급속한 고령화도 청년 나이를 바꾸고 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사람들을 나이순으로 줄 세웠을 때 맨 가운데 있는 사람의 나이를 뜻하는 중위연령은 41.2살이었다. 1990년대까지 20대에 머물렀던 중위연령은 2000년대 이후 30대로 늘었다가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40대에 진입했다. ‘젊은이’에 대한 기준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의미다. 우리보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일본은 46.5살, 미국과 중국은 각각 37.8살과 36.8살, 인도는 27.3살이다.(2015년 기준)
실제로 고령화가 심각한 지역일수록, 청년의 연령 기준은 인심이 후한 편이다. 전라남도의 곡성군과 장흥군은 올해 ‘청년발전 기본조례’를 만들면서, 청년 나이를 49살까지로 정했다. 지난해 곡성군 인구 3만 672명 중 19~49살은 9656명(31.5%)으로, 65살 이상 인구 9862명(32%)보다 적다. 곡성군청 담당자는 “주민등록상 통계라서 다른 지역으로 공부하러 가거나 일하러 간 이들을 빼면 실거주 청년의 수는 더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라 바깥에서도 청년들의 처지가 열악할수록 연령대를 높게 잡는 추세가 있다. 유럽판 청년수당인 ‘유스개런티’(청년보장정책)를 지급하는 연령 기준은 대체로 25살까지가 많은 편이지만, 청년실업이 심각한 포르투갈 등 몇 나라는 30살까지 준다. 15~24살로 청년 나이를 잡고 있는 오이시디도 청년 니트족(일을 하지 않으면서 교육이나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경우) 통계를 낼 때는 29살까지를 청년으로 본다.
■ ‘위헌소송 또 날라’ 정책담당자들은 진땀
20대 국회에 제출된 각종 청년 관련 법안들로 인해, 청년의 나이를 재정의하려는 시도와 그에 따른 논란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채이배 의원(국민의당)은 지난 7월 청년 나이를 34살까지로 늘리자는 내용의 청년고용촉진특별법과 중소기업인력지원특별법 개정안을 각각 냈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 기업에서도 34살까지 청년들의 고용을 촉진시키자는 취지다. 또 조정식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세제지원상 29살까지로 돼 있는 청년 나이를 35살까지로 높이자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같은 달 국회에 냈다. 신보라 의원(새누리당)은 39살까지를 청년으로 보는 청년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나영돈 고용부 청년여성고용정책관은 “법상 청년 나이 기준을 34살로 못박는 것은 사회통념상 적절치 않다”며 “정책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데 청년실업이 가장 심각한 연령대에 혜택이 집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의 행보는 조심스럽다. 고용부와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청년고용절벽 해소대책’을 내놓으면서, 취업지원 사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청년 나이를 34살까지로 늘리는 청년고용촉진특별법 시행령을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시행령 개정 내용을 보면, 청년의 나이를 정의한 2조를 바꾸는 대신 일부 사업의 지원 대상을 필요한 경우 확대할 수 있다는 ‘소극적’ 문구를 끼워넣는 데 그쳤다.
강력한 정책이 나올수록, 청년 구직자들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청년 의무고용 할당제가 처음 시행될 무렵, 위헌소송이라는 홍역을 치러야 했다. 애초 29살까지로 제한된 법 조항에 반발한 30대 구직자들이 2013년 8월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후 소송이 진행되던 중 같은 해 10월 적용 대상이 34살로 확대되면서 이듬해 합헌 결정이 났지만, “생물학적 나이로 특혜를 부여해 연령차별 소지가 크다”는 이유로 위헌이라는 의견도 다수 나왔다. 최근 야당 의원들은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 대기업에도 청년고용 할당제를 의무화하자는 법 개정안을 낸 상태여서, 언제 다시 소송이 제기될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세제지원상 청년 나이를 늘리려면 ‘세수 감소’라는 벽을 넘어야 한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조정식 의원의 조특법 개정안에 대한 비용 추계를 한 결과를 보면, 청년 나이를 35살까지로 올릴 경우 2017~2020년에 연평균 997억 5천만원(누적 3,990억원)의 세수가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됐다.
■ 당사자인 청년들 “뭣이 중헌디”
당사자인 청년들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청년의 나이 기준을 확대하고 정책의 숫자만 늘리려는 것 아니냐는 경계를 드러낸다. 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는 “정치권에서 40대 이상도 청년으로 보는 것은 정치적 고려가 큰 것 같아 씁쓸하다. 그동안 정부의 청년 대책은 양질의 일자리로의 이행이 아닌 일자리 수를 늘리는 정책에 국한돼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문 대표는 “앞으로 청년문제 해결은 제대로 된 노동시장 진입을 돕는 것뿐 아니라 이행기에서의 삶의 질 보장을 위해 주거와 사회보험 등 다양한 정책적 접근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기가 길어짐에 따라, 연령대별로 다른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철우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정책들을 통일되게 추진하는 것보다는 일정한 연령대별로 나눠서 그에 맞게 청년정책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구직활동에 힘겨운 청년들의 시선은 좀 더 싸늘하다. 두해 전인 2014년 대학을 졸업한 뒤 얼마 전에야 첫 직장에 입사한 이지현(가명·28)씨는 “지금 있는 청년정책들도 별로 체감해본 적은 없는데 나이 기준을 늘려서 지원을 늘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안정적인 회사에 취업이 잘 되도록 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일부에선 비정규직의 직접 고용 의무가 생기는 고용계약 기간을 가리켜, ‘2년 뒤 미래가 안 보이면 청년’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더 이상 청년이 연령으로 규정되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박 교수도 “산발적으로 청년대책이 추진되고 있으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등 일자리 문제의 본질에 대해 청년들과 소통하려는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617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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