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비닐 이야기 : 농사짓는 분들의 비닐 숭배는 대단합니다! 본문
어디 그뿐인가요. 농사짓는 분들의 비닐 숭배는 대단합니다. 비닐을 깔지 않으면 농사를 못 짓는 줄 알고 있을 정도니까요. 고추 모종을 낼 때는 검은 비닐을 땅에 씌워야 하고, 고구마 순은 흰 비닐과 검은 비닐이 반씩 줄쳐진 것을 써야 하고, 마늘밭에는 구멍이 몇 개 뚫인 비닐을 써야 하고, 더덕씨 심는 비닐은 이렇게 생겼고, 담배밭에 까는 비닐은 저렇게 생겼고, 관리기로 비닐을 깔 때는 이렇게, 경운기로 깔 때는 저렇게... 이렇게 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사시장철 비닐은 온 땅을 뒤덮어 바람 불면 펄럭이고 햇빛 나면 번쩍이고, 비 오면 후두둑 후두둑 가랑비가 와도 소나기 소리를 냅니다. 우리나라 농학자란 농학자는 죄다 비닐 농사법 개발에 몰두해 있는 것 같습니다.
제초제와 화학비료와 농약과 항생제 섞인 유기질 비료까지 안 쓰겠다고 고집을 피워 농사를 짓는 저희를 보고 걱정이 되어 속으로 '농사를 짓겠다는 것인지, 취미 생활을 하겠다는 건지' 웅얼거리시는 마을 어르신들도 비닐마저 쓰지 않겠다고 하니 아예 '미친 놈들'로 여기는 듯합니다. 저희가 생각해도 저희들이 미친 년놈들인 것 같습니다. 소를 앞세우고 쟁기를 지고 다니는 분도 한 해에 몇번 만나기 힘든 시골에서 노상 지게를 지고 산비탈을 오르락 내리락하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소득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다른 분들은 제초제와 농약으로 범벅이 된 고춧대를 밭에 세워놓은 채 겨울을 나는 동안 저희는 제초제, 농약을 쓰지 않은 고추를 따서 열심히 햇볕에 말려 '태양초'를 만들었고, 가을 서리가 내리기 전에 고춧대를 뽑아 아직 거기에 매달려 있는 풋고추들을 빙 둘러앉아 알뜰하게 따서 옛날에 빚은 숨쉬는 항아리에 소금에 절여 간직했다가 일부는 삭인 염장 고추로 팔고, 일부는 고추 김치를 담아서 팔았더니, 염장 고추와 고추김치 판 소득만 해도 삼백만원이 웃돌았으니까요. 더 큰 소득은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이 아닙니다. 죽어가던 땅을 되살려내어 살아 있는 음식을 우리 밥상에 올려서 살아 있는 우리 몸과 하나가 되게 하고, 비록 모든 이에게 고루 베풀지는 못했을망정 멀리 사는 이웃에게도 마음에 부끄럽지 않은 음식을 제공하여 '맛있다'는 칭찬을 받은 것이 더 큰 소득이지요.
비가 개면 다시 지게를 지고 산길을 걸어야 합니다. 이미 구해놓은 더덕씨가 어서 땅에 묻히기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아쉬운 것은 옛날 모내기할 때 쓰던 실끈을 구할 수 없어서 눈에 띄는 비닐끈으로 밭둑과 밭고랑의 넓이를 재서 더덕밭을 일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를 먹이고 쟁기질을 배울 때까지, 제가 소가 되고 제 손에 든 괭이와 삽이 쟁기 노릇을 하겠지요.
(윤구병,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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