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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값싸다, 편리하다 하여... 소중한 성찰의 시간과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본문

사는 이야기

우리는 값싸다, 편리하다 하여... 소중한 성찰의 시간과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독립출판 무간 2016. 8. 21. 19:51

요즈음 시골에는 새끼 꼬는 사람이 없다. 가마니 짤 일도 없고 삼태기니 멍석 짤 일도 없고 지붕에 이엉 얹을 일도 없으니 당연한 이이다. 그 밖에 이것저것 묶는 데는 비를 맞거나 땅 속에 묻어도 썩을 염려가 없는 가볍고 튼튼한 비닐끈이 있다. 지퍼 달란 비닐포대, 멍석 열 개보다 더 넓으면서도 한 손으로 거뜬히 들어올릴 수 있는 비닐깔개, 가볍고 튼튼한 비닐삼태기...

 

이맘 때면 동네 사랑방에 호롱불을 밝히고 모여 앉아 손바닥이 닳도록 새끼를 꼬면서 밤늦게까지 정담을 나누던 마을 어른들은 이제 모두 환한 형광등 아래서 텔레비전을 켜놓고 연속극 줄거리를 따라가기에 여념이 없다.

 

싸릿대에 꿴 곶감을 걸려고 새끼를 꼬았다. 새끼를 꼬려면 먼저 볏짚을 잘 골라야 한다. 콤바인으로 벤 짚은 기계 속에 들어가 한번 몸살을 앓아서 볏짚으로는 질이 좋지 않다. 다행히(?) 우리는 낫으로 볏짚을 벴다. 요 몇 년 사이에 낫으로 볏짚을 베는 사람이 우리 마을에도 없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200평 한 마지기 벼를 콤바인으로 베어 자동으로 탈곡까지 해서 포대에 담아주는 데 만오천원에서 이만 원 내면 되니, 하루 꼬박 장정이 낫으로 베도 200평을 베어 묶기 힘드는 고생을 누가 사서 하랴. 우리가 서툰 낫질로 벼를 베는 모습을 보고 볏단을 묶으러 나온 마을 어른들이 쯧쯧 혀를 찼다. '논바닥이 질어서 콤바인으로 베기 힘들어요' 어쩌고 하면서 허리가 부러지도록 낫으로 벼를 벤 덕에 새끼 꼬기 좋은 볏짚을 얻은 셈이다.

 

이렇게 낫으로 베었다 해서 모두 새끼 꼬기에 알맞은 볏짚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람에 쓰러지지 않은 것으로 키가 큰 것, 대가 실한 것을 골라야 한다. 고르고 나서도 할 일이 많다. 벼가 달려 있던 모가지 부분을 한 움쿰 쥐고 나머지 손의 손가락을 갈퀴처럼 벌리고 구부려 북데기를 거꾸로 벗겨내는 작업을 하다보면 손가락 마디가 볏짚에 쓸려 얼얼하다가 나중에는 피가 맺힌다. 농산꾼들 손이 갈퀴처럼 거칠어지고 손가락 마디마디에 굳은살과 옹이가 박히는 까닭을 알겠다.

 

북데기가 벗겨지고 심만 남은 볏짚으로 새끼를 꼰다. 알맞은 굵기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하면서 하나의 크기가 일 미터 남짓한 볏짚들을 알맞을 때 알맞은 곳에 끼워 넣어 하나의 긴 새끼줄로 이어지게 하는 데는 여간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다. 잘못하면 새끼가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하여 땔감 묶는 데나 쓰일까 다른 데는 쓸모 없이 되기도 하고, 또 새로 끼워넣은 볏짚 자리가 약해서 조금만 힘을 써도 끊어지기 일쑤다.

 

어린 시절에 익힌 뒤로 마흔 해가 넘게 꼬아보지 않던 새끼를 꼬면서 머릿 속에 오가는 생각이 많다. 차라리 면소재지까지 걸어서 오가는 한시간 남짓한 시간을 들여서라도 비닐 끈을 사다가 아랫집 할아버지처럼 간단하게 꿰어 걸었더라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짓이 밥값이나 제대로 되는 걸까? 그러찮아도 제초제도 안 쓰겠다, 농약도 안 쓰겠다, 화학비료도 안 쓰겠다, 하다 못해 닭똥이나 돼지똥을 발효시켜 만든 유기질비료도 항생제가 든 사료를 먹인 것이라서 못 쓰겠다 하여 고생은 고생대로 해가면서 짓는 농사꼴이 말이 아니어서 동네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판에, 밭에 비닐을 깔지 않겠다는 고집은 이해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비닐끈마저 쓰지 않겠다고 하여 새끼를 꼬는 모습을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저 사람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인가. 그 동안 저런 생각으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면 그 학생들 무얼 배웠을까 의심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휩쓸리며 두 손을 비비고 있노라니 그래도 새끼줄은 한 뼘 한 뼘 길어져 간다. 그리고 처음에는 굵었다 가늘었다 마치 쇠무릎풀처럼 가관이던 새끼줄이 차츰차츰 고르게 꼬여간다. 그리고 처음에는 흩어지던 생각들이 하나로 모이면서 제법 새끼줄 이어지듯이 개똥철학도 새끼줄 갈피에 섞여서 한데 이어진다.

 

지금은 지난 일이 되어버렸지만 새끼 꼬기는 농사일의 기본 가운데 하나였다. 이 기본이 서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발에 신는 짚신, 비 오는 날에 몸에 걸치는 도롱이, 곡식을 넣어 말리는 때로는 방바닥에 장판 대신 까는 데 쓰이는 여러가지 멍석, 곡식을 담아 보관하는 망태나 가마니, 지붕을 이거나 울바자를 두르는 데 쓰이는 새끼에서 아이를 낳고 나서 문간에 내거는 새끼줄이나 초상 났을 때 허리띠 대신 허리에 묶는 삼베 새끼에 이르기까지 새끼줄이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처럼 농사일과 삶에 기본이 되는 새끼줄은 저마다 굵기와 길이가 달랐다. 그러나 저마다 다들 지푸라기 하나하나를 엮어서 한 줄기 줄로 잇는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사람방에 한 데 모여 둥그렇게 호롱불을 가운데 두고 앉아 새끼를 꼬던 우리네 어른들은 그 사이에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까? 혹시나 서로 다른 개인들이 관계를 맺어 하나가 되는 방식도 새끼줄을 꼬아가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지나 않았을까? 쓰임새에 따라 가는 새끼, 굵은 새끼, 긴 새끼, 짧은 새끼를 꼬듯이 남자와 여자의 관계, 아이와 어른의 관계, 이웃과 이웃의 관계가 어떤 끈으로 어떻게 묶여 하나가 될지를 가늠하여 이런저런 생각과 느낌의 새끼줄을 꼬아가지 않았을까? 그렇게 하여 마을 공동체라는 평화롭고 수천년 지속 가능한 삶의 세계를 이루어내지 않았을까?

 

지금 우리가 값싸다, 편리하다 하여 공장에서 기계로 꼰 비닐끈을 사다 쓰려고 길을 나서는 순간 혹시 우리는 이런 소중한 성찰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결과로 모든 인간관계, 사회관계,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관계를 기계화하는 것이나 아닐까?

 

새끼를 다 꼬았다. 시간은 한 시간 남짓. 면소재지를 오가는 데 걸린 시간이다. 그 새끼줄에 싸릿대에 꿴 곶감을 걸어 처마 밑에 매달았다. 꽂감과 싸릿대와 새끼줄,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늦가을의 하늘빛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윤구병,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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