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본문
슬로 푸드를 요리의 트렌드나 기업의 새로운 외식 아이템 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그런 이들은 지금 전 지구적 물결을 이루고 있는 반세계화 운동의 중심에 슬로 푸드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먼저 유럽의 반세계화 운동과 슬로 푸드 운동의 중심 인물인 조제 보베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조제 보베는 프랑스의 르라르자크 지방의 몽트르동이라는 작은 촌락에 사는 농부로, 그 유명한 록폴 치즈의 생산자이다. 1999년 8월 프랑스 남부 지방의 미요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그의 이름은 널리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보베와 아홉 명의 동지들(이를 '미요10'이라고 부른다)'은 트랙터를 타고 건축 중인 맥도날드 매장을 파괴하다가 체포되었다. 이 사건 전에도 보베는 반핵, 환경운동가로서 다양한 행동을 벌인 바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유전자 조작 작물에 관여한 다국적기업의 시설을 파괴하려 한 것이다.
그가 벌인 일련의 행동 뒤에는 좀더 넓은 배경이 있는데, 그것은 EU(유럽연합)와 미국 사이에 일어난 무역마찰이다. 우선 EU가 성장 촉진 호르몬제를 사용해 기른 쇠고기에 대해 국내산과 수입품을 불문하고 판매를 금지시켰다. 그러자 미국은 WTO(세계무역기구)를 통해 이러한 EU의 제재 조치가 자유무역에 반하는 불공정한 수입 금지 조치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경제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WTO는 이런 대립에서는 사회적인 악영향이나 환경 파괴 따위에는 눈 감고 다국적기업에 손들어 주는 것이 상례였다. 이 때도 WTO는 미국의 주장을 통과시켜 EU의 조치를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EU가 이를 거부하자 WTO는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미국이 유럽에서 수입하는 물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허용했다. 그 수입품 가운데 하나가 보베의 록폴 치즈였던 것이다.
1999년 말, 시애틀에서 열린 WTO회의를 반세계화 데모대가 포위한, 이른바 '시애틀 투쟁'에서도 보베를 필두로 한 '미요 10'은 영웅이었다. 200년 6월에는 그들의 재판 투쟁 지원을 위해 미요에 5만여 명이 집결했다. 데모대의 유니폼이 된 티셔츠에는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보베의 말이 적혀 있었다. 프랑스의 여론조사에서도 6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보베의 용기와 성실을 높이 평가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를 취재한 드넬라 메드우즈와 헐 해밀튼은 보베가 사는 마을을 방문해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사실을 취재한 바 있다. 불과 6, 7세대가 사는 이 작은 마을에는 일주일에 한번 시장이 서는데, 인근 마을 사람들이 각자의 농산물과 공예품을 들고 모여든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나온 음식물과 와인을 함께 먹고 마시며 노래하고 춤춘다. 연극이 상연될 때도 있다. 여기에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별이 따로 없다. 하나의 공통체가 있을 뿐이다.
여러 세기를 이어 온 르라르자크 지방의 생활은 이런 것이었다. 보베의 항의 행동이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은 이러한 삶의 방식, 즉 '슬로 라이프'와 맥도날드나 유전자 조작 작물로 대표되는 '패스트 라이프'의 대비였다. 메드우즈와 해밀튼은 이렇게 말한다.
시장 교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어 온 문화 안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화되어 버린다. 우리들의 시간도, 지식도, 경치도, 물도 그리고 음식물도. 보베와 그 공동체 사람들은 이에 대해 단호히 "안 된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것에 절대 반대한다고. 그러한 시스템에 말려들기를 거절한다고. 인간관계, 땅과의 관계 그리고 자신들의 생명을 돈으로 환산하기를 거부한다고. 공장에서 만들어진 음식물들이 WTO에 의해 억지로 입에 쑤셔 넣어지기를 거부한다고. 우리에게는 자유무역이나 값싼 음식물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공동체, 문화, 미각, 일 그리고 자연이라고.
- 쓰지 신이치, <슬로우 이즈 뷰티플> 중에서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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