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봉우리를 억지로 꽃피우고, 아이를 빨리 어른으로 만드는 것이 개발이라면? 본문
트루먼은 1949년 1월 20일 당선 후 취임 연설에서 '기술, 경제 원조와 투자를 통해서 미개발 국가들을 발전시킨다'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더글러스 러미스에 따르면, '미개발 국가들'이라는 표현은 이 때 처음 나온 것이라고 한다. 비단 '발전'이라는 말이 정책으로 사용된 것 뿐 아니라, 원래 '발전하다'라는 의미의 자동사인 'develop'가 '~을 반전시키다'라는 타동사로 쓰인 것도 이 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러미스는 이 'develop'라는 동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본래 이 말은 봉오리가 꽃이 된다거나 씨앗에서 싹이 난다거나 아이가 어른이 된다거나 하는 의미로, 주로 생물의 성장에 있어 전 단계의 가능성이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뜻으로 쓰였다. 일본어의 경우에도 성장과 발전이라는 단어는 본디 자동사적인 어휘였다. 저절로 성장하거나 발전하지 않을 것을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성장시키거나' '발전시키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자동사를 트루먼 대통령이 처음으로 타동사로 사용하여, '뒤쳐진 나라들을 개발하고 발전시킨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미국의 정책'이라고. 그 말대로 그 후 반세기에 걸쳐 미(저)개발 국가나 지역을 개발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일이 미국과 그 밖의 이른바 선진국들, 그리고 국제연합의 정책으로 행해져 왔다.
러미스에 따르면, 지금 유행하는 세계화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식민지화나 제국주의 모두 서구 문명과 경제 제도 속에 전 세계를 편입시키려는 것이었으므로 세계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은 식민지화와 제국주의에는 힘에 의한 침략과 착취, 억압이라는 측면이 겉으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작게든 크게든 이를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이 되어 개발과 발전의 이데올로기가 주류를 이루면서 이 세계화는 봉오리가 꽃이 되고, 아이가 성장하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과정이 되어 버렸다. 타동사를 자동사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셈이다.
과거의 제국주의, 즉 대국의 이윤을 위한 착취가 이미 우리의 미래에는 존재할 여지가 없다. 우리가 구상하는 것은 민주적이고 공정한 관계를 기본 개념으로 한 개발 계획이다. - 트루먼 대통령의 취임 연설에서
이에 대해서 구스타보 에스테바는 이렇게 단언한다. "근대의 사상과 행동을 주도하는 힘으로서 이토록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말은 없었다."
2002년 여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국제연합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정상회담>에 이르러서도 ('지속 가능한'이라는 말이 붙기는 했지만) '개발'이라는 말은 여전히 건재했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표현이야말로 이제까지의 개발이 지속 불가능한 것이었으며, 이미 그대로는 세계 대부분의 국가와 지역에서 더 이상 목표가 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아닐까. 지금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는 반세계화의 거센 물결 또한 이를 확인시킨다.
반세계화 운동의 지도자인 인도의 반다나 시바는 요하네스버그 회담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개발'이라는 이름의 돌이킬 수 없는 파괴로 인해 생명의 존속 그 자체가 위기에 이르러, 우리는 근본적인 재검토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개개의 환경 파괴형 프로젝트를 재검토한다는 의미에서 머물지 않고, 이러한 프로젝트를 낳아 온 '개발'이라는 개념과 사고의 틀 자체를 재검토하는 일이다. - <반다나 시바의 눈3>, <주간 금요일>, 2002년 8월 23일자에서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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