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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이야기

최고의 품질은 지역성에서 나온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10. 11:12

요구르트 한개에 트럭 수송거리 10미터

아주 단순한 상품으로 보이는 딸기 요구르트의 이동거리는 얼마일까? 딸기 요구르트는 우유, 가공한 딸기, 설탕 그리고 요구르트 배양균으로 만든다. 완성된 요구르트는 재생용 유리병에 땀아 알루미늄 뚜껑으로 봉한 후 상표를 붙인다. 그리고 두터운 종이상자에 20개씩 포장하여 판매한다. 상자는 여러 겹의 마분지를 붙여 튼튼하게 만들었다. 원료와 알루미늄 뚜껑, 종이상자 등은 각각 전문 제조업자들이 생산하여 요구르트 생산자에게 공급한다.

요구르트의 이동거리는 생산과 도매유통을 합쳐 8천 킬로미터 이상이며, 소매점과 소비자에게까지 도달하는 거리를 포함하면 3,493킬로미터가 추가된다. 우리가 가게에서 산 요구르트 한 개당 10미터 정도라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가 요구르트를 한 숟가락 떠낼 때마다 수송차량의 이동거리도 늘어난다.

 

사과

먼 거리를 실려와 식탁에 올라온 과일과 채소 같은 신선한 농산물에도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슈퍼마켓 진열대에 놓인 신선한 농산물을 살펴보면 1년 내내 구할 수 있는 과일과 채소가 얼마나 많은지 금방 알 수 있다. 겨울에 딸기, 봄에 배, 여름에 사과, 가을에 구스베리 등 세계 어디서나 언제나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농산물 수입이 증가하는 것은 제품의 범위가 늘어난 탓도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수입하는 쪽에선 품질기준을 점점 까다롭게 책정하기 때문에, 수출국들은 앞 다투어 자신이 만든 것 중에 '최고 품질' 제품만 선적한다. 그 결과 수입국의 지역 생산자들은 수입제품의 가격뿐 아니라 품질과도 경쟁해야 한다. 동일한 국제 모델과 차이가 나는 지역의 제품은 소비자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과 세계무역기구WTO도 음식의 표준화를 부추기는 장본인이다. 이들의 원래 목표는 제품의 위생기준을 강화하여 건강에 유해한 요소를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이 하는 업무는 엉뚱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사과를 예로 보자. 이들은 품질 기준을 특급, 1등급, 2등급의 세 단계로 나누었다. 잎줄기가 흠 없이 달려 있으면 특급이고, 잎줄기가 손상되었으면 1등급이다. 사과자체에 아무 이상이 없어도 잎줄기가 떨어진 것은 2등급밖에 안 된다. 크기도 기준에 포함된다. 직경 50에서 65밀리키터까지 크기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독일에서는 연방정부가 인정한 품종의 사과만 시장에 판매할 수 있다. 지역 종자의 순수성을 보존한답시고 유럽연합은 다양한 옛 품종을 시장에서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장거리 수송체계 때문에 나날이 품종이 줄어든다. 사과도 예외는 아니다. 유럽의 몇몇 지역에서는 아직도 여러 가지 용도에 쓰이는 사과가 수백여 품종이 생산되지만, 독일의 일반 슈퍼마켓에 반입되는 사과는 1년에 10종 미만이다. 사과는 여덟 개 나라(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질랜드,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에서 온다. 하지만 생산지가 달라도 종류는 다 비슷비슷하다.

그러니 슈퍼마켓에 온 세계가 다 모인 셈이다. 1년으로 보아 전반부에 팔리는 사과는주로 유럽산이며, 후반부에 팔리는 사과는 유럽 밖에서 생산된 것이다. 그렇다고 지역에 따라 무슨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 사과는 대부분 동일한 '품질기준'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표준 크기이고 정해진 색깔에 흠집 없는 외관이면 된다. 그래서인지 맛도 한결같다.

 

최고의 품질은 지역성에서 나온다

수송거리가 길어지면 환경도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에너지 소비, 배기가스 방출, 도로점유, 교통사고 등) 제품도 점점 더 규격화된다. 슈퍼마켓에 들어서면 얼핏 제품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는 듯하지만 실상 기본 요소는 거의 동일한 제품이다. 차이가 나 보이는 건 포장과 향과 색을 다채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는 표준화된 크기와 색으로 되어 있고, 판매하는 종류도 그 수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젠 시장에 가도 그 지역의 특산품을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 사람이 살아나가는 데 거리 제약이 없어지면 다양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이득이 생긴다고 믿었다. 그러나 최고의 품질은 지역성과 계절에서 비롯된다. 오리지널 파르마 햄처럼 장거리 수송이 가능한 특산품도 없진 않지만 대부분의 식품, 특히 지역 특산품은 이동거리가 길어질수록 품질에 치명적이다. 장거리 수송은 품질을 보증해 주지 못한다. 품질을 지켜주는 것은 제품의 이동거리가 아니라 지역의 다양성이다.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 김종덕.이경남 옮김,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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