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규격화된 제품이 장거리 수송과 소비자의 필요와 맞물려 지역의 다양한 특산물을 몰아내고 있다! 본문
영농기술과 가공방법, 그리고 수송체계가 발전하면서 소비자는 전부다 훨씬 다양한 농산물을 손에 넣게 되었다. 까마득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산된 품질 좋고 종류도 다양한 음식을 취향대로 선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급체계에는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한 결함이 있다. 우선 장거리 수송을 하다보면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되고, 환경도 오염시킨다. 둘째로 다양한 식량을 공급하기 어려워진다. 수송거리와 다양성은 식량 공급을 다루는 어떤 자리에서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는 문제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 두 가지 측면을 살펴보려 한다.
무역거래를 하거나 새로운 판매시장을 개척할 때 수송문제는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중요한 사항이다. 하지만 연료비가 낮아지면 회설들은 비싼 창고보관비를 줄이기 위해 생산품을 외부로 옮겨 관리하려 한다. 원료를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지역을 찾거나 새로운 판매처를 개척하게 되면 수송거리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체 생산비에서 수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기 때문에 상품의 수송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톤과 킬로미터
식품의 수송거리가 최근 수십 년 사이에 대폭 늘어났다. 전체 식품 수송량을 이동거리로 나눈 수치는 1970년에 1킬로미터당 151억 톤이던 것이 1990년에는 282억 톤으로 거의 두 배가 늘어났다(수송제품의 가격은 고려하지 않은 비교이지만, 그래도 이 같은 상승 수치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 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환경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도로 수송량은 1970년에 1킬로미터당 7.5톤이었으나 1991년에는 22.8톤으로 세 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식품산업에서 도로로 수송되는 식품은 1970년에 전체 식품 수송량의 50퍼센트 정도였으나 1991년에는 80퍼센트로 늘어났다. 이러한 수치에도 불구하고 전체 식품 소비량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단지 단위 거리당 식품 수송량의 비율만 크게 증가했을 뿐이다.
결국 소비자들이 먹는 음식이 점점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수송거리가 증가하는 것이 경제 기동력이 좋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거리를 늘리는 데 더 큰 몫을 하는 것은 우리의 식습관이다. 여가시간이 늘어나고, 독신자나 노인이 많아지는 등 사회구조가 변화를 겪으면서 소비형태도 따라서 변하고 있다. 독일 보건농림부의 1990년 통계가 보여주듯이 가공식품 소비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과일이나 채소를 원료로 한 잼, 통조림, 주스가 일상화되었고,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냉동 인스턴트 식품의 비중이 높아졌다. 멀리 떨어진 공장에서 운반해 온 제품이지만 덕분에 음식 준비는 한결 쉬워졌다. 이와 함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소비자들의 욕구도 점차 개별화되고 세분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 때나 어느 곳에서나 원하는 음식을 구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인간이 계절과 지역에 대해 가졌던 전통적 관계는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장거리 수송과 소비자의 필요에 맞게 고안되어 규격화된 제품이 지역의 다양한 특산물을 몰아내고 있다.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 김종덕.이경남 옮김,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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