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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다 2

독립출판 무간 2016. 8. 10. 11:04

두번재 모순은 이들 정책의 뻔뻔한 이중성이다. 각 나라는 과도한 에너지 소비로 채소의 종과 환경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우려한다. 그러면서도 국가 차원의 여러 가지 정책으로 수송(GATT 합의안에서는 항공과 해상교통)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 정상회의는 기후변동으로 나타나는 문제에 대비하기 위한 정책을 중시한 반면 GATT 합의안은 기후 재앙을 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1992년에 열린 리우 환경회의는 생물의 다양성이 보호되어야 한다고 선언했지만, GATT 합의안이 제시한 생물 유전자 특허는 결국 채소 종의 사유화를 초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산업논리의 잣대로 농산물시장을 재단하려 해선 안 된다. 요즘은 농산물시장을 단순논리로 표준화하려는 행위를 경계해야할 때다. 토지가 제한되어 있으니 생산량을 무제한 증가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농산물은 지리적 조건이나 토양의 조건에 제약을 받기 때문에 생산지역이 정해지게 마련이다. 자동차는 단 10개의 나라에서 전 세계가 타는 차량을 생산해 내지만 식량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농업생산과 산업생산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일이다.

 

힘을 합쳐 이 같은 그릇된 추세를 막아야 한다. 농산물의 유통이 자유로워지면 제3세계에 많은 혜택이 도아간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부유한 서구 국가를 모델로 하여 제3세계 농업을 산업화한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제3세계가 서구의 유형을 따르게 되면 현재 생계를 농업에 의존하고 있는 30억 명 가운데 10억 명이 앞으로 20년 안에 직업을 잃는다고 전문가들은 추산하고 있다. 그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파장은 의외로 심각할 것이다.

 

슬로푸드가 만들고 있는 방주는 농산물이 제멋대로 빠르게 유통되는 상황을 막는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생산과 소비라는 과정에서 생물의 다양성을 보호하려면 투쟁을 해서라도 생명공학 특허를 막아야 한다. 와인과 음식의 전통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농업경제를 지역화해야 한다. 음식의 질적 생산을 소중히 여긴다면 양적 생산을 중시하는 현재의 영농방식에 지원하는 보조금을 폐지하도록 투쟁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법적인 문제 몇 가지를 지적하며 이 글을 매듭짓고자 한다. 우선 '보호'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문화나 환경이나 인간적 가치를 보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경제구조를 바꾸어 새로운 사고방식과 목표를 세워야 한다.

 

먼저 농산물을 생산자가 직접 분배하는 방식을 장려해야 한다. 수출보조금은 폐지하고 차라리 그 돈을 지역시장을 지원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 유전공학 특허를 막아야 한다. 에너지 가격이 낮다고 분별없이 소비하는 일이 농업에서만큼은 없어야 한다. 국가마다 다양한 품종을 보존하는 은행을 개설해야 한다. 농사를 지어 얻을 수 있는 깨끗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하는 일도 필요하다. 또한 사과, 호박의 크기 등을 결정하는 정부의 지침을 철회시켜야 한다. 이러한 지침은 대규모 유통업자에게는 유리하겠지만 지역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체제를 발전시키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 김종덕.이경남 옮김,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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