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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이야기

지역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다 1

독립출판 무간 2016. 8. 10. 11:02

1996년 11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식량문제로 세계정상회를 개최했다. 농경지의 질이 점차 악화되고, 생산성이 감소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80억 인구를 제대로 먹여 살리는가 하는 문제가 주제였다.

 

하지만 회의의 결론은 대단히 잘못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들이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것은 세계화를 기반으로 하는 영농의 과학화라는 결론이었다. 즉 유전자조작 기술을 발전시키고 농업을 과학화하여 국가 간의 농산물 교역량을 늘린다는 내용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내놓은 개발논리야말로 현재의 심각한 상황을 초래한 바로 그 주범이다. 그런 사실을 그들은 외면하고 있다. FAO 정상회의는 지금 파멸에 이르는 길로 떠미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패스트푸드 문제는 맥도널드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패스트푸드는 이미 세계경제의 주요 특징이 되었다. 이들은 올림픽의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이"라는 구호를 식생활에 적용하려 한다. 기록에 매달리는 사회는 우리를 숨 돌릴 틈 없이 압박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끊임없이 경쟁하게 만들며, 더 싼값으로 더 많은 것을 생산해야 하는 체제로 끌고 간다. 결국 스트레스만 많아진다. 패스트푸드라는 사고방식엔 미래가 없다. 패스트푸드는 최소한 두 가지 모순을 안고 있다.

 

첫번째 모순은 수송문제다. 수송은 경제와 농업을 세계화하기 위해 갖추어야할 기본 요건이다. 현대의 수송체계는 아직 합리적인 원칙을 마련하지 못한 채, 뉴질랜드 사과가 서유럽으로 선적되고 프랑스 페리의 생수가 켈리포니아로 수송된다 연료비가 낮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서 생산된 음식이 지구의 반대편 끝으로 손쉽게 옮겨지고 있다. 에너지 파동이 가끔 일어나곤 하지만 연료가격은 그래도 저렴한 편이다. 이 같은 잘못된 에너지 정책 때문에 각 지역의 균형적 발전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더욱이 항공과 해상 수송 연료의 세금을 감면해 주고, 항공수송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주며, 시장을 왜곡하여 대규모 도매상에 수출보조금을 지원하는 탓에 소규모 생산자와 소매상인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다. 이런 정책으로는 농업의 지역적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생산의 세계화라는 발상으로는 결코 농산물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농업체제에서 성급하게 이윤을 얻으려 하면 파산할 수밖에 없다. 소규모 생산으로는 이윤을 빠르게 회수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와 경쟁할 수 없다. 결국 패스트푸드는 소규모 생산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더욱이 이러한 추세 떄문에 비료와 농약의 사용이 증가하고, 물과 토양이 오염되며, 농업의 미래는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 그 결과 채소의 종류는 감소하고,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유산이 특정 기업에 의해 사유화되며, 농산물과 음식은 다양성을 잃고 단순화된다. 결국 유전공학까지 특허를 얻거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포함되는 세상이 되었다. (중략) 무엇보다 제한 없는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GATT 규약은 사회 전반적 상황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결정이다. 이들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에서 이루어진 서약과 같은 기존의 국제협약에도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1991년 유럽의회 농업위원회에 속한 나라들은 생물의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협약에 분명히 서명한 바 있다. 그런데도 이들이 2년 후에 다시 생물의 다양성을 침해하는 GATT 합의안에 동의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처사다.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 김종덕.이경남 옮김,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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