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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이야기

슬로푸드 : 농업을 장려하고, 지역의 생산자를 보호하려면... 가격경쟁에 종지부를 찍어야한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10. 10:32

음식이나 와인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직적인 압력으로 인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귀한 채소나 과일의 생산을 서서히 줄이거나 아예 그만두어야할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자연의 생태리듬을 고려하지 않은 혼란스러운 농업정책에도 책임이 있고, 대규모 기업을 위해 만든 근시안적 건강규제법을 소규모 생산자에게까지 일률적으로 적용한 데도 원인이 있다. 이러한 한심한 작태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얼마 안 가 우려할 만한 사태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1996년 12월 2일 이탈리아 토리노의 링고토에서 개최된 미각박람회에서 슬로푸드는 '세상에서 참맛을 구하기 위한 미각의 방주'라는 회의를 열었다. 슬로푸드는 일치단결하여 당시의 음식문화를 바로잡아보려는 의도에서 이 회의를 개최했다. 우리는 '방주'라는 상징적 이름으로 '음식의 규격화 및 세계적 유통망'이라는 거대한 홍수로부터 고품질의 생산물을 구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는 더 이상 거시경제의 논리에 미혹되지 말고, 지역주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느린' 생산과 공급을 장려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농업이 받아야 할 마땅한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 그 길만이 농산물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물론, 방주의 아이디어에도 어느 정도 고지식한 측면이 들어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오직 가정에서 만든 제품이나 소규모 생산자가 만든 음식만 고집하고 옹호하느라, 정직하게 운영하고 환경친화적 방식을 채택해 온 일부 대형 제조회사들까지 무조건 올바르지 못한 기업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단순논리다. 또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의 울타리에 갇혀 경직된 주장을 하는 것도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경계해야 할 오류이다. 과거의 향수에 사로잡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면 그 또한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도 분명한 상식을 외면하고 편리만 쫓는다면, 그것도 우리가 자초한 불행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도리가 없다.

 

확신하건대, 이 시점에서 '방어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정책이 아니다. 대홍수가 일어난다면 방주 외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죽음과 파괴를 예고하고 폭풍우가 다가오는데도 이를 깨닫지 못한 채, 거창한 마케팅 계획이나 공동체 정책을 만들고 그럴듯한 제도를 마련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되도록 빨리 방주를 만드는 편이 더 나은 해결책이다.

 

그러자면 정보가 급선무다. 방주를 만드는 일에는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기까지 규모가 작아도 고품질의 식품을 조달할 사람이 필요하다. 생산자에게는 보상이 돌아가고 구매자에게는 품질이 보증된다는 사실을 모두 인식해야 한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 모두가 자신만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그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을 서로 인정하게 되면 프로의식을 가지고 생산하는 전문인도 점차로 만아질 것이다. 와인이나 음식 평론가뿐만 아니라 미식가들도 음식문화를 만드는 전문인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위생문제는 조심스레 다루어야 할 '뜨거운 감자'이며, 자칫 잘못하면 관리기관과 생산자 간에 돌이킬 수 없는 불화를 만드는 원인이 된다.

 

농업을 장려하고 지역의 생산자를 보호하려면 적지 않은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유럽공동체에서 채택하고 있는 지원정책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양심적이고 프로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너져가는 시장의 전반적 체계를 외면한 채 그들만 육성하는 방식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며 집행하는 데도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솔직히 말해, 현재로서 이같은 정책은 매우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와 다른 방향에서 현실을 바라보려 한다. 즉,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며 판단하고 선택하는 소비자들을 우리 운동에 포함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비자가 더 좋은 제품에 더 많은 돈을 기꺼이 지불하리라는 확신이 없다면 이 프로젝트는 도약할 수 없다. 이제는 가격경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지난 수년 동안 가격은 품질이 낮은 상품을 대량생산하는 사람들이 즐겨 내세우는 속임수에 불과했다.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 김종덕.이경남 옮김,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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