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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주 정노 69. 아주 먼 옛날, 군대를 일삼았던 사람은 이러한 이치를 가지는 바가 있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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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주 정노 69. 아주 먼 옛날, 군대를 일삼았던 사람은 이러한 이치를 가지는 바가 있었다.

독립출판 무간 2025. 3. 27. 11:51

제69장

 

 

用兵有言, 吾不敢爲主而爲客, 不敢進寸而退尺. 是謂執無兵, 攘無臂, 行無行, 仍無敵. 禍莫大於輕敵. 輕敵幾喪吾寶. 故抗兵相加, 哀者勝矣.

(아주 먼 옛날) 군대를 일삼았던 사람은 이러한 이치를 가지는 바가 있었다. “나는 감히 (먼저 군대를 일삼아 적敵에게 나아가는, 그러한) 주인이 되는 바를 일삼지 않고, (적敵이 먼저 나와 맞서게 된 다음에 적敵에게 나아가며, 그때조차 본래 저절로 그러한 백성의 성性·명命이 다치게 되는 바를 슬프게 여기는, 그러한) 손님이 되는 바를 일삼는다. (나는) 감히 (나의 군대가) 한 치를 나아가게 하지 않고, 한 척을 물러나게 한다.” 이것은 이른바 (나의 군대에게 무기를) 붙잡게 하지만, (일부러 일삼아 붙잡은) 무기를 가지는 바가 없게 하고, 팔의 소매를 걷어 올리게 하지만, (일부러 일삼아 걷어 올린) 팔의 소매를 가지는 바가 없게 하며, (무기를) 들어 올리게 하지만, (일부러 일삼아 들어 올린) 무기를 가지는 바가 없게 하고, 적敵과 맞서는 바를 따르게 하지만, (일부러 일삼아 맞서는) 적敵을 가지는 바가 없게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화禍는 적敵을 가볍게 여기는 바로부터 생겨나는 것보다 큰 것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적敵을 가볍게 여기게 되면, 자신의 보물(인 몸과 나라)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서로) 무기를 들어 올려 (서로 맞서는 바를) 더할 때, (본래 저절로 그러한 백성의 성性·명命이 다치게 되는 바를) 슬프게 여기는 사람이 이기게 되기 때문이다.

 

 

有言, 猶言有道也. 或曰, 古有是言也.

유언有言은 (이러한) 이치를 가지는 바가 있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주석했다. “아주 먼 옛날, (군대를 일삼는 사람은) 이러한 가르침을 가지는 바가 있었다.”

 

不敢爲主, 不爲兵, 端也. 敵, 加於己, 則不得已, 而應之, 所謂爲客也.

불감위주(不敢爲主; 감히 주인이 되는 바를 일삼지 않는다)는 “(감히) 군대(를 일삼아 적敵에게 맞서는 바)를 일삼지 않는다. (자신이) 먼저”라는 뜻이다. “적敵이 (먼저 군대를 일삼아) 자신에게 (맞서는 바를) 더하면, (그때야 비로소) 그것과 더불어 어우러졌다”, (이것이) 이른바 위객(爲客; 손님이 되는 바를 일삼는다)의 뜻이다.

 

積寸至十, 曰尺. 進, 雖小. 而不敢. 退, 雖多. 而不愧. 卽上章, 不武不怒之意也.

한 치(寸; 3.3cm)를 쌓은 바가 열 번에 다다른 바, 일컬어 한 척(尺; 30.3cm)이라고 한다. (따라서 진치進寸는) “(일부러 일삼아) 나아가는 바가 작아지게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불감(不敢; 감히 일부러 일삼아 나아가지 않는다)”이라고 일컬었다. (퇴척退尺은) “(저절로 그러하게) 물러나는 바가 많아지게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아주 먼 옛날, 군대를 일삼은 사람은 제67장에서 일컬은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 수隋나라의 양煬 임금, 오吳나라의 임금 부차夫差, 전진前秦의 임금 부견苻堅과 같이, 일부러 일삼아 멸망하게 되는) 욕됨을 당하지 않게 되었다. 요컨대, (불감진치이퇴척不敢進寸而退尺은) 앞 (제68)장의 “불무(不武; 자신이 일삼는 군대를 일부러 일삼아 군사를 다그쳐서 날쌔게 하는 바에 감히 일부러 일삼아 한 치寸를 나아가지 않고)”, “불노(不怒; 저절로 그러하게 한 척尺을 물러남으로써, 일부러 일삼아 적敵을 화나게 하지 않는다)”를 뜻한다.

 

兵, 謂戌器. 無行之行, 讀, 如航. 陳列也. 仍, 如攘臂而仍之之仍. 敵, 敵國. 執者, 必以兵, 攘者, 必以臂, 執無兵, 攘無臂. 猶言善閉無關鍵, 善結無繩約也.

(집무병執無兵의) 병兵은 무기武器를 뜻한다. 행무행行無行의 행行은 읽는 소리가 항航과 같다. 군영軍營을 세우고, 대오隊伍를 갖춘다는 뜻이다. 잉仍은 (제38장이) “양비이잉지(攘臂而仍之; 팔에서 소매를 걷어 올린 채, 그들이 그것을 따르게 한다)”라고 할 때의 잉(仍; 따르게 한다)과 (뜻이) 같다. 적敵은 적국敵國을 뜻한다. (무기를) 붙잡게 하면, 반드시 (붙잡은) 무기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되고, (팔의 소매를) 걷어 올리게 하면, 반드시 (걷어 올린) 팔을 가지는 바가 있게 되는데, “집무병(執無兵; 무기를 잡게 하지만, 잡은 무기가 없게 하고), 양무비(攘無臂; 팔의 소매를 걷어 올리게 하지만, 걷어 올린 팔이 없게 한다)”라고 했다. 이른바, (제27장의) “잘 닫는 사람은 (일부러 일삼아) 문빗장과 자물쇠를 가지는 바가 없고, 잘 묶는 사람은 (일부러 일삼아) 끈과 줄을 가지는 바가 없다”는 뜻이다. (이른바, 자신의 군대에게 무기를 붙잡게 하고, 팔의 소매를 걷어 올리게 하지만, 일부러 일삼아 상대의 군대와 맞서고, 싸울 마음을 가지는 바가 없게 한다는 뜻이다)

 

抗, 擧也. 哀, 如哀敬折獄之哀, 謂有矜愼惻怛之心也.

항抗은 (무기를) 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애哀는 (『서경書經』이 「주서周書·여형呂刑」에서 일컬은) “(본래 저절로 그러한 백성의 성性·명命이 다치게 되는 바를) 슬프게 여겨서 (일부러 일삼아 처벌하는 바를) 삼가는 바로써, 형별의 사무를 처리한다”고 할 때의 슬프게 여긴다는 말로서, (본래 저절로 그러한 백성의 성性·명命이 다치게 되는 바를) 불쌍하게 여겨서 (일부러 일삼아 맞서거나 싸우는 바를) 삼가고, 안쓰럽게 여겨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바가 있다는 뜻이다.

 

以進爲勝, 以退爲敗, 兵之常也. 善用兵者, 常退, 不與人爭, 而人, 莫能與之爭. 是以不用怒, 而威, 不恃銳, 而强, 不待交兵, 而克. 此, 所謂不戰, 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자신의 군대를) 나아가게 함으로써, (상대에게) 이기게 되고, (자신의 군대를) 물러나게 하면, (상대에게) 지게 된다는 것이 용병술의 상식이다. (그러나) 군대를 일삼기를 잘하는 사람은 늘 그러하게 (자신의 군대를) 물러나게 한 채, 상대와 더불어 싸우지 않음으로써, 상대가 자신과 더불어 싸울 수 없게 한다. 따라서 (그는 상대를) 화나게 하는 바를 일삼지 않고도, (상대를) 다그치게 되고, (자신의 무기를) 날카롭게 하는 바를 기대지 않고도, (상대의 무기보다) 굳세지게 하며, 상대(兵; 人)와 맞서는 바를 기다리지 않고도, 이기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손자병법孫子兵法』이 「모공편謀攻篇」에서 일컬은) “싸우지 않고도, 상대를 엎드리게 하는 용병술이며, (군대를 일삼기를) 잘하는 일 중에서도 잘하는 일”이다.

 

其次, 則雖不得已而至於交兵, 惻怛不忍之心, 素孚乎民. 而又加之以臨事之, 懼. 故民, 懷其德, 而敵, 不得乘其隙. 此, 亦全勝之術也.

그 다음으로 (군대를 일삼기를 잘하)는 (사람은) 부득이하게 (상대의) 군대와 맞서는 바에 이른다. (그러나 그때조차 본래 저절로 그러한 상대 백성의 성性·명命이 다치게 되는 바를) 불쌍하게 여기고, 두려워함으로써, 차마 (자신이 먼저 군대를 내보내 상대 백성과 맞서는 바를) 일삼지 못한 채, (상대) 백성(民; 兵)을 참되고 미덥게 대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먼저 군대를 내보내 상대 백성과 맞서는 바) 그것을 더하는 바로써, 임하는 일은 (본래 저절로 그러한 상대 백성의 성性·명命을 다치게 하는 바로서)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 백성은 그의 덕스러움(德; 無爲)을 (마음에) 품게 되고. 따라서 (그) 군대(敵; 民)는 그 (무기를 붙잡거나, 팔의 소매를 걷어 올리거나, 무기를 들어 올릴 마음의) 틈에 올라타는 바를 얻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그는 상대의 군대와 맞서는 바를 기다리지 않고도, 이기게 된다) 이것은 또한 (상대를) 오롯하게 이기는 용병술이다.

 

彼, 好爲兵主者, 必有樂禍之心. 耻退, 而矜進者, 必恃其銳而凌人. 若是者, 其, 用民也. 必輕其, 慮事也. 必踈. 而其於敵也. 必易之. 民, 勞於下, 而主驕於上. 然而不喪身危國者, 未之有也.

저, 자신이 먼저 군대를 일삼아 적敵에게 나아가게 하는 바를 일삼는 바를 좋아하는 임금은 반드시 (적敵에게 본래 저절로 그러한 자신의 성性·명命이 다치게 되는, 그러한) 화禍를 당하게 하는 바를 즐겁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바가 있는 임금이다. (자신의 군대를) 물러나게 하는 바를 부끄럽게 여기고, 따라서 나아가게 하는 바를 뽐내는 임금은 반드시 그 (자신의 무기가 상대보다) 날카로운 바를 기대고, 따라서 상대를 깔보는 임금이다. 따라서 그러한 임금, 그는 (반드시 자신의) 백성을 일부러 일삼게 되고, (따라서 그는) 반드시 (자신의) 백성이 걱정하는 (본래 저절로 그러한 성性·명命이 다치게 되는) 일(事; 禍)을 가볍게 여기게 된다. (따라서 백성은) 반드시 (그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따라서 (백성은) 이른바 (그를) 적敵으로 여기게 된다. 반드시 그렇게 되기 쉽다. (왜냐하면) 백성이 아래에서 (일부러 일삼아) 수고롭게 되고, 따라서 (백성은 저절로 그러하게) 위를 깔보는 바를 주인으로 삼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른바 (제67장에서 일컬은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 수隋나라의 양煬 임금, 오吳나라의 임금 부차夫差, 전진前秦의 임금 부견苻堅과 같이, 아주 먼 옛날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자신의) 몸을 장사葬事 지내고, (그 자신의) 나라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임금이 (일찍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身與國, 皆吾之至寶也. 或曰, 吾寶, 卽前章, 寶而持之之寶. 曰慈, 曰不敢爲先, 是也.

(자신의) 몸과 (자신의) 나라, 모두 임금이 보물로 여기는 바에 이르는 바들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주석했다. “오보吾寶는 이른바 앞 (제67)장(에서 일컬은) ‘보배(로 여기고), (보배로) 지킨다’고 할 때의 보물을 뜻한다. (따라서 오보吾寶는) 이른바 (무위無爲를) 아낌, (유위有爲를 적어지게 함), 감히 (천하의) 앞이 되는 바를 일부러 일삼지 않음, 이것이다.”

 

蘇黃門曰, 兩敵, 擧兵相加, 而吾出, 于不得已, 則有哀閔殺傷之心, 哀心, 見, 而天人, 助之, 勝也.

(중국 송宋나라의) 소철(蘇轍, 1039~1112)은 (고항병상가故抗兵相加, 애자승의哀者勝矣에 대해, 『노자해老子解』 제69장 주註에서, 다음과 같이) 일컬었다. “두 적敵이 (서로) 무기를 들어 올린 채, 서로 (죽게 하고, 다치게 하는 바로 나아가는 바를) 더할 때, 둘 중 누가 (자신이) 나아가는 바가 부득이해지게 하고, (상대가 죽게 되고, 다치게 되는 바를) 슬프게 여기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그가 불쌍하게 여기고) 슬프게 여기는 마음이 (하늘, 자신의 백성, 상대의 백성 모두에게) 드러나게 되고, 따라서 하늘, (자신의 백성, 상대의) 백성이 (모두) 그를 돕게 되며, 따라서 (그는) 이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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