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어느 순간, 우리들이야말로 멸종위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본문
“어느 순간, 우리들이야말로 멸종위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윤해영 윤현정, 채식 등 개인적 실천 이어
중3 때부터 함께 피켓시위, 청소년 기후소송에도 동참
“우린 간절해서 거리 나가는데” 기성세대는 남의 일 대하듯, ‘기특하다’ 칭찬만 하니 씁쓸
“힘 있는 어른들이 행동 나서야”
장마가 끝났다는 기상청 발표가 있은 다음날인 지난 17일 울산으로 향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의 활동가인 윤해영(16·울산여고 1년) 윤현정(16·우신고 1년. 이하 호칭 생략)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중3이던 지난해 10월부터 학교(신정중) 정문과 울산대공원, 울산시청 앞에서 기후위기를 알리는 피켓시위를 벌여왔다. 지난 3월 정부를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낸 청소년 기후소송의 원고(총 19명)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지난해 11월 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우리를 위한, 기후를 위한 책상 행동’에 참석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이 지난해 4차례 주관한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School Strike 4 Climate)의 하나였다. 청소년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가 2018년 8월 스웨덴 의회 앞에서 시작한 매주 금요일의 결석시위를 계기로 만들어진 국제적인 연대 조직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약자 FFF)과의 공동 행동이기도 했다.
―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서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데 중학교 때 집에 있던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라는 책을 읽었어요. 약자를 보는 시선이나 언어 문제 등에 대해 되게 많이 배웠는데 그 뒤 비건(모든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채식주의)과 동물권에 관련된 책을 읽게 됐어요. <동물들의 소송> 등 동물권을 다룬 책들도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맥락이 페미니즘 책과 비슷한 거예요. 거기에 영향을 받아서 그때부터 비건이 됐어요. 처음에는 축산업에만 신경을 써서 고기와 우유를 안 먹었어요.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니까 축산업 문제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이나 서식지를 잃어가는 애들까지 다 포함하는 문제인 것 같더라고요. 그때부터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불쌍하다고 연민을 느끼게 됐는데 공부를 더 하다 보니까 제 자신도 안전하지가 않은 거예요. 처음에는 동물들을 생각해서 피켓에 ‘멸종위기종’이라고 적었는데 어느 순간에 딱 저와 우리야말로 멸종위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뭔가를 해야겠다 싶어서 청소년기후행동에도 들어갔어요.”(해영)
― 현정씨는 어떻게 해서 활동가가 됐어요?
“저는 뭔가 약간 꽂히면 그걸 바로 하는 스타일인데 작년에 <어스링스>(Earthlings)라는 다큐멘터리 한 편을 봤어요. 내용에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날 바로 비건이 됐어요.(웃음) 아, 그때는 비건은 아니고 우유랑 달걀은 먹었거든요. 그 뒤 여러 기후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축산업이 기후위기와 굉장히 맞닿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기후위기가 뭐지?’ 하고 찾아보다가 이게 다음 세대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문제구나 하고 깨달았어요.”(현정)
― 처음에는 책을 보거나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뒤 개인적인 실천운동을 했군요.
“네. 교과서에 나오는 일들, 예를 들어서 텀블러 쓰기라든지 밥 다 먹기 이런 것을 실천했어요. 그런 것은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긴 한데 계속 회의감 같은 게 드는 거예요. 개인적인 실천으로 될까 싶어서 뭔가 공개적인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변에는 동조자가 없을 것 같아서 처음에는 혼자라도 피켓을 들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현정이가 비건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어요. 만나서 우리 피켓시위를 하자고 그냥 통보했어요.(웃음) 그랬더니 자기도 원래 그런 마음이었다고 했어요.”(해영)
“그때 저도 시위하고 싶다는 그런 느낌이 항상 있었거든요. 약간 부조리한 것에 대해 굉장히 화를 누르고 있는 상태에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해영이가 같이 시위하자고 하더라고요. 혼자보다는 둘이면 훨씬 안정적이고 마음도 편하니까 잘됐다 싶어서 되게 반갑고 기뻤어요. 그때가 지난해 9월 중간고사가 끝날 때쯤이었는데 시험 끝난 주말에 만나서 바로 피켓 만들고, 그 다음 주 월요일 등교시간부터 교문 앞에서 피켓을 들었어요.”(현정)
― 선생님이나 학생들이 등교하면서 봤을 텐데 그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처음 며칠 동안은 선생님들이 아예 관심을 안 주셨어요.”(현정)
―왜요?
“학교에 위클래스(학교생활 적응을 돕는 프로그램) 동아리가 있거든요. 그때 마침 위클래스 주간이었는데 그 동아리에서 지구의 날 이런 행사로 학교에서 시켜서 하는 건 줄 알았대요.(웃음) 그런데 좀 오래간다 싶으니까 ‘너네 뭐야?’ 하게 된 거죠.”(해영)
― 피케팅이라는 것을 뒤늦게 안 뒤에 학교에서 말리지는 않았어요?
“말리지는 않았고, 되도록이면 학교 안에서 활동을 끝내라고 교장 선생님이 불러서 말씀하셨어요.”(해영)
“그래서 저희가 학교 밖으로 나갈 때까지 시간이 진짜 오래 걸렸어요. 처음에는 원래 밖에 나가서 하자고 둘이 얘기했는데 선생님 말씀 듣고 나니까 그러면 큰일 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겁이 났고, 나가는 데 준비를 좀 많이 했어요. 아빠가 신고를 하고 나가야 한다고 해서 우리 둘이 경찰서 가서 시위 신고도 했어요.”(현정)
- 그 후로는 어떤 반응들이었어요?
“‘너희들 대학 갈 스펙 쌓으려 이러는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진짜 많아요. 고등학교 와서 느낀 거지만 사실은 정말 도움이 안 돼요. 선생님들은 그런 일 할 시간에 공부하라고 하시고, 생활기록부에도 기록 안 하거든요.”(현정)
“결석시위 나간다고 했을 때 선생님들하고 트러블이 있는 등 별 도움이 안 돼요.”(해영)
― 어떤 트러블이요?
“저희가 결석시위 나간다고 현장체험학습 신청서를 냈는데 최종 확인을 받기 위해 교감 선생님께 불려갔어요. 교감 선생님은 ‘시위는 과격하고 교육적이지 않기 때문에 현장체험을 허락해줄 수 없다. 나중에 어른이 돼서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희가 시위가 아닌 다른 말로 바꿔서 냈더니 허락해주셨어요. 그때 좀 그랬어요.”(현정)
― 시위하는 두 사람을 보고 ‘기특하다’고 말하는 어른들도 많다고요?
“네. 그러나 그런 얘기를 들을 때는 조금 황당해요. 사실 요새도 교육청이나 국회의원들 가운데 기후운동 청소년 활동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되게 많으세요. 근데 저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나 저희 같은 사람이 아예 없으면 좋겠거든요. 장하다고 하는 건 그걸 장려하는 건데 정작 저희는 기성세대의 문제와 국회의원이나 정부 쪽 분들을 비판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도 그런 분들이 저희를 계속 격려한다는 것은 이것을 자기들 문제로 인식을 안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되게 씁쓸해요.”(해영)
“노조가 파업하는데 거기에 대고 회사 간부들이 ‘열심히 하세요’라고 하는 거랑 똑같잖아요. 저희가 이야기하는 문제 제기를 진짜 문제 제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좋은 활동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아요.”(현정)
“사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유권자가 아닌 친구들이 훨씬 많고 대부분 학교를 다니다 보니 힘이 많이 없어요. 그럼에도 저희가 계속 활동하는 건 그만큼 저희의 미래를 지키고 싶다는 것이고, 그 뜻이 간절하고 절박하다는 거예요. 이걸 어른들이 좀 알아주면 좋겠고,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시급성을 깨닫고 행동으로 옮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어른들은 유권자이기 때문에 국가 정책을 결정할 수 있고 자신을 대표하는 대표자를 뽑을 수 있는 힘이 있잖아요. 그렇기에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어른들이 먼저 느껴서 해결하려고 노력해줬으면 좋겠어요.”(현정)
“그리고 저희한테 앞으로 공부를 많이 해서 나중에 활동가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많아요. 그러나 저는 지금 위험하니까 나가서 하는 것이고, 저희가 단체로 해야지 힘이 생기고 그러잖아요. 지금 당장 힘을 가지고 있고 뭘 바꿀 수 있는 분들이 저희한테 ‘너희가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분들이 그냥 당장 행동했으면 좋겠어요.”(해영)
https://news.v.daum.net/v/2020082309260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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