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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찬미하라 : 포르체타, 슈바인스학세, 꼴레뇨, 슈테첼, 샤슬릭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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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찬미하라 : 포르체타, 슈바인스학세, 꼴레뇨, 슈테첼, 샤슬릭

독립출판 무간 2016. 8. 4. 11:19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삼겹살 생각이 간절할 때가 있는가? 먹은 지 한두 끼가 지나도록 뱃속을 유동하는 든든한 기름기가 후회스럽기보다는 뿌듯한가? 사흘만 안 먹어도 피의 절규가 느껴지고, 혈관을 따라 흐르는 육즙에 온 몸의 종이 울려대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육식주의자, 고기는 언제나 옳다고 믿는 ‘고기테리언’이다.

 

육식은 대체로 죄의식을 동반한다. 잔인한 살생 때문만이 아니다. 고지혈증과 대장암 등 각종 성인병이 육식주의자를 징벌할 것 같은 공포가 만연하다. 그래서일까? 고기를 먹는 방법도 소극적이고 제한적이다. 그냥 굽거나 양념에 재서 굽거나, 두 가지 방식이 대부분. 껍데기와 비계, 지방 부위는 배척된 채 살코기만 권장된다. 그러나 당신은 ‘고기테리언’. 가끔은 앞뒤 안 가리고 육식에 탐닉하며 생의 환희를 즐길 필요가 있다. 색다르고 화끈하게 고기를 만끽할 수 있는 요리들을 소개한다.

 

 

바삭한 돼지 껍데기와 부드럽고 물컹한 비계까지, 이탈리아 돼지 오겹살 구이 포르체타.

포르체타... 각종 채소와 허브를 돼지고기 위에 올린 후 김밥처럼 말아 구운 요리다. 한번 조리하면 10여명이 푸짐하게 나눠먹을 수 있어 파티 메뉴로 좋은 데다 고기테리언이라면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여 달려들 수밖에 없는 육중한 비주얼을 자랑한다. 

포르체타는 돼지껍데기와 비계, 살코기 층을 분리하지 않고 통째로 요리에 사용한다. 그러니까 돼지를 사냥한 후 한 부위를 뭉텅 잘라내 그대로 조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껍데기가 붙어 있는 돼지 오겹살을 썰지 않은 채 김밥 김처럼 넓게 펼쳐놓고 안쪽의 물렁뼈를 제거한다. 여기에 냄새를 잡기 위해 럼이나 브랜디를 바르고, 소금과 후추를 뿌린다. 냉장고에서 한두 시간 숙성시킨 고기 위에 잘게 썰어 볶은 양파, 마늘, 청양고추와 로즈마리, 타임을 섞어 얇게 펴 올리고, 포트와인에 팔각, 정향, 시나몬, 설탕을 넣어 조린 건자두를 한가운데 정렬한다. 김밥처럼 각종 재료가 올라간 돼지 오겹살을 돌돌 만 후 조리용 실로 팽팽하게 묶어 190도로 예열된 오븐에 30~40분간 굽는다. 돼지껍질이 갈색으로 변하면 150도로 온도를 낮춰 2시간 반에서 4시간 정도 더 구우면 끝.

이 새로운 요리를 맛보면 돼지 비계와 껍데기를 찌꺼기 취급했던 지난날들을 반성하게 된다. 껍질은 과자처럼 노릇노릇 바삭하고, 비계는 크림처럼 뭉글하고 부드러우며, 고기는 촉촉하고 쫄깃하다. 맛의 다층적 구조에서 각별한 위상을 차지하는 것은 비계. 롤케이크와 헷갈릴지도 모른다고 말하면 과장이겠지만, 가히 비계의 재발견이라 할 만한 부드럽고 색다른 풍미가 우러난다. 시나몬과 팔각, 정향이 빚어내는 달콤쌉싸름한 맛과의 조화도 일품이다.

포르체타의 부드러운 육즙은 육식주의자라면 교리처럼 신봉해야 할 레스팅(resting) 과정에 그 비결이 있다. 레스팅이란 ‘휴식’ ‘휴지’라는 말뜻처럼 조리된 고기의 열을 식히면서 육즙이 골고루 퍼지게 하는 작업인데, 밥 지을 때 뜸 들이는 것과 비슷하다. 오븐과 같은 고온에서 조리하면 고기의 바깥에서부터 안쪽으로 열이 전달되면서 육즙이 고기의 한가운데로 몰리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바로 고기를 썰면 피가 줄줄 흐른다. 스테이크를 구운 후 바로 접시에 담아 내가면 안 되는 이유다. 통상 스테이크의 경우 3~5분, 포르체타는 20~30분 정도 고기를 레스팅하는데, 충분히 레스팅 된 고기는 육즙이 골고루 퍼져 부드럽고 고기 겉과 안의 온도가 비슷해 먹기 좋다. 바삭한 돼지 껍데기와 물컹한 비계, 촉촉한 살코기가 돼지고기의 삼위일체를 이루는 포르체타는 육식주의자라면 반드시 먹어봐야 할 세상 가장 ‘육덕진’ 요리 중 하나다.

 

 

슈바인스학세, 꼴레뇨, 슈테첼

진정한 한국형 육식주의자는 족발과 닭발을 거부하지 않는다. 동물을 먹기로 했다면 어떤 부위도 남김없이 먹겠다는 자세가 육식주의자의 것으로 온당하다. 발가락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부담스러운가? 그렇다면 독일과 체코, 오스트리아 지역에 공통적인 돼지 족발에 도전해보자. 한국식 족발과 달리 발목 아래 부위는 먹지 않는 대신 푸짐하기는 어지간한 닭 한 마리를 방불케 하는 유럽식 족발이다. 독일에서는 슈바인스학세, 체코에서는 꼴레뇨, 오스트리아에서는 슈테첼이라고 부른다.

한국식 족발이 돼지의 앞·뒷다리를 모두 사용하는 것과 달리 유럽식 족발 요리는 돼지의 앞다리만 사용한다. 돼지는 뒷다리가 다소 퍽퍽한 데 반해 앞다리는 기름기가 많아 부드럽고 그런 만큼 비싸다. 한국의 적잖은 족발집에서 앞다리 족발을 뒷다리 족발보다 비싸게 파는 이유다.

유럽식 족발은 만드는 법이 매우 간단하다. 흑맥주와 각종 허브에 재워 통째로 구운 뒤 홀스래디시 같은 겨자류 소스, 채소볶음, 으깬 감자, 피클, 빵 등과 함께 먹는다. 그야말로 고기가 밥이다. 결대로 죽죽 찢어지는 살코기와 약간의 비계가 부드러움을 더하고, 껍데기는 바삭바삭하다. 어느 나라에서 먹든 반드시 곁들여야 하는 것은 독일식 양배추 절임 자우어크라우트. 술은 역시 맥주와 최고의 궁합을 이룬다. 슈바인스학세, 자우어크라우트, 맥주는 독일의 삼합이다.

푸짐한 비주얼이 흡사 ‘고·기’라는 두 글자를 돋을새김 한 듯한 이 음식은 덩어리째 놓고 다 함께 칼로 잘라 먹는 섭취 방식에서도 원시적 형태의 육식충동을 자극한다. 고기를 밥처럼 먹어도 떳떳하고 당당하다. 현지에 가면 4인 가족도 충분히 먹을 만한 저 어마어마한 고깃덩어리가 1인분이라고 주장하는 식당 점원과 논쟁을 벌일 각오를 해야 할 정도.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다.

 

 

꿀떡꿀떡 고기를 한입에… 샤슬릭 또는 양꼬치

비계와 껍데기에 위장을 내주기보다 최대한의 살코기를 몸 안에 들이는 데 주력하고픈 육식주의자도 있다. 고기를 자르는 데 드는 시간도 아깝다. 그렇다면 해답은 꼬치구이. 곶감 빼먹듯 하나하나 입 안에 넣다 보면 뱃속 가득 고기가 꽉 찬 포만감이 우리를 충일케 한다.

러시아 전통요리 샤슬릭은 러시아어로 꼬치구이를 의미하는데, 주로 쇠고기, 양고기 같은 육류부터 해산물, 야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재료를 꼬치에 꽂아 숯불에 구워먹는 음식이다. 한입 크기로 잘라져 별도의 노력 없이 빼먹기만 하면 되는, 게으른 육식주의자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데 그만인 요리. 터키의 케밥부터 중국식 양꼬치 구이... 살코기, 불맛, 한입 크기라는 꼬치구이의 3대 요소는 미취학 연령의 어린 육식주의자도 기꺼이 매혹할 만하다. 앙상하게 쌓여가는 빈 꼬치가 많아질수록 살찌는 몸과 영혼. 추운 겨울, 고기는 진리다.

 

(출처 : 다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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