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도덕경 감산주 제37장, "도는 언제 어디서나 그러한데,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없는데, 그러므로 일삼지 못하는 바가 없다" 본문
도덕경 감산주 제37장, "도는 언제 어디서나 그러한데,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없는데, 그러므로 일삼지 못하는 바가 없다"
독립출판 무간 2019. 8. 2. 14:4637장
道常, 無爲, 而無不爲. 侯王若能守,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無名之樸, 亦將不欲. 不欲以靜, 天下將自正.
도道는 언제 어디서나 그러한데,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없는데, 그러므로 일삼지 못하는 바가 없다. (그러므로) 제후와 임금이 만약 (도道를) 지킨다면, 백성이 바야흐로 저절로 (제후와 임금이 일삼는 바와 더불어) 어우러지게 되고 아우러지게 된다. (그런데 그 이치가 시대가 바뀌고 풍속이 달라져서 그 끝점에 이르게 되면, 도道에 대한 백성의 믿음이 사그라들게 되고, 따라서 백성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고, 백성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생겨나게 되는데, 나는 바야흐로 (일부러 일삼아 지어 붙일) 이름이 없는 통나무로써, 그것들을 억누를 것이다. (그러나 모름지기 일부러 일삼아 지어 붙일) 이름이 없는 통나무, (그것으로써 그것들을 억누를지라도) 또한 바야흐로 (백성의 저절로 그러하게 일삼고자 하는 마음이나, 저절로 그러하게 일삼고자 하는 바를) 일부러 일삼아 붙잡고자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제후와 임금은 그것을 그렇게) 일부러 일삼고자 않음으로써 (그 마음을) 고요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므로) 천하가 바야흐로 저절로 바르게 되는 것이다.
此敎人君乘流救弊之意也.
이 장은 (비유컨대) “제후와 임금”으로서 (“道常, 無爲, 而無不爲”의 이치가 세상에서 옅어졌을 때, 그) 흐름에 올라타 (“백성”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마음’의 고삐를 당기)고, (그러한 이치가 세상에서) 낡아졌을 때 (“백성”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근원인 ‘도道에 대한 믿음’을) 다시 돌이키는 (다스림의) 내용과 방법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以其道常無爲而無不爲, 故侯王但能守之者, 而萬物不期化而自化矣. 此言守道之效, 神速如此.
(“제후와 임금”으로서) 그 “도道”로써 “언제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없게 되면, 따라서 일삼지 못하는 바가 없게 되는데”, 다시 말하면, “제후와 임금으로서” 모름지기 “(도道)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 되면, 따라서 “백성”이 (그) 시기를 정하지 않은 채, (“제후와 임금”이 “일삼는 바”와 더불어 스스로) “어우러지게 되고 아우러지게 되는데”, 다시 말하면, (“백성”이 “언제나” “제후와 임금”이 “일삼는 바”와 더불어) “저절로 어우러지게 되고 아우러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 바 (“임금”으로서 그) “도道”를 “지킴”의 효능인데, (그것이) 신령스럽고 빠르기가 이와 같다.
然理極則弊生. 且而物之始化也皆無欲. 化久而信衰情鑿, 其流必至於欲心復作. 當其欲作, 是在人君善救其弊者, 必將鎭之以無名之樸, 而後物欲之源可塞也. 若施之以有名, 則不濟耳.
그런데 (“道常, 無爲, 而無不爲”의) 이치가 (시대가 바뀌고 풍속이 달라져서 그) 끝점에 이르게 되면(極; 流), (그) ‘낡아짐’이 생겨나게 된다. 또한, 따라서 “백성”이 어떠한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도 없던 때로부터 (그 ‘낡아짐’과 더불어) “어우러지고 아우러지기” 시작하게 된다. (또한, 따라서 “백성”이 그 ‘낡아짐’과 더불어) “어우러지고 아우러짐”이 오래 가게 되고, (또한) 따라서 (“도道”에 대한 “백성”의) 믿음이 사그라들게 되며, (또한) 따라서 “백성”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데, (다시 말하면) 그 ‘흐름’이 반드시 (“백성”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마음’이 다시 “일어나게 되는” 데 이르게 된다. 따라서 그 (“백성”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 때가 “제후와 임금”으로서 그 ‘낡아짐’을 잘 다시 돌이킬 때가 되고, (따라서) 반드시 “바야흐로 (일부러 일삼아 지어 붙일) 이름이 없는 통나무로써, (‘백성’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 그것을 억눌러야 하고”, 그런 다음, “백성”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일삼아지게 되는 근원(源; 信衰)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일부러 일삼아 지어 붙인) 이름을 가지는 바(有名; 執)로써, (“백성”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 그것을 억누른다면, (“도道”에 대한 “백성”의 믿음을) 다시 돌이키지 못하게 될 따름이다.
然無名之樸, 雖能窒欲, 若執此而不化, 又將爲動源矣. 譬夫以藥治病, 病去而藥不忘, 則執藥成病. 故云: “無名之樸, 亦將不欲.” 此亦不欲, 則可專以靜而制群動, 無敢作者. 故云: “天下將自正.”
다시 말하면, (일부러 일삼아 지어 붙일) “이름이 없는 통나무”, (“제후와 임금”으로서) 모름지기 (그것으로써 “백성”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를 억누를 수 있겠지만, (그러나 모름지기) 만약 (“제후와 임금”으로서 “이름이 없는 통나무”) 그것을 (일부러 일삼아) 붙잡게 되면, 따라서 (“백성”이 그 “제후와 임금”의 일삼는 바와 더불어) 어우러지거나 아우러지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그 “제후와 임금”이 “일삼지 못하는 바가 없지” 못하게 되며) 또한 “바야흐로” (“백성”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일삼아지게 되고”, (그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의) 근원(이 되는 “백성”의 “도道”에 대한 ‘믿음의 사그라짐’)이 “일삼아지게 되는” 것이다. 비유컨대, 모름지기, 약藥으로써 병病을 다스림에 있어서, (그) 병이 물러가게 되면, (그) 약이 잊히게 되는데, (그러나 그) 약(藥; 效)을 (일부러 일삼아) 붙잡게 되면, (오히려 다른) 병(病; 欲)을 얻게 된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은 것이다. “無名之樸, 亦將不欲.” (그런데) 이 말은 (이른 바 “無名之樸” 그것을) “또한 일부러 일삼고자 하지 않게 되면”, (“백성”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마음’을) 온전히 고요하게 할 수 있게 되고, 따라서 (“백성”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들을 억누를 수 있게 되며, (“백성”으로 하여금) 감히 (그것들을) 일삼는 바가 없게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은 것이다. “天下將自正.”
自正者, 謂不待正而自正矣. 鎭, 猶壓也. 如石壓草, 非不生也. 蓋以無名之樸, 鎭壓之而已. 若欲樸之心, 亦是欲機未絶.
“自正”은 이른 바 (누구에 의해서) “바르게 됨”을 의지하지 않은 채, “스스로 바르게 된다”는 뜻이다. “鎭”은 억누른다는 말과 같다. 돌이 풀을 (억누른다고 할 때의) 억누른다는 뜻과 같은데, (따라서 아예) 자라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모름지기, (“제후와 임금”은 일부러 일삼아 지어 붙일) “이름이 없는 통나무”로써, (“백성”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마음’이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 그것을 (“백성”이 “스스로”) “억누르게 하고”, 억누르게 해야 할 따름이다. (따라서) 만약, (“백성”의 저절로 그러하게 일삼고자 하는) “소박하고 투박한” 마음(心; 性·命), (그것을 “제후와 임금”이) 일부러 일삼(아 “억누르게 하고” 억누르게 하)고자 한다면, 또한 그것은 (모름지기 무엇을)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틀(機; 다스림의 내용이나 방법)이 아직 (온전하게) 끊어내어진 것이 아니다.
是須以靜制之, 其機自息. 機息則心定, 而天下自正矣. 故雖無名之樸, 可用而不可執, 況有名乎.
(따라서 그 “제후와 임금”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마음) 그것은 모름지기 (“제후와 임금”이 “스스로”) “고요하게 함”으로써, (그 “제후와 임금”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 그것을 억눌러야 하는데, (따라서) 그 틀이 “저절로” 멈춰지게 된다. (그 “제후와 임금”의) ‘틀’이 멈춰지게 되면, (그 “백성”의) 마음이 (“저절로”) 고요하게 되는데, 따라서 “천하가 저절로 바르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름지기 (일부러 일삼아 지어 붙일) “이름이 없는 통나무”, (그것은 “백성”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마음’이 다시 일삼아지게 되거나, “백성”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다시 일삼아지게 될 때, 그것을 “억누르기” 위해서) 일삼아질 수 있는 바인데, 그러나 (그것으로써 그것을 “억누를” 때조차, 모름지기 “백성”의 저절로 그러하게 일삼고자 하는 마음性이나, 저절로 그러하게 일삼고자 하는 바命) 그것을 (일부러 일삼아) 붙잡아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일부러 일삼아 지어 붙인) 이름을 가지는 바(로써 그것을 억누름)에야!
老子道德經解 上篇終.
『노자』 도덕경 풀이 상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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