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도덕경 감산주 17장 본문
17장
太上下, 知有之; 其次親之, 譽之; 其次畏之; 其次, 侮之. 故信不足焉, 有不信. 猶兮! 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曰我自然.
(일부러 일삼고자 함이 없이 텅 빈 채, 저절로 그러한 바를 말미암는 도道와 서로 어울리고 아우름으로써, 더불어 하나가 되었던) 아주 먼 옛날이 지나자, (사람들이 일부러 일삼은 지知와 식識을 가지게 되었는데, 따라서 사람들은 도道) 그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다음 시대가 되자, (사람들이 일부러 일삼은 지知와 식識을 말미암아 도道와 사람을 분별하게 되었는데, 따라서 성인은 비로소 ‘아주 먼 옛날’과 같이 도道) 그것과 친해짐에 뜻을 두게 했으며, (그 다음 시대가 되자, 사람들이 도道에서 벗어나 어긋나기 시작했는데, 따라서 성인은 일부러 일삼아 옳다고 하거나 그르다고 하거나 비난하거나 칭찬하는 바가 ‘없음’) 그것을 받들게 하였고, 그 다음 시대가 되자, (사람들이 도道에서 벗어나 더욱 어긋나게 되었는데, 따라서 성인은 ‘아주 먼 옛날’과 같이 도道와 친해지기가 어려워짐) 그것을 두려워하게 했으며, 그 다음 시대가 되자, (사람들이 도道에서 벗어나 완전히 어긋나게 되었는데, 따라서 사람들은 도道) 그것을 업신여기게 되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러한 도道에 대한 그 위에 자리하는 사람의) 믿음이 부족하고, (더불어 하나인 도道에 대한 그 아래에 자리하는 백성들의) 불신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신중하구나! 그 (위에 자리하는 사람이) 그 말을 귀하게 여기는 모습이. (그러므로) 공功이 이루어지고, 일이 풀리지만, 백성들은 모두 “내가 스스로 그렇게 했다自然”라고 말한다.
此言上古無知無識, 故不言而信.
이 장은 일컫는다. “‘아주 먼 옛날上古’에는 (불교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들이 일부러 일삼은) 지(知; 앎)도 없었고, 식(識; 상想)도 없었는데, 따라서 (도道에 대해서 일부러 일삼아) 말하지(言; 분별) 않았지만, (저절로 그러하게) 믿었다(信; 실천).”
其次有知有識, 故欺僞日生. 老子因見世道日衰, 想復太古之治也.
그 “아주 먼 옛날”이 지나자其次, (사람들은 일부러 일삼은) 지知를 가지게 되었고, (일부러 일삼은) 식識을 가지게 되었는데, 따라서 (그것들을 말미암은 일부러 일삼은) 속임수欺와 거짓됨僞이 날로 생겨나게 되었다. 『노자』는 따라서 (당시의) 세상의 도道가 날로 망가뜨려지고 어그러뜨려지는衰 것을 지켜보면서見, (그) “아주 먼 옛날太古”의 (일부러 일삼고자 함이 없이 텅 빈 채, 저절로 그러한 도道를 말미암았던) 다스림(의 모습)을 떠올리고想 돌이켰던復 것이다.
太上下知有之者, 謂上古洪荒之世, 其民渾然無僞, 與道爲一, 全不知有.
“太上下, 知有之”는 이른 바 (그) “아주 먼 옛날上古”은 (통나무처럼) 투박하고洪 소박했던荒 시대世로서, 그 사람들民이 (그러한 도道와 서로) 어울리고 아우른渾然 채, (일부러 일삼은) 거짓됨僞이 없었고, (그러한) 도道와 더불어 하나가 되었으며, (따라서 도道의) 있음(有; 존재성)을 본래全 알아차리지知 못했다는 뜻이다.
旣而混沌日鑿, 如道爲二, 故知有之. 是時雖知有, 猶未離道, 故知而不親.
(그런데 그 “아주 먼 옛날”이 지나자) 비로소旣 (일부러 일삼은 ‘지知’와 ‘식識’이 생겨나고, 그것들이 서로 섞이게 됨으로써, 그 마음이) 탁해지고混, (그것들이 엉키게 됨으로써, 그 마음이) 어두워짐沌이 날로 뚜렷해지게鑿 되었는데, (따라서 “아주 먼 옛날”에 서로 어울리고 아우른 채, 더불어 하나가 되었던 사람과) 도道가 (사람과 도道) 두 가지로 나누어지게 되었는데, 다시 말하면, “(도道) 그것이 있음(有; 존재성)을 (일부러 일삼아) 알아차리게知 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 시대는 모름지기雖 (도道의) 있음有을 (일부러 일삼아) 알아차린知 시대인데, 따라서猶 (성인은 사람들이) 도道에서 (벗어나거나) 어긋나지(離; 欺·僞) 않게未 했는데, 왜냐하면, (도道의 있음有을) 알아차린 시대라는 (그 “아주 먼 옛날”과 같이 도道와 사람이 서로) “친하지” 못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其世再下, 民去道漸疏, 始有親之之意. 是時雖知道之可親, 但親於道, 而人欲未流, 尙無是非毀譽之事.
그 다음 시대가 되자, 사람들이 도道에서 벗어나去, 점점漸 어긋나게 되었는데疏, (따라서 성인은) 비로소始 (그 “아주 먼 옛날”과 같이 도道) “그것과 친해짐”에 대한 뜻(意; 欲)을 가지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 시대는 모름지기雖 (사람들이) 도道가 (그 “아주 먼 옛날”과 같이) 친해질 수 있는 바임을 알아차리고 있는 시대이자, 단지 도道에 대해서 친해지고자 한다면, (그 “아주 먼 옛날‘과 같이) 친해질 수 있는 시대인데, (따라서 성인은) 사람들의 일삼고자 함이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방향으로) 치우치지流 않게未 하고, (따라서 사람들이 일부러 일삼아) 옳다고 하거나是 그르다고 하며非, (일부러 일삼아) 비난하거나毀 “칭찬하는譽” 바事가 ‘없음無’을 받들게尙 하는 것이다.
其世再下, 而人欲橫流, 盜賊之行日生. 故有傑蹠之非毁, 堯舜之是譽. 是時雖譽, 猶且自信而不畏.
그 다음 시대가 되자, 사람들의 일삼고자 함欲이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방향을) 쫓아서橫 치우치게流 되었는데, (따라서 일부러 일삼아) 빼앗거나盜 훔치는賊 일들이 날로 생겨나게 되었다. 따라서, (폭정暴政을 일삼았던 하夏나라) 걸傑임금과 (악행惡行을 일삼았던 춘추전국시대) 도척盜蹠은 ‘그른非’ 경우로서 ‘비난毁’되고, (“아주 먼 옛날”의)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은 ‘옳은是’ 경우로서 “칭찬되는 일들譽”이 (날로) 생겨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 시대는 모름지기雖 (사람들이 일부러 일삼아 옳다고 하거나 그르다고 하며, 따라서 일부러 일삼아 비난하거나) “칭찬譽”하는 (바가 ‘있음有’을 받드는) 시대인데, 따라서猶 (성인은) 또한 (일부러 일삼고자 함이 없이 텅 빈 채, 저절로 그러한 바를 말미암는 도道를) 스스로自 믿고, (일부러 일삼은 是·非·毁·譽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其世再下, 而人欲固蔽, 去道益遠, 而人皆畏道之難親. 故孔子十五而志於學, 至七十而方從心. 卽顔子好學, 不過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 可見爲道難, 而人多畏難而苟安也. 是時雖畏, 猶知道之不敢輕侮.
그 다음 시대가 되자, 사람들의 일삼고자 함欲이 (비유하면 알맹이가) 단단해지고固, (껍데기가) 두꺼워졌으며蔽, 도道에서 벗어나去 더욱 어긋나게 되었는데遠, 따라서 사람들은 모두 (그 “아주 먼 옛날”과 같이) 도道와 “친해지기”가 (더욱) 어려워짐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비유하면) 공자孔子는 열 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지만, 칠십에 이르러서야 바야흐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하더라도 (도道에) 어긋남이 없게 되었(는데, 그와 같이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비유하면) 안자(顔子; 안연顏淵)가 배우기를 좋아해서, 석 달이 지나지 않아, ‘인仁’을 거스르지 않게 되었고, 그 밖의 제자들도 (배우기를 좋아해서) 며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그러함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와 같이 배우기를 좋아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도道에서 벗어나 더욱 어긋나게 되면, 그 “아주 먼 옛날”과 같이) 도道와 “친해지기”가 (더욱) 어려워짐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사람들은 모두 (그) 어려워짐을 “두려워하게 되었는데”, 그러나 (성인은) 진실로苟 편안해安 했(는데, 도道는 본래 사람들 모두에게 갖추어져 있는 바이자, 자리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 시대는 모름지기雖 (사람들이 도道에서 벗어나 더욱 어긋남으로써, 그 “아주 먼 옛날”과 같이 도道와 “친해지기”가 더욱 어려워졌음을) “두려워하는” 시대인데, 따라서猶 (성인은) 도道가 본래 갖추어져 있는 바이자, 자리하는 바임을 알아차림으로써, 감히 가볍게 여기거나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其世再下, 則人皆畔道而行. 但以功名利祿爲重, 全然不信有此道矣.
그 다음 시대가 되자, 사람들은 모두 도道에서 (벗어나 완전히) 어긋난 채畔, 일부러 일삼게 되었다行. (따라서 사람들은 모두) 오직 (일부러 일삼은) 공功·이름名·이로움利·봉록祿으로써 (일삼음의) 기준으로 삼게 되었는데, (다시 말하면, 도道에서 벗어나) 완전히全 어긋난 채然, 그 도道를 “불신하게” 된 것이다.
老子言及至此, 乃歎之曰: “此無他, 蓋由在上者自信此道不足, 故在下者不信之耳.” 然民旣已不信矣, 而在上者, 就當身體力行無爲之道, 以啟民信. 淸淨自正, 杜民盜賊之心, 可也.
『노자』는 이야기言가 여기에 미치고 이르자, 이내 그것을 탄식하며 일컬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무릇 (그) 위에 자리하는 사람이 그 도道에 대해서 스스로 믿는 정도가 부족함을 말미암는데, 따라서 (그) 아래에 자리하는 사람이 그것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일 따름이다.” 따라서 (그 아래에 자리하는) 백성들民이 (그것을) “불신하게” 되는 것일 따름인데, 따라서 (그) 위에 자리하는 사람은 마땅히 일부러 일삼고자 함이 없이 텅 빈 채, 저절로 그러한 바를 말미암는無爲 도道를 (그 마음과) 몸으로身體 힘써力 일삼음行으로써 (그 아래에 자리하는) 백성들의 (도道에 대한) 믿음(의 문)을 열啟 수 있는 것이다. (그 위에 자리하는 사람은 마땅히 마음을) 맑고 맑게 (가라앉혀서 고요하게 하고) 스스로 바르게 함으로써, (그 아래에 자리하는) 백성들의 (일부러 일삼아) 빼앗거나 훔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문)을 닫아야 하는데杜, (그래야 그 아래에 자리하는 백성들의 도道에 대한 믿음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이다.
此上乃曆言世道愈流愈下. 此下乃想復太古無爲之治. 曰: “斯皆有爲之害也.”
(“故信不足焉, 有不信”) 이것此의 위쪽上에 쓰여진 문장들曆은 (그 시대가) 아래로 내려오면下 올수록 (그) 세상의 도道가 더욱 더 (일부러 일삼는 방향으로) 치우치게 되었다流는 이야기들이다言. 그것此의 아래쪽下(에 쓰여진 문장들)은 (그) “아주 먼 옛날太古”의 일부러 일삼고자 함이 없이 텅 빈 채, 저절로 그러한 바를 말미암았던無爲 다스림을 떠올리고想 돌이키는復 이야기들이다. (따라서) 이른 바, (그것의 위쪽에서 이야기한 “知有之”, “親之”, “譽之”, “畏之”, “侮之”) “그것들은 모두 일부러 일삼고자 함(有爲이 있는 다스림)의 해로움이라는 것이다.”
安得太古無爲之治, 不言而信, 無爲而成. 使其百姓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人人功成事遂, 而皆曰: “我自然耶.”
(그렇다면) 어떻게安 (그) “아주 먼 옛날太古”의 무위無爲의 다스림을 실현得할 수 있는가? (어떻게 그 위에 자리하는 사람으로서 일부러 일삼아) 말하지 않지만, (그 아래에 자리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저절로 그러하게) 믿게 할 수 있는가? (어떻게 그 위에 자리하는 사람으로서) 무위無爲하지만, (그 아래에 자리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저절로 그러하게) 이루어지게 할 수 있는가? 그 (아래에 자리하는) 백성들百姓로 하여금, 해가 뜨면 일어나 일삼게 하고作, 해가 지면 들어가 쉬게 하며, 우물을 파서 목마르지 않게 마시게 하고, 밭을 갈아서 배고프지 않게 먹게 하라. (따라서 그 아래에 자리하는) 백성들人人은 “공功이 이루어지고, 일이 풀리지만”, 모두 “내가 스스로 그렇게 했다”라고 일컫는 것이다.
蓋老氏之學, 以內聖外王爲主. 故其言多責爲君人者, 不能淸靜自正, 啟民盜賊之心. 苟能體而行之, 眞可復太古之治.
무릇, 『노자老氏』의 가르침은 (그 아래에 자리하게 되면) 안으로 성인으로서의 면모를 기르고聖, (그 위에 자리하게 되면) 밖으로 임금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王 것을 중심으로 삼는다. 따라서 (『노자』는) 그 임금된 사람을 질책하는 말들을 많이 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임금된 사람이 그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해서 스스로 바르게 하지 못하면, (그 아래에 자리하는) 백성들民의 (일부러 일삼아) 빼앗거나 훔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문)을 열게 된다啟. (따라서 임금된 사람이) 진실로苟 (그 마음과) 몸을 다해 (힘써) 그것을 일삼으면行, 진실로眞 (그) ‘아주 먼 옛날太古’의 (무위無爲했던) 다스림을 돌이킬復 수 있게 된다.”
'감산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덕경 감산주 19장 (0) | 2018.12.22 |
---|---|
도덕경 감산주 18장 (0) | 2018.12.17 |
도덕경 감산주 16장 (0) | 2018.12.09 |
초벌번역 : 도덕경 감산주 15장 (일부) (0) | 2018.12.07 |
도덕경 감산주 14장 (0) | 2018.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