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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종지發明宗旨」: 도덕경 감산주, "종지를 뽑아서 밝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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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종지發明宗旨」: 도덕경 감산주, "종지를 뽑아서 밝히다"

독립출판 무간 2018. 10. 16. 11:09



발명종지發明宗旨

 

 

老氏所宗, 以虛無自然爲妙道. 此卽楞嚴所謂 分別都無, 非色非空, 拘舍離等, 昧爲冥諦者, 是已.”

노자종지로 삼는 바는 (일부러 일삼고자 함) 텅 빈, (일부러 일삼음) 없는, 저절로 그러한自然, 따라서 오묘한 이치이다. (그런데 노자가 종지로 삼는 바인 ··自然) 그것은 바로 능엄경楞嚴經이 일컫는 바, “(일부러 일삼은) 분별分別이 전혀 없는, 도 아니고 공도 아닌, 구사리拘舍離 무리가 잘못 여긴, 어둑한, (따라서) 미묘한진리, 그것일 따름이다.”

 

 

此正所云: “八識空昧之體也.” 以其此識, 最極幽深, 微妙難測, 非佛不足以盡之. 轉此則爲大圓鏡智矣. 菩薩知此, 以止觀而破之, 尙有分證.

능엄경은 또한 일컬었다. “여덟 번째 식八識은 공하고 어둑함 본질으로 삼는다.” 그 식은 가장 멀고깊은곳에서, 미묘하고 오묘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본질)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데, (따라서 대승大乘의 보살菩薩과 같은) 깨달은 사람이 아니면 (본질을 알아차리지 못함으로써 일삼게 된 아·중생衆生··수자상壽子相) 그것을 허물거나 깨뜨리기 힘들다. (만약, ‘본질’) 그것을 허문다면 (천지와 같이) 크게 (트여서 만물과 서로) 어울리고 아우르는 지혜로움을 얻게 될 것이다. (따라서) 보살菩薩(‘본질’) 그것을 알아차리고, 멈춤살핌으로써 (‘’) 그것을 깨뜨린다면, 번뇌의 일부를 끊어 없애는 수준의 깨달음分證에 이르게 될 것이다.



至若聲聞不知, 則取之爲涅槃. 西域外道梵志不知, 則執之爲冥諦. 此則以爲虛無自然妙道也.

(그런데 소승小乘) 성문聲聞과 같이, (‘본질’)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번뇌의 일부를 끊어 없앤 수준의 깨달음) 그것에 이르게 되면, 열반(涅槃; 번뇌의 전부를 끊어 없앤 수준의 깨달음)에 다다른 것으로 (잘못) 여기게 된다. (따라서) 서역西域의 외도外道나 범지梵志(‘본질’)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 그것을 집착하여 (번뇌의 일부만 끊어 없앤 수준의 깨달음, 그것을 능엄경이 일컬은 번뇌의 전부를 끊어 없앤 수준의 깨달음인) 미묘한 진리冥諦(잘못) 여겼던 것이다. 그것을 바로 (노자가 종지로 삼은) (일부러 일삼고자 함이) 텅 빈, (일부러 일삼음이) 없는, 저절로 그러한 오묘한 이치(잘못) 여겼던 것이다.

 

 

故經曰: “諸修行人, 不能得成無上菩提. 乃至別成聲聞緣覺, 諸天外道魔王, 乃魔眷屬, 皆由不知二種根本. 錫亂修習, 猶如煮沙欲成佳饌, 縱經塵劫終不能得.”

따라서 능엄경은 일컬었다. “(때문에) 수행修行하는 많은 사람들이 (·중생衆生··수자상壽子相을 허물거나 깨뜨린 수준 또는 번뇌의 전부를 끊어 없앤 수준인) 위 없는無上 지혜로움 혹은 깨달음菩提을 얻거나 이루지 못한다. (소승인) 성문聲聞과 연각緣覺, 여러 하늘의 외도外道와 마왕魔王, 그리고 그들이 돌보거나 그들을 섬기는 무리들이 (·중생衆生··수자상壽子相을 집착하는 수준의 지혜로움에) 멈추거나 (번뇌의 일부만 끊어 없앤 수준의 깨달음에) 머물게 되는 것은 모두 (위없는 지혜로움 또는 깨달음을 얻거나 이루는) 두 가지 근원··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들로부터) 엇나가뒤엉킨수행修習은 마치 모래를 삶아서 맛있는 반찬을 만들고, 마른 길을 내버리고흙탕 길을 찾아 걷는일과 같아서, 끝끝내 (위 없는 지혜로움 혹은 깨달음을 이루거나) 얻을 수 없다.”

 

 

云何二種, 一者無始生死根本, 則汝今者與諸衆生, 用攀緣心爲自性者. 二者無始涅槃元淸淨體, 則汝今者識精元明, 能生諸緣, 緣所遺者.”

두 가지 근원이 무엇인지 말하면, 하나는 삶과 죽음, 생겨남과 죽어서 돌아감의 근원·이 본래(따로) 있지 않다는 것인데, 비유하면 지금이라는 것(; 분별)은 여러 중생(衆生; 만물)을 만나면서(여덟 번째 식八識이 본래 공하고 어둑한 것임을 알아차리거나 멈추고 살피지 못함으로써) 마음에 얽힘과 설킴일삼아진(; 현상) 결과(; )이자, (그러한 마음이) 본성自性으로 일삼아진(; 현상) 결과이다. 다른 하나는 열반涅槃(의 본질)과 청정淸淨본질이 본래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인데, 비유하면 지금이라는 것은 (여러 중생을 만나면서 여덟 번째 식八識이 본래 공하고 어둑한 것임을 알아차리거나 멈추고 살피지 못함으로써) 실상(實像; things)에 벗어나거나 실정(實情; event)에 어긋나는 바가 전혀 없이, (그것들에) 일치하던 (여덟 번째) 에 여러 얽힘과 설킴이 생겨난결과이자, (여러) 얽힘과 설킴이 남겨진결과이다.”

 

 

此言識精元明, 卽老子之妙道也. 故曰: “杳杳冥冥, 其中有精, 其精甚眞.”

(여덟 번째) 실상에 벗어나는 바가 전혀 없고 실정에 어긋나는 바가 전혀 없이 (그것들에) 일치한다라는 이 말은 (노자가 종지로 삼는) “오묘한 이치(와 같이, “일부러 일삼고자 함이 텅 비고, 일부러 일삼음이 없이, 저절로 그러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은 것이다. “깊고멀다어둑하고어둑하다, 그 가운데 실상과 실정이 있다, 그 실상과 실정은 아주 참되다(21).

 

 

由其此體至虛至大, 故非色. 以能生諸緣, 故非空.

다시 말하면, (여덟 번째 식) 본질(본래 노자가 종지로 삼는 오묘한 이치와 같이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없이) 지극히 텅 비어 있고,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이, 천지와 같이) 지극히 크(게 트여서 만물과 서로 어울리고 아우른). 따라서 색이 아니다. (그러나 그 여덟 번째 식본질은 여러 중생을 만나면서, 본래의 공함과 어둑함이 알아차려지거나 멈추어지고 살펴지지 못함으로써) 여러 얽힘과 설킴을 낳게 되는데, 따라서 공이 아니다.

 

 

不知天地萬物皆從此識變現, 乃謂之自然. 由不思議熏, 不思議變, 故謂之妙. 至精不雜, 故謂之眞. 天地壞而此體不壞, 人身滅而此性常存, 故謂之常. 萬物變化, 皆出於此, 謂之天地之根, 衆妙之門.

(때문에) 천지만물은 모두 (그것을) 말미암지만, (여덟 번째) 움직임일삼음을 알아차릴 수 없는데, 따라서 (노자) 그것을 일컬어 저절로 그러하다(自然; 25)”라고 했던 것이다. 때문에, (그 여덟 번째 식) 일삼음미루어 짐작하거나思議 움직임살펴서 헤아릴思議 수 없는데, 따라서 (노자) 그것을 일컬어 오묘하다(; 1)”라고 했던 것이다. (때문에, 그 여덟 번째 식) 아주 실상적이고 실정적이어서 어떠한 벗어남이나 어긋남도 없는데, 따라서 (노자) 그것을 일컬어 참되다(: 21)”라고 했던 것이다. (때문에, 그 여덟 번째 식을 말미암는) 천지는 사라져도 본질은 사라지지 않고, 사람의 몸사라져도 본성언제나 함께 있(고 어디서나 함께 하)는데, 따라서 (노자) 그것을 일컬어 늘 그러하다(: 1)”라고 했던 것이다. (때문에) 만물의 움직임일삼음이 모두 그 (여덟 가지 식) 그것에서 나오는데, (따라서 노자) 그것을 일컬어 천지의 근원, 모든 오묘함의 문(1)”이라고 했던 것이다.

 

 

凡遇·書中所稱眞常玄妙, 虛無大道等語. 皆以此印證之, 則自有歸趣. 不然, 則茫若捕風捉影矣. 故先示於此. 臨文不煩重出.

무릇, (이 글에서) “···”, “···등으로 쓰여진 글자를 보거나 읽었을 것이다. 모두, 전자를 밝힘으로써 후자가 드러나고, 따라서 (전자와 후자가) 저절로 되돌아가 (서로) 모여들게 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이후의 본문을 보거나 읽을 때, 정처 없는) 바람을 붙잡거나 (주인 없는) 그림자를 붙잡는 것처럼 막연해질 것이다. 따라서 앞서 이 곳에 적었다. (따라서 이후의) 본문을 보거나 읽을 때, (전자나 후자가) 다시 나오더라도 막막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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