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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덕경서注道德經序 : 감산의 도덕경 주석서 서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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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덕경서注道德經序 : 감산의 도덕경 주석서 서문

독립출판 무간 2018. 10. 11. 12:37



주도덕경서注道德經序

 

 

予少喜讀老莊, 苦不解義. 惟所領會處, 想見其精神命脈, 故略得離言之旨.

젊어서 나는 노자老子장자莊子를 즐겨 읽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했다. (이제야 나는 그 말이) 이끌고 모이며 머무는 바()생각이 미치게되었으며, 정밀하고 오묘한 논지맥락미루어 헤아리게 되었는데, 말하자면, 한마디로, (일부러 일삼은) 분별 벗어나야 한다요지를 얻은 것이다.

 

 

及搜諸家注釋則多以己意爲文, 若與之角, 則意愈晦. 及熟玩莊語, 則於老恍有得焉. 因謂注乃人人之老莊, 非老莊之老莊也.

이에, 여러 사람들의 주석을 살피건대, 각자의 견해에 따라 문장을 지은 것들이 많아서, 마치 서로 뿔을 세워 받는 모습이기 때문에, () 요지가 더욱 흐려진다. 이에, 장자생각이 미쳐서 그것을 미루어 헤아리며, 노자정밀하고 오묘한 논지와 맥락(: 21)에 대한 얻음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다시 말하면, 여러 사람들의 주석은 각자의 견해를 바탕으로 한 노자장자에 대한 이해와 풀이이지, 노자장자의 요지를 바탕으로 한 노자장자에 대한 이해와 풀이가 아닌 것이다.



以老文簡古而旨幽玄, 則莊實爲之注疏. 苟能懸解, 則思過半矣. 空山禪暇, 細玩沉思, 言有會心, 卽托之筆. 必得義遺言, 因言以見義.

노자간략하게 줄여 쓴 고문으로서 () 요지(를 얻기)가 아득하고 어렴풋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자세하게 풀어 쓴 장자와 연결지어 그것을 이해하고 풀이했다. 정말로, 장자연결지어 생각했을 , 이해가 진전되었다. 깊은 산중에 차분히 앉아서, 생각 깊어지게하고 이해넓어지게 했는데, (그렇게 해서) 마음속에 모여드는 의미가 있으면, 바로 붓을 들어 썼다. (그러나) 의미를 얻으면 반드시 을 버렸는데, 말은 의미를 헤아리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或經旬而得一言, 或經年而得一章. 始於東海, 以至南粵, 自壬辰以至丙午, 周十五年乃能卒業. 是知古人立言之不易也. 以文太簡, 故不厭貫通, 要非枝也.

어떤 때는 열흘이 지나서야 하나의 문장을 이해하고 풀이했으며, 어떤 때는 일 년이 지나서야 하나의 장을 이해하고 풀이했다. 동해東海에서 시작해서 남월南粵에 이르고, 임진壬辰(1592)에서 시작해서 병오(1606)에 이르기까지, 십오년이 지나서 이제야 마치게 되었다. 이로써, 옛 사람이 전하는 말(을 이해하고 풀이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 문투가 매우 간략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하나로) 꿰어서 (서로) 어울리게 하기를 꺼리지 않는 것이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샛길로 빠지지 않는 비결이다.

 

 

嘗謂儒宗堯舜, 以名爲敎, 故宗於仁義. 老宗軒黃, 道重無爲, 如云 : “失道德而後人義.”

일찍이, 유학자들은 요임금과 순임금이 다스렸던 시대를 (사상의) 원류로 삼아서, (그 다스림의 모습을 일부러 일삼아) 이름짓고가르쳤는데, 이른바 (일부러 일삼은) 과 의종지로 삼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노자는 황제黃帝가 다스렸던 시대를 (사상의) 원류로 삼고, (그 다스림의 모습을) 종지로 삼아, 무위(無爲 ; 일부러 일삼음이 없음)이치로 여기고 중시했는데, (따라서) 다음과 같이 일컬었다. “(저절로 그러한 바를 따르는) (를 따르는 높은 수준의) 덕스러움이 망가지자, (일부러 일삼은 낮은 수준의 덕) 과 의가 뒤따르게 되었다(38).”

 

 

此立言之本也. 故莊之誹薄, 殊非大言, 以超俗之論則駭俗, 故爲放而不牧也.

이것이 노자가 전하는 말의 요지이다. 따라서 (유학자들에 대한) 장자의 비판과 반박은 전혀 부당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들의 논리수준을 넘어선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감당할 수 없었고, 따라서 배척되고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當仲尼問禮, 則歎爲猶龍, 聖不自聖, 豈無謂哉.

공자(孔子; 仲尼)(노자에게) 에 대해 묻고 나서, (그를) “과 같았다고 탄식했는데, 노자는 스스로 성인이라 칭하지 않았지만, 어찌 (공자가 그를 성인으로) 칭한 것이 아니겠는가!



故老以無用爲大用, 苟以之經世, 則化理治平, 如指諸掌. 尤以無爲爲宗極, 性命爲眞修, 卽遠世遺榮, 殆非嬌嬌. 苟得其要, 則眞妄之途, 雲泥自別. 所謂眞以治身, 緖餘以爲天下國家, 信非誣矣.

따라서 노자일부러 일삼음이 없음으로써 큰 일삼음을 삼으라고 한 것인데, (통치자가) 진실로 그것으로써 나라를 다스린다면, (백성을 저절로 그러한 바대로) 살아가게 하고, (따라서 나라를) 이치롭게 하며, 질서 있게 하고, 평안하게 하는 일이 손바닥을 살피는 일처럼 쉬워질 것이다. 더욱이, 일부러 일삼음이 없음으로써 (다스림의) 근본근원으로 삼고, (백성으로 하여금 저절로 그러한) 본성그 명령지키게 하고 실천하게 한다면, (나라가) 오래도록 평안하고 위태롭지 않게 될 것이다. (통치자가) 진실로 이러한 비결을 알게 되면, (다스림의) 참된 길과 망령된 길, 구름 길과 진흙 길이 저절로 나뉘게 될 것이다. 이른 바, (통치자가 일부러 일삼지 않는) 참됨(; 性命)으로써 자신을 (먼저) 다스리고, 천하와 나라를 질서지운다면, (통치자 또는 그 다스림에 대한 다른 나라 혹은 그 백성의) 신뢰를 잃지 않게 되는 것이다.

 

 

或曰 : “子之禪, 貴忘言, 乃嘵嘵於世諦, 何所取大耶.” 予曰 : “不然. 鴉鳴鵲噪, 鹹自天機. 蟻聚蜂遊, 都歸神理. 是則何語非禪, 何法非道.”

어떤 이는 묻는다. “그대가 이야기하는 선(재잘되어지는 세상의) 에 대한 잊어버림을 귀하게 여기지만, 세상에서 (끊임없이) 재잘되어지는데, 어느 쪽이 큼을 취하는 바인가?” 나는 대답한다. “그렇지 않다. 까마귀가 우는 것과 까치가 우는 것은 모두 (일부러 일삼지 않는) 하늘(이치)에 따른 모습이다. 개미가 줄지어 모여드는 것과 벌이 흩어져 날아가는 것은 모두 (일부러 일삼지 않는 땅의) 신령스러운 이치(; )에 따른 모습이다. 따라서是則 (당신은 되물어야 한다) 어찌 하면 (일부러 일삼은) 소리(; )를 취하게 되고, (어찌 하면 그것을 잊어버린) 을 취하지 못하게 되는가? 어찌 하면 (일부러 일삼은) 을 취하게 되고, (어찌 하면 그것을 잊어버린) 를 취하지 못하게 되는가?”

 

 

況釋智忘懷之談, 詎非入禪初地乎. 且禪以我蔽, 故破我以達禪, 老則禪登矣. 若夫琓世蜉蝣, 尤當以此爲樂土矣.”

따라서 (일부러 일삼아) 머리로 생각한 바풀어헤침(일부러 일삼아) 마음에 품은 바잊어버림에 대한 논의가 (어찌 하여) 의 첫 단계에 들어서는 일이 되지 못하겠는가? (따라서) 또한, 으로써 (일부러 일삼는) 자신(; 我相)을 허물어야 하는데, 다시 말하면 (일부러 일삼는) 자신을 깨드림으로써 선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노자가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에 다다른 사람이다. (따라서) 무릇, 하루살이같(이 짧)은 인생을 살지만, 또한 마땅히 그렇게 하기를 즐겁게 여겨야 한다.

 

 

注成, 始刻於嶺南. 重刻於五雲南岳與金陵. 今則再刻於吳門. 以尙之者衆, 故施不厭普矣.

주석이 완성되고, 처음 영남嶺南에서 판각했다. 다시, 오운五雲, 남악南岳, 그리고 금릉金陵에서 판각했다. 지금, 다시, 오문吳門에서 판각하고 있다. (나의) 주석을 높이는 사람이 많은 탓인데, 널리 읽히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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