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왕필산책 : 도덕경 제10장 왕필주 "혼백을 싣고 하나를 품어서 멀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가?" 본문

왕필산책

왕필산책 : 도덕경 제10장 왕필주 "혼백을 싣고 하나를 품어서 멀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가?"

독립출판 무간 2018. 2. 12. 09:23


10

 

 

재영백포일載營魄抱一, 능무리호能無離乎?

전기치유專氣致柔, 능영아호能嬰兒乎?

척제현람滌除玄覽, 능무자호能無疵乎?

애민치국愛民治國, 능무위호能無爲乎?

천문개합天門開闔, 능위자호能爲雌乎?

명백사달明白四達, 능무지호能無知乎?

생지生之.

축지畜之.

생이불유生而不有. 위이불시爲而不恃. 장이부재長而不宰. 시위현덕是謂玄德.

 

혼백營魄을 싣고 하나를 품어서, 멀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가?

기운을 온전하게 하고 부드럽게 해서, 어린아이처럼 될 수 있는가?

마음을 씻고 닦아서, 티 없게 할 수 있는가?

백성을 아끼고 나라를 다스리는 데, 무위無爲할 수 있는가?

만물을 대하는 데, 암컷처럼 할 수 있는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무지無知할 수 있는가?

() 만물을 낳는다.

만물을 기른다.

(그러나) 생겨나게 하지만 소유되게 하지 않는다. 살아가게 하지만 의지하게 하지 않는다. 이루어지게 하지만 주도되게 하지 않는다. 이것을 일컬어 현덕玄德이라 한다.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는 머문다는 말과 같다. “營魄은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머물러야 하는 자리이다. “(언제 어디서나 지켜야 하는) 사람의 참된 바이다. (따라서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자리해야 하는 집(인 그 營魄”)에 머무를 수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지켜야 하는 사람의 참된 바인) “하나를 품고 () 신령스러움을 맑게 해서, (그러함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만물이 스스로 모여들게 될 것이다(, 猶處也. 營魄, 人之常居處也. , 人之眞也. , 人能處常居之宅, 抱一淸神, 能常無離乎? 則萬物自賓也).

 

해 설

노자가 설명한 하늘의 정기(精氣; ) 또는 하늘신령스러움(: 6)”을 의미하고, “의 정기 혹은 의 신령스러움을 의미하며, “이 만물을 생겨나게 하거나 살아가게 하는(, : 2)” “근원(: 4)”인 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때, 왕필이 이해한 도는 만물과 언제 어디서나(: 1)” “함께 있고, 함께 하는(綿綿, 用之 : 6)” 차원을 넘어서, 언제 어디서나 만물 속에 내재하는(또는 만물이 내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왕필이 해석한 노자의 營魄사람(만물)’언제 어디서나 머물러야 하는 자리로서, ‘사람(만물)’의 정신적(비물질적) 기운(; ) 내지 사람(만물)’의 육체적(물질적) 기운을 의미하고, “은 언제 어디서나 지켜야 하는 사람(만물)’참된 바로서, ‘사람(만물)’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自然 : 5장 왕필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專氣致柔, 能嬰兒乎?

따른다는 말이다. “끝점에 까지 다다른다는 말이다. (따라서 專氣致柔, 能嬰兒乎?”) 저절로 그러한 바自然기운에 따르고, 지극히 부드러운 어울림의 끝점에 까지 다다라, 어린아이처럼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所欲가 없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몸과 마음이 온전해지게 될 것이며, (따라서 그) 본성이 실현되게 될 것이다(, 任也. , 極也. , 任自然之氣, 致至柔之和, 能若嬰兒之無所欲乎? 則物全而性得矣).

 

해 설

왕필주 , 극야極也에서 은 정도나 수준 등의 최대치를 전제로 삼는다. 따라서 왕필주 치지유지화致至柔之和에서 최대치에 까지 다다른다는 의미가 된다.

 

 

滌除玄覽, 能無疵乎?

사물다다른 끝점이다. (따라서 滌除玄覽, 能無疵乎?”는 일부러 일삼은) 거짓됨과 꾸며냄을 씻어 없앨 수 있으며, 두루 살핌의 끝점에 다다라, 사물이 그 밝음을 가림으로써, 그 신령스러운 바에 티끌이 되지 않게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마침내 과 더불어 같아지게 될 것이다(, 物之極也. , 能滌除邪飾, 至於極覽, 能不以物介其明, 疵之其神乎? 則終與玄同也).

 

해 설

왕필주 물지극物之極에서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일부러 일삼는 바를 의미한다. 은 정도나 수준 등에 있어서 최소치를 의미한다. 그러나 왕필주 지어극람至於極覽에서 은 정도나 수준 등에 있어서 최대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왕필주 物之極至於極覽은 의미 차이가 크지 않다. “두루 살핌이 최대치에 다다르게 되면”, “그 밝음을 가리지않게 됨으로써, “그 신령스러운 바에 티끌이 되지 않게 되기때문이다. 이 때, ‘그 밝음을 가리지 않게 된다거나 그 신령스러운 바에 티끌이 되지 않게 된다는 것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왕필은 노자가 설명한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일부러 일삼는 바있음(: 1)”이 최소치에 다다른 상태 또는 모습 내지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일부러 일삼는 바없음(: 1)”이 최대치에 다다른 상태 혹은 모습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왕필이 말한 밝음신령스러운 바참된 바와 의미가 통하는데,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自然 : 5장 왕필주)를 의미한다.

  

  

愛民治國, 能無爲乎?

술책에 따른 구함이나 이룸, 술수를 부린 구함이나 숨김은 (일부러 일삼은) (이 반영된 결과)이다. 사물의 끝점에 다다르고 두루 살펴서 티끌이 없음은 (일부러 일삼은) 성스러움을 끊음과 같다. 나라를 다스림에 (일부러 일삼은) 이 없음은 (나라를 다스림에 일부러 일삼은) 을 버림과 같다. (나라를 다스림에 일부러 일삼은) 앎이 없을 수 있는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백성이 (통치자 또는 그 다스림을) 피하지 않게 될 것이며, (따라서) 나라가 () 다스려지게 될 것이다(任術以求成, 運數以求匿者, 智也. 玄覽無疵, 猶絶聖也. 治國無以智, 猶棄智也. 能無以智乎? 則民不辟, 而國治之也).

 

 

天門開闔, 能爲雌乎?

하늘의 문은 천하가 따르거나 말미암는 바를 일컫는다. (“天門) “열림닫힘(“천하) 질서 있음 어지러움 경계이다. (“하늘은 그 ) 혹은 열고 혹은 닫아서, 천하를 조정하거나 조화시킨다. 따라서 하늘이 문을 열고 닫는다天門開闔고 일컬은 것이다. “암컷(뒤따라) 응하지 (앞서서) 외치지 않으며, (저절로 그러한 바를) 말미암지 (자신을 말미암아) 일부러 일삼지 않는다. (따라서) “天門開闔, 能爲雌乎?”는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백성이 스스로 모여들게 될 것이며, () 머무는 데가 저절로 평안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天門, 謂天下之所從出也. 開闔, 治亂之際也. 或開或闔, 經通於天下. 故曰天門開闔也. , 應而不倡, 因而不爲. , 天門開闔, 能爲雌乎? 則物自賓, 而處自安矣).

 

 

明白四達, 能無知乎?

말하자면, 세상을 아주 밝게 해서, 치우침이 없게 하거나 휩쓸림이 없게 하는 데, 일부러 일삼고자 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만물(저절로) 그러하게 될 것이다. 이른 바, “는 언제 어디서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나)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다. 만약, 제후와 임금(그것을 따라서) 다스린다면, 백성萬物(장차) 스스로 따르게 될 것이다(37).”(, 至明四達, 無迷無惑, 能無以爲乎? 則物化矣. 所謂, , 常無爲. 候王若能守, 則萬物自化).

 

해 설

왕필주 물화物化에서 지명至明”, “무미無迷”, “무혹無惑을 의미한다.

 

 

生之.

(는 만물이) 근원(에 말미암아 저절로 그러하게(自然 : 2장 왕필주)” 생겨나는 것)을 가로막지 않는다는 뜻이다(不塞其原也).

 

해 설

왕필이 말한 근원본성”, 본성의 명령을 의미한다.

왕필주 불색기원야不塞其原也는 만물에 대한 도내재성內在性’, 만물의 자기 원인성내지 자기 충족성을 전제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畜之.

(는 만물이 소유하고 있는) 본성(에 말미암아 저절로 그러하게(自然 : 2장 왕필주)” 자라나는 것)을 가로막지 않는다는 뜻이다(不禁其性也).

 

해 설

왕필주 불금기성야不禁其性也는 만물에 대한 도내재성內在性’, 만물의 자기 원인성내지 자기 충족성을 전제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는 만물이) “그 근원(에 말미암아 저절로 그러하게 생겨나는 것)을 가로막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만물이 스스로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어찌 공(자신에게) 있다 하겠는가? (는 만물이) “그 본성(에 말미암아 저절로 그러하게 자라나는 것)을 가로막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만물이 스스로 자라나는 것이다. (따라서) 어찌 (자신을) 의지하게 하겠는가? 만물(그 근원과 본성에 말미암아)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충족된다. 누군가주도해서 그렇게 되는것이 아니다. (“생겨나게 하고”, “자라게 하며”, “이루지게 하는”) 덕스러움은 있는데, 주도함이 없다. 어찌 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모름지기, “현덕玄德이라 말하는 것이다. 모두 덕스러움은 있지만, 주도자(; 근원)를 알지 못한다. (그것이) 흐릿하고 흐릿한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不塞其原. 則物自生. 何功之有? 不禁其性. 則物自濟, 何爲之恃? 物自長足. 不吾宰成. 有德, 無主. 非玄而何? , 言玄德. 皆有德, 而不知其主. 出乎幽冥).

 

해 설

왕필주 물자장족物自長足은 만물에 대한 도내재성內在性’, 만물의 자기 원인성내지 자기 충족성을 의미한다.

왕필주 비현이하非玄而何?”에서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일부러 일삼는 바있음이 최소치에 다다른 상태 또는 모습 내지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일부러 일삼는 바없음이 최대치에 다다른 상태 혹은 모습을 의미한다.

왕필주 출호유명出乎幽冥에서 幽冥은 도의 존재양태 내지 존재양식에 대한 비유로서, “형상도 없고, 그림자도 없어서, 맞이할 수도 없고, 뒤따를 수도 없다(無形, 無影. 無逆, 無違 : 6장 왕필주)”는 의미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