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왕필산책 : 도덕경 제80장 왕필주 "나라의 규모를 작게 하고, 백성의 수를 적게 하라" 본문
제 80장
소국과민小國寡民.
사유십백인지기使有什伯人之器, 이불용而不用.
사민중사使民重死, 이불원도而不遠徒.
수유주여雖有舟輿, 무소승지無所乘之. 수유갑병雖有甲兵, 무소진지無所陳之. 사민복결승使民復結繩, 이용지而用之. 감기식甘其食. 미기복美其服. 안기거安其居. 락기속樂其俗. 린국상망隣國相望, 계견지성상문鷄犬之聲相聞, 민지노사民至老死, 불상왕래不相往來.
나라의 규모를 작게 하고, 백성의 수를 적게 하라.
열사람 백사람 몫을 하는 기물器이 있더라도 쓰일 데가 없게 하라.
백성이 죽음을 중하게 여겨서 멀리 나가 살지 않게 하라.
비록 배와 수레가 있을지라도 그것을 탈 일이 없게 하라. 비록 갑옷과 무기가 있을지라도 그것을 펼칠 일이 없게 하라. 백성으로 하여금, 다시 결승문자結繩를 쓰게 하라. 그 음식을 맛있게 여기게 하라. 그 옷을 아름답게 여기게 하라. 그 사는 곳을 편안하게 여기게 하라. 그 풍속을 즐겁게 여기게 하라. (그렇게 하면, 비록)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다 보이고, 개 짖는 소리나 닭 우는 소리를 서로 들릴 (정도로 가까울)지라도 (우리나라 백성이나 다른 나라) 백성이 늙어서 죽을 때까지 옮겨가 살거나 옮겨와 살지 않을 것이다.
小國寡民.
나라의 규모가 ‘이미’ 작고, 백성 ‘또한’ 적다면, 옛 모습古으로 되돌아가게反 함使을 높일尙 수 있다可. 하물며, 나라의 규모가 (이미) 크고, 백성이 (또한) 많음衆에랴! 따라서 “규모가 작은 나라小國”를 (예로) 들어擧 (그렇게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國旣小, 民又過, 尙可使反古. 況國大民衆乎! 故擧小國, 而言也).
【해 설】
중국의 고대 역사는 ‘작고小 많은多 나라’에서 ‘크고大 적은少 나라’로 국가의 형태가 변화되는 과정이었다. ‘크고 적은’ 나라를 최초로 이루어 낸 사람이 진시황秦始皇(BC.259~210)이었다면, ‘크고 적은’ 나라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한漢나라였다. 그러나 진秦나라는 아직 ‘작고 많은’ 나라의 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세력들을 정리하지 못한 채, ‘크고 적은’ 나라로 가는 길을 서두르다가 그들의 저항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단명短命하고 말았다.
사실, 진나라의 멸망에서부터 한나라가 건국되고 무제武帝(BC.156~70)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는 ‘작고 많은’ 나라를 지향하는 세력과 ‘크고 적은’ 나라를 지향하는 세력 간의 충돌조정기간으로 볼 수 있는데, ‘크고 적은’ 나라는 군현제郡縣制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사회체제였다면, ‘작고 많은’ 나라는 분봉제分封制를 중심으로 하는 지방분권 내지 지방자치적 사회체제였다.
한나라 태조太祖(BC.247~195)는 진시황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 두 세력 간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한편 안정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두 체제를 공존시키는 군국제郡國制(여기서, 군郡은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인 군현제를 뜻하고, 국國은 지방분권적 분봉제를 지향하는 제후국을 의미한다)를 실시했다. 그러나 역사의 발전방향은 여전히 ‘크고 적은’ 나라인 중앙집권적 통일국가를 지향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전면적으로 완성된 때가 무제 시기였다.
이 두 세력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던 철학자들이 있었는데, 동중서(BC.179경~104경)와 회남자(BC.179~122)가 대표적이다. 집중과 통일을 지향하는 유가儒家철학을 주장하던 동중서가 무제에게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가체제와 철학체계의 상호 유사성 때문에 서로 만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노자는 집중과 통합보다는 분산과 해체를 강조했다. 중국의 역사 속에서 도가道家철학은 통일국면이 무너지고 여러 나라로 나누어질 때 등장하였다가 통일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 안정기에 들어서면 유가철학에게 그 자리를 양보해 왔다. 진시황 이후 무제 때까지의 분열시기, 후한後漢(BC.75~AD.220)의 분열시기부터 위진 시대까지, 수隋나라와 당唐나라 이전의 남북조南北朝 시대(AD.439~589) 등에서와 같이 ‘작고 많은’ 나라로 갈라져 있을 때 도가철학이 전면에 등장하였다. 이것 역시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국가체제와 철학체계의 유사성 때문에 서로 만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노자는 특정한 문화질서로의 통합이나 특정한 사회체계로의 통일을 찬성하지 않았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지향하거나 사회적으로 합의된 욕구나 가치,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라서 일부러 일삼아 감각하거나 지각하거나 의지하거나 행위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자연성 내지 자율성을 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자는 저 멀리 설정되어 있는 자기 밖의 것들을 향해서 나아가지 말고, 지금 여기에 맞닿아 있는 자기 안의 자연적 측면들에 대해서 충실하라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따라서 노자가 말한 “小國寡民”은 원시적原始的 공동체로 돌아가자는 의미가 아니다. 나라의 규모가 작고 백성들의 수가 적게 유지되면, 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익명성이 줄어들 수 있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짐으로써,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 측면들이 훨씬 잘 보장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최진석,『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서울; 소나무, 2014), pp.540~542. 참조).
왕필주 “尙可使反古”에서 尙은 어떤 단체나 사람이 ‘뜻을 모아 향한다志向’ 내지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간다指向’는 의미이다.
使有什伯人之器, 而不用.
말하자면, 백성이 비록 열사람 백사람 몫을 하는 기물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이) 쓰일 데가 없게 하라는 것이다. (백성이 열사람 백사람 몫을 하는 기물을 가지고 있는 것 또는 백성이 가지고 있는 열사람 백사람 몫을 하는 기물이) 어찌 근심거리로서 부족하겠는가?(言, 使民雖有什伯之器, 而無所用. 何患不足也?).
【해 설】
노자가 말한 “什伯人之器”는 사람 대신에 사용되어 사람이 직접 했을 때보다 큰 효용을 산출할 수 있는 모든 도구들을 의미하는데, “나라를 날카롭게 하는 기물(國家之利器 : 제36장)”이나 “백성을 이롭게 하는 기물(民多利器 : 제57장)”과 마찬가지로 백성으로 하여금 “다툼을 벌이게 하거나爭 도둑질을 일삼게 하고爲盜”(제3장), 백성의 “눈을 멀게 하거나 귀를 멀게 하거나 입맛을 망가뜨리거나 행동을 어지럽게 함(令人目盲, 令人耳聾, 令人口爽, 令人心發狂, 令人行妨 : 제12장)”으로써, “단절과 대립, 갈등과 투쟁이 중심이 되는 세상(常有欲, 以觀其徼 : 제1장)”으로 변질시킨다. 제2장의 “뛰어남賢”, “얻기 어려운 재화難得之貨”, 제9장의 “금金”과 “옥玉”, “부유해지는 것富”과 “고귀해지는 것貴”, 제12장의 “오색五色”, “오음五音”, “오미五味”, “말 달리며 사냥하는 것馳騁畋獵”, 제13장의 “총애寵”, 제18장의 “자애로움慈”, “효성孝”, “충신忠臣”, 제19장의 “성인이 되는 것聖”,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智”, “어진 것仁”과 “의로운 것義”, “만들기 어려운 것巧”, “이롭게 하는 것利”, 제20장의 “학學”, 제24장의 “돋보이려고 발뒤꿈치를 드는 것企”, “앞서 가려고 큰 걸음으로 걷는 것跨”, “따지거나 가리는 것自見”, “잘난 체하는 것自是”, “뽐내는 것自伐”, “우쭐거리는 것自矜”, 제27장의 “철적轍迹”, “하적瑕謫”, “주책籌策”, “관건關鍵”, “승약繩約”, 제30장의 “무력兵”, 제36장의 “딱딱한 것剛”, “단단한 것强”, 제38장의 “예禮”, 제44장의 “명예名”, “재화貨”, “얻음得”, 제57장의 “기휘忌諱”, “법물法物” 등이 같은 부류에 속한다.
왕필주 “何患不足”을 이해하는 데, 다음을 참조해 볼 만하다. “화禍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큰 것이 없으며, 허물咎은 지나치게 얻으려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禍莫大於不知足, 咎莫大於欲得 : 제46장).” “백성을 이롭게 하는 기물이 많아질수록 나라가 점점 혼란해진다. 백성이 (일부러 일삼은) 지혜俊巧가 많아질수록 기이한 일이 점점 일어난다(民多利器, 國家滋昏. 人多俊巧, 奇物滋起 : 제57장).” 이 때, ““利器”는 ‘개인己’적 이로움의 원인이 되는 기물器이다. (그런데) 백성이 (‘개인’적으로 이롭고자 함이) 강하면, ‘나라’는 약해진다(利器, 凡所以利己之器也. 民强, 則國家弱 : 제57장 왕필주).” “백성이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 일부러 일삼은 지식智이 많아서이다. 그러므로 백성으로 하여금 일부러 일삼은 지식이 많아지도록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나라에 해賊가 되는 것이다. 백성으로 하여금 일부러 일삼은 지식이 많아지지 않도록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나라에 복富이 되는 것이다(民之難治, 以其智多. 故以智治國, 國之賊. 不以智治國, 國之福 : 제65장).”
使民重死, 而不遠徒.
백성으로 하여금, (그 “열사람 백사람 몫을 하는 기물”을) 쓸 데가 없게 하면, (백성은) 오직 (그) 몸身을 “보배로 여기게 되며(寶 : 제62장)”, 재화貨賂를 탐내지 않게 된다. 따라서 (백성이) 모두 그 사는 곳을 편안하게 여기게 되고, “죽음을 중히 여기게 되며”, (따라서) “멀리 나아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使民不用, 惟身是寶, 不貪貨賂. 故各安其居, 重死, 而不遠徒也).
【해 설】
노자가 말한 “죽음을 중하게 여긴다重死”는 것은 잘 “살아가다 (갑자기) 죽지 않는다(人之生動, 之死地 : 제50장)” 내지 “죽음의 영역으로 들어감이 없다(以其無死地 : 제50장)”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삶을 두텁게 하지(益生 : 제55장)”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죽음을 중하게 여긴다’는 것은 “뛰어남을 높이거나”(尙賢 : 제3장),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는”(貴難得之貨 : 제3장) 것처럼,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라서 일부러 일삼아 감각하거나 지각하거나 의지하거나 행위하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왕필주 “惟身是寶”에서 身은 제31장을 참조해 볼 때, ‘생명’ 내지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로 이해할 수 있다(眞 : 제70장 왕필주).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使民復結繩, 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 不相往來.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다 보이고, 개 짖는 소리나 닭 우는 소리를 서로 들리더라도 백성이 늙어서 죽을 때까지 옮겨가 살거나 옮겨와 살지 않는” 것은 일부러 일삼아 그렇게) 하고자 하거나欲 (일부러 일삼아 그것을) 추구할求 이유所가 없(기 때문이)다(無所欲求).
【해 설】
노자가 “雖有甲兵, 無所陳之”에서 말한 陳은 군사軍士의 대오隊伍를 편성하거나 배치한다는 의미이다.
노자가 말한 “舟輿”와 “甲兵”은 “십백인지기什伯人之器”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
노자가 “使民復結繩, 而用之”에서 말한 結繩은 결승문자를 의미하는데, 끈이나 띠를 가지고 매듭을 만들어 기록하거나 의사를 전달하던 문자로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문자의 형태 가운데 가장 원시적인 것이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을 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가 문자의 통일이었다. 그런데 문자의 통일은 사상의 통일과 연결된다. 문자를 통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말과 글을 쓰게 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말과 글이 나타내는 의미를 하나의 기준에 따라서 규정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승문자에는 지역적 특성, 결승자의 정서 등이 통일문자보다 짙게 배어있다. 따라서 노자는 통일체제로 나아가려는 당시의 흐름 속에서 이러한 모순들을 발견하고 결승이라는 것을 매개로 삼아서 그러한 모순들을 비판하고자 했던 것이다. 통일국가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사상의 통일을 요구하기 때문에 하나의 사상을 잣대로 나머지 모두를 지배하려고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노자가 말한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 不相往來”에 주목해야 하는데, ‘차이성’과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노자의 주장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다 보이고, 개 짖는 소리나 닭 우는 소리를 서로 들을 수 있을 만큼 이웃 나라가 가까이 있지만, 백성은 늙어서 죽을 때까지 옮겨가 살거나 옮겨와 살아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최진석, 같은 책, pp.543~54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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