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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단상 : "맞이하는 죽음", 그리고 "혼자하는 사회운동"

독립출판 무간 2016. 11. 20. 08:59

요즘... 드는 생각이다.

 

사는 것의 끝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이라면...?

산다는 것의 주체가 '나'이듯 죽는다는 것의 주체 역시 나일 수 없을까? 

죽음을 우리는 '끝'으로만 보기 때문에 그것이 회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닐까!

어둡고, 음침하고... 마치, 들어서서는 안될 것 같은, 들어가기 싫은 것이 되어버리는!

그러나,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죽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 될터이다.

사는 것에 대해 주인의 역할을 하고자 하듯, 죽는 것 역시 그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죽는 것은 '주인', '주체'인 내가 맞이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면서 살듯이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죽음은 더 이상 회피,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 중심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윤회, 회생, 재생 등을 이야기 하자는 게 아니라,

실제, 현상, 사실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맞이하는", "받아들이는" 죽음...!

사는 것처럼 죽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것...!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해서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몇일 전,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깨어 있는" 시민이 희망이구나 싶었는데,

바로 든 생각이... '그래, 그렇게 사회운동이 일어난다면?'

단체나 조직, 이념이나 철학 운운하고, 그것에 동의하고 아니고가 아니라,

그것들에 대한 각자의 판단에 따라, 각자 처한 현장에서, 자기 표현을 한다면?

그 결과적 모습이야 같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해 온 운동이라는 것이 '단체', '조직'에 의존한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그것도 의미가 있고, 시대적으로 요청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도 그럴까...?

결과적으로 '촛불집회'라는 무시될 수 없는 사례가 나왔지 않는가?

단순히, 우연이거나 일회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되짚어 보면... 그러한 사레가 많은 것 같다.

그래... '혼자'가 될 수 있는, 그리고 결국 '전체'가 되는

전체에서 혼자를 외치는 게 아니라,

혼자가 '자기' 스스로 움직여서 결국 '전체'로 될 수 있는

그런 '사회운동'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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