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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라는 죄는 신이 용서하지 않는다! (2)

독립출판 무간 2016. 10. 2. 11:44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 압바스 기아로스타미가 만든 영화 '체리향기'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 바디가 수면제를 먹고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자신의 몸 위로 흙을 덮어줄 사람을 찾아나서는 이야기인데,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아무도 그의 제의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노인이 그의 제의를 수락하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바디에게 들려줍니다. 그 얘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전에 목매달아 죽기 위해 줄을 매려고 나무에 올라간 적이 있소. 그런데 나무에 달린 체리가 눈에 띄어 무심결에 먹어보니 너무도 달더군. 그래서 계속 먹어보니 문득 세상이 너무 밝다는 게 느껴졌소. 붉은 태양은 찬란하게 빛났고, 학교하는 아이들의 소리는 너무나도 평안했지. 그래서 아이들에게 체리를 따서 던져주고 나무를 내려왔소."

 

바디는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불현듯 삶에 대해 강한 애착을 느낍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도 바디 같은 분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업에 크게 성공해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으나 그에게도 고생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도 고생스러워 한번은 목매달아 죽으려고 넥타이 두 개를 끈으로 묶었습니다. 그러나 죽지는 못했습니다. 거실 가득히 스며들어오는 햇살에 먼지가 빛나는 것을 보고, '저 먼지도 저렇게 빛나는데'하는 생각이 들어 묶은 넥타이 두 개를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습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넥타이를 꺼내보고 다시 힘을 얻습니다.

 

저는 오른쪽 주먹에 자그마한 흉터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젊은 날에 절망에 빠져 골목의 시멘트벽을 주먹으로 힘껏 내리쳤을 때 생긴 것입니다. 저는 그 흉터를 볼 때마다 그 때를 생각하며 다시 마음을 추스릅니다.

 

신이 희망을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야 합니다. 절망이라는 죄는 신이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죽음 가운데 있던 노인에게는 체리향기가, 자살하려던 남자에게는 넥타이 두 개가, 절망에 허우적거리던 저에게는 주먹의 흉터가 결국 희망이 되었습니다.

 

쥐 한 마리를 캄캄한 독 속에 집어 넣으면 3분을 넘기지 못하고 죽지만, 그 독 속에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가면 적어도 36시간은 죽지 않고 견딥니다. 희망은 죽음 앞에서도 생명을 지켜내게 하는 강한 힘입니다.

부랑자와 빈민들을 위해 평생을 산 프랑스의 피에르 신부는 "어떤 이들이 자살하는 지경까지 가는 것은, 그들에게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용기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결필된 것은 사랑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만이 절망을 이겨내게 할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제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 자신이 나를 사랑하도록 더욱 노력합니다. 그래서 가끔 나의 사랑하는 삶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좋습니다. 한번 열심히 살아봅시다!"

 

(정호승,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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