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절망이라는 죄는 신이 용서하지 않는다! (1) 본문
한 악마가 사람들을 유혹하는 데 사용해 왔던 도구를 팔려고 시장에 내놓았습닏. 도구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악마가 사용하는 도구답게 흉악하고 괴상망측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열된 도구들 한 족에 값을 매기지 않은 작은 쐐기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저건 뭐죠? 왜 값을 매기지 않았어요?"
물건을 사러 온 다른 악마가 궁금증을 참다못해 물었습니다.
"응, 그건 절망이라는 도구인데, 파는 게 아니야. 난 저절로 틈을 벌려 강하다고 하는 그 어떤 사람도 쓰러뜨려. 그래서 다른 건 다 팔아도 저것만은 팔 생각이 없어. 내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것이거든."
제가 절망에 빠질 때마다 떠올려보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그 악마가 제 마음의 틈새에다 절망이라는 이름의 쐐기를 박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린 학생에서부터 대기업 회장, 대법원장, 대학총장, 도지사, 시장, 고등학교 교장, 촉망받는 젊은 여배우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절망에 빠져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게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1년 평균 400여 명이 한강에 투신자살을 시도하고, 그 중에서 3분의 2가 익사체로 인양됩니다.
언젠가 '자살하려는 사람들은 꼭 읽어주세요'라는 글이 쓰인 노트 한권이 한강대교 난간에 매달려 있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노트는 한강에 투신했다가 살아난 사람이 쓴 것으로 "차가운 물 속에서 숨이 끊어질 때까지 받는 고통의 시간은 살아서 고통을 받는 시간보다 수천 배 수만 배 더 길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노트가 아직 한강대교 난간에 걸려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오죽하면 그런 노트까지 등장했을까요. 한강경찰대 구조대원의 말에 의하면 구조된 지 며칠 뒤에 다신 한강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고, 구조된 뒤 대원들이 방심한 틈을 타 구조선에서 다시 뛰어내리는 사람도 있고, 정신 차리자 마자 왜 살렸느냐고 때리고 꼬집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몇 해 전, 수능시험이 있던 날에 본 신문기사가 영 잊혀지지 않습니다. 남원에 사는 한 여고생이 첫째 시간에 언어영역 시험을 치르다가 그대로 나와 이웃집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투신자살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또 재수생이 수능 전날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사건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여고생과 재수생 또 그들의 부모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 때 그들이 자신을 조금만 더 사랑했더라면, '그까짓 시험 좀 못 치면 어때? 다음에 또 치지 뭐'하고 생각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정호승,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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